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58년 개띠들이 이제는 뒷방으로 물러나는 시절이 되었다. 나는 별 존재감 없는 57년 닭띠로 평생을 살아 오다가 희말라야 언저리에서 등짐 위에 고고하게 올라 앉은 멋진 수탉을 봤다. 자유로웠지만 뛰어 내리지 않았다. 닭장수와 수탉은 동업자였다.
광주리 속에는 암탉들이 있다. 닭장사는 말없이 길따라 걷기만 한다. 굳이 '닭팔아요'를 외치지 않아도 필요한 사람들이 불러 세웠고, 산기슭에 풀어 놓기만 하면 별로 돌보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암탉들은 따뜻한 양지뜸 외진곳에 아담한 유정란을 모아 놓는다.
등짐 위에 올라탄 수탉은 한들 바람을 맞으며 때로는 일어섰다, 다시 앉았다 하며 쪼아대야 하는 자기 삶을 관조하였다. 나는 닭장사 뒤를 부지런히 따라 붙었지만, 기력이 쇠퇘해져가는 57년 달구띠는 가뿐 숨을 가다듬느라 잠시 쉬는 바람에 내 간지에 실상을 놓쳐 버렸다.
히말라야를 걷는 것은 내가 살아온 지난길을 되돌아 가는 여정이었다. 카트만두에 한 모퉁이에서 소일하며 보았던 그네들에 생활은 나를 충분하게 추억담긴 저수지로 자맥질하며 헤엄치게 했고 맑던 저수지 물은 순식간에 흐려졌다.
어릴적 살던 영등포구 등촌동 당시는 '등마루' 라던 우리 동네에 솜 털어주는 아주머니댁이 있었다. 오래 덮고 잔 목화솜 이부자리가 납짝하게 눌려지면 엄마는 겉감을 뜯어내고 납짝해진 솜뭉치를 접어 솜터는집 아주머니에 갖다주느라 묵직한 솜뭉치 한덩어리는 작은몸이었지만 내 차지가 되었다.
솜집 아주머니는 납작해진 솜뭉치를 큰 쌀뒤주통 같은 상자 입구로 조금 집어넣고 두꺼비 집에 붙어 있던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발로 밟아서 벼터는 둥근통이 돌아가 나락을 털어내듯이 솜이 조금씩 통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웅웅거리는 나무상자 뒷꼭지로는 푹신푹신 탄력있게 부풀어 올라선 목화 솜다발이 밀려 나오고 그것을 둥그렇게 잘 말아서 집으로 왔다.
엄마는 털어온 솜뭉치를 안방에 펼쳐놓고 다시 겉감을 시침하느라 큰 바늘에 실을 꾀어 연신 방을 한바퀴씩 돌아가며 바느질을 하였다. 솜을 푹신하게 다시 털어 풀먹인 빳빳한 새 이부자리에서 느끼던 까칠한 안락함은 이젠 전설이 됐다.
한번에 딱 봐도 네팔 솜털이다. 흙먼지 나는 난장에 판을 펼치고 앉은 두사람은 가느다란 막대기를 두둘겨 솜(자세히 보니 한국에서 비닐하우스 보온을 위하여 사용하는 보온덮개)을 무자비하게 두둘기고 있었다. 신기 하게도 그 보온덮개는 맞을수록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탄력있게 부풀어 오르자 옆에 큰 자루에 담아서 세워두고 다시 다른 주머니에서 재료(?)를 바닥에 쏟아붓고는 두 손바닥에 침을 뱉어 작은 나뭇가지가 손에 딱 그립이 되게 하더니 다시 솜덩어리로 부풀어 오르도록 쉬지 않고 리듬을 타며 매타작을 하는 것이었다.
신기하기 보다는 마음이 아렸다. 허나 것은 쬐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다온 나에 부질없는 감상이였다. 저들에 삶에서는 저 솜도 가치있고 훌륭한 솜이불이 되는 것이였다. 삶에 가치는 물질에 상태가 아니라 환경에 이해였다.
네팔리들에 일상이 척박한 삶이라 안쓰럽던 내 마음이 환하게 펴진것은 네팔 꽃장사를 보면서 부터였다. 세발 구루마에 아름답게 핀 각종 꽃 화분들이 키높이로 줄서 담겨져 있었다. 낡은 슬리퍼를 끌며 꽃수레를 밀고가서 적당한 자리에 자릴 잡으면 꽃장사는 엷은 꽃내음 향기를 날릴 것이다.
누가 꽃을 살까? 하루 꽃을 팔아 몆푼이나 벌까? 궁금했지만, 꽃을 보는것 만으로도 마음이 흐믓해졌다. 개명된 문명은 욕망이란 꽃다발에 걸린 화려한 허영이 있다면 추억 속에 문화는 작은 꽃화분으로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엄마가 가꾸던 현관 옆에 맨드라미, 채송화, 백일홍이 핀 작은 꽃밭이 그앞에 놓인 손잡이 터진 호미가 보였다.
인도 문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인지 네팔도 상당한 계급사회였다. 불가촉천민과 태생적 금수저는 절대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생에 고통이 저생의 기쁨과 보상으로 윤회 된다는 철저한 믿음은 지금에 척박한 삶을 이겨내고 열심히 살어 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였다.
네팔 과일장사를 만나 바나나 두개와 청포도 한다발을 사면서 1불도 않되는 가격을 흥정으로 깍아 70센트로 팔라던 나는 과일 장사가 '이걸 깍냐?' 딴곳 보며 말없이 넘겨주던 바나나 두개를 받으며 난 연옥으로 내려가는 불안을 느꼈고 그는 열반으로 들어서는 여유를 보았다. 30센트를 깍은 아둔함을 날려 버리려 나는 부리나케 그자리를 떳다.
58개띠나 57닭띠나 새벽 바람을 맞으며 책보를 싸메고 학교가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비니루 그럴듯한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반은 넘었다. 작은 교실 안에 조개탄 난로가 꺼지면 책보를 허리에 둘러 메거나 등짝에 가로질러 메고는 집으로 냅다 뛰었다 무조건 뛰었다. 벤또 속에 젓가락이 딸그락 거리던 소음을 잊은지 오래 되었다. 50년 전 우리가 희망이 되어 우리가 일구어낸 우리들에 삶이 여전히 자랑스럽다.
알록달록 고은색 가방을 한가득 매달은 가방장사 아저씨 자전거를 둘러싼 어린 아이들을 본다. 저 아이들에 내일을 그려본다. 어린시절 엄마가 영등포시장에서 처음 사온 책가방을 받고 기뻐했던 환희를 찾아낸다.
글·사진 염승찬
산악문화 칼럼리스트
산행문의: ekoreaboo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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