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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5/13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5월의 비원


 
창경궁, 창덕궁, 그리고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秘苑)에 갔다. 창경궁은 어렸을 때 창경원으로 불리던 곳인데, 1983년 동물원과 식물원이 서울대공원으로 인계된 이후, 창경궁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그 후 관람이 중단되었다가, 1986년 복원공사 준공과 더불어 공개 관람이 재개되었다.


창덕궁은 아름답고 넓은 후원 때문에 다른 궁궐보다 왕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990년 이후 대규모 복원사업을 하였으며, 현재 조선시대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인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며, 한국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덕궁의 후원은 창덕궁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넓고 깊은데 창경궁에서도 함께 이용하였다. 현재 관람객도 양쪽 궁으로부터 연계하여 입장할 수 있게 되어있다. 비탈진 입구를 따라 걷다 보면 그림 같은 연못과 정자들이 나타나고, 숲길 따라 또 걷다 보면 나무와 꽃과 아담한 정자들이 물길과 어우러져 자연 정원을 이룬다.


비원은 왕과 왕실가족의 휴식공간이었지만 왕이 주관하는 여러 가지 야외행사나 군사훈련이 실시되기도 했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왕이 후원에 곡식을 심고 길러 농사를 체험했으며 왕비는 친히 누에를 쳐서 양잠을 장려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시청 앞 덕수궁이 개방적이어서 마치 길가의 공원 같은 느낌이 있었고, 신문로의 경희궁은 궁 자체를 2002년에야 일부 복원하여 일반에게 공개하였고, 경복궁은 광화문을 정문으로 중앙의 권위를 세우고 있었다면, 창덕궁과 비원은 한동안 닫힌 궁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월이 잘 지나가서 굳게 닫힌 궁궐 문이 열리고 왕이 살던 준엄한 궁궐의 대문을 통과하여 돌다리를 지나 석조 바닥을 밟고 이 쪽 저 길 다채로운 전각(殿閣)들을 마음껏 구경하고 구석구석 거닐 수 있으니, 얼마나 새로운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유적지도 아니고 흔적도 아니고 그 모습 그대로 궁궐 안에 전각과 정자와 현판의 글씨들을 보는 마음은 조선이란 나라가 그렇게 당쟁과 전란과 비극의 암투로 점철되었을지라도 서울만 해도 궁궐이 5개나 있으면서 519년 (1392~1910)을 지탱해온 역사는, 지나간 과거로 분리시키기에는 너무도 생생하며, 현재와 겹치거나 미래와 닿아 있으리라는 것이다.


베르사유 궁전도 가보고, 자금성도 가봤지만, 왜 이렇게 한국의 궁궐의 위상을 이제야 절실히 와닿게 느끼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궁궐은 소위 물길 따라 산길 따라 사람도 품어지는 그런 기본 태도인 것이다.  무정형의 건축양식과 터와의 조화, 기품과 여유와 자유로움에 있어 지상의 어느 궁궐에도 뒤지지 않는 단아함과 품격을 머금고 있다.

 

이러한 궁궐이 과거의 터가 아니라 현재도 궁궐로써 그 원형이 최대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조선519년 역사의 위상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당당하다. 이런 고유한 건축을 만들고 500년 왕이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술과 예술과 물자와 노동력과 열정이 필요한가!


지구본에서 보면 서울의 위도(緯度) 37.6°는 워싱턴 D.C. (38.9°), 아테네 (38.0°), 테헤란 (35.7°), 리스본 (38.7°) 등 세계사의 아주 매력적인 수도들과 비슷하며, 베이징 (39.9°), 도쿄(35.7°)와도 멀지 않다. 이런 지구상의 조건이 조선왕조 이후에도 현재의 팽창하는 도시 서울로써 여전히 사람을 품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궁을 통해서 느껴볼 새가 없었다.




혹여 이 궁궐들이 너무 많은 관광객에 의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앞으로도 관람객을 잘 인솔하여 곱게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런 궁궐을 두고 피란 가야 했던 임금이나, 또 정권을 전복했던 반정(反正)이 있었을 것이고, 외적의 침입으로 강점 기간 이곳을 떠나야 했던 궁궐 사람들과 일반인들은 또 어떻게 살아 냈었을지!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궁궐 안에서 충족했던 왕실 사람들과 그들의 의식주를 챙기고 분부를 받아 종종거리며 드나들었을 궁궐의 일꾼들, 그리고 대궐 밖 사람들 그리고 사대문 안 사람들과 사대문 밖과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되고 분리되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 좌절하고 그랬었을까!


관람을 마치고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밖으로 나오니 밖은 현대식 빌딩과 회색빛 아스팔트 도로와 그리고 한글 간판들이 갑자기 궁궐과 다른 시대의 현재 세상을 알린다.


현실을 잊고 잠시 내가 아닌 것처럼 살고 싶다면, 나이 들어 매일매일 반복되는 오늘이 낯설고 매사 심란하다면, 바로 창덕궁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막힌 곳이 없는 사이 사이를 지나, 왕이 거닐던 뒷동산에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수백 년 된 나무들 사이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계절의 색과 소리를 맞으며 왕이 아니고 오늘의 일반 시민이어서 다행인 자신을 돌볼 수도 있고, 혹은 임금과 세월을 뛰어넘어 친구 같은 마음이 되어 줄 수도 있다.


아침 9시부터 입장하는 그 개방은 너그럽다. 언제 한 번 아침 일찍 첫 손님으로 아무도 없는 창덕궁에 들어가 궁궐에서 맑은 오전을 맞아 보고 싶기도 하다. 언젠가 한 번은 밤 9시까지 여는 창경궁에 마지막 손님이 되어 달빛을 등지고 퇴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역사가 비춰 주는 현재의 고귀함과 이 순간의 영원성을 궁궐이란 장소를 빌려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는 전면 무료는 아니지만, 무료나 할인이 많다. 특히 65세 이상의 노인은 무료. 후원(後苑)은 별도이다. 이달에도 관람객 모두는 코로나 19 확산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였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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