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창문 앞에는 인조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다. 이전 집은 무척이나 넓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거실에 세워 두었던, 30년간의 추억이 담긴 트리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로 이사하거나 특별한 날이 있을 때마다 예쁜 오너먼트를 하나씩 구입하거나, 아이들이 어릴 적엔 함께 만들어 걸어 두곤 했다. 또한 친지들이 방문할 때 선물로 받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긴 오너먼트들도 트리에 주렁주렁 매달리곤 했다.
예쁘고 특별한 오너먼트를 트리에 걸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구에 불을 밝히면 트리에 환한 불이 들어와 반짝이며, 우리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그 트리는 우리 가족의 소중한 기억이 깃든 존재였다.
몇 년 전부터 무릎 통증이 심해져 집 구조상 위층과 아래층을 오르내리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고, 세 아이들도 모두 성장해 각자의 가정을 이루니 집은 허전해졌다. 게다가 넓은 집을 매번 청소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한 끝에, 무릎 통증으로 지하실을 오르내리는 일이 점점 고된 노동처럼 느껴졌고, 어느 날 혼자 있다가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허리까지 다치는 바람에 ‘집을 당장 단층집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2년간 살던 집을 시장에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집이 팔렸다. 그리고는 아들이 한동안 살다가 직장 문제로 비워두고 있던, 우리가 살던 집에서 15분 거리의 숲속 단층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집은 오래되어 전면 수리 후 새집처럼 리모델링한 뒤 입주했다.
단층집은 이전 집의 절반 정도 크기인 1,200스퀘어피트였다. 넓은 집에서 살다가 작은 집으로 옮기려니, 각자의 취향에 따라 방마다 예쁘게 배치해 두었던 가구와 장식품들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요리하기를 좋아해 가끔 요리 수업을 하기도 했고, 새로운 곳으로 출장을 가거나 미팅을 갈 때마다 접시나 그릇을 한두 개씩 모아 왔다. 그런데 그런 특별한 그릇들을 둘 공간이 없어 마음이 심란해졌다.
집안을 둘러보며 물건을 정리하려 했지만, 미국에서 40여 년간 이사 다니며 늘 챙겨 온 역사 있고 손때 묻은 그릇과 가구들을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래전 한국에서 가져온 고전 장식 찻장, 도자기 명인이 선물로 준 그릇, 한국적인 디자인의 장식품 등도 새집에 둘 곳이 없어 고민이 깊어졌다. 차라리 이사하지 말고, 거실을 침실로 바꾸어 그대로 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병을 앓다 돌아가신 지인의 가족이 집을 정리하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40여 년간 한집에서 살았던 그분의 자녀들이 집안의 물건을 치우느라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들으며 ‘아차, 지금이 정리할 기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바뀌어 다시 꺼내고, 장식장에 되돌려 넣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정리하면서 박스에 담아 놓고, 다시 들여다보며 온갖 이유를 붙여 다시 꺼내 놓기를 반복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봉사하는 미국 중고 물품 가게(재활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스토어 매니저인 제이슨에게 말했다. “제이슨, 무조건 트럭 가지고 와서 우리 집 물건 다 가져가야 돼!”
나는 20년간 봉사하며 직업 알선, 이민자 자립, 중독자 갱생을 돕는 이 프로그램의 중고 가게에 모든 물건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약간 촌스럽지만 고운 비단 이불 세트(한 번도 써 보지 못했던), 무겁고 빨기 어려워 그냥 보관만 하던 비단 이불, 다양한 자기 그릇, 고가구 장식장, 옷가지 등도 날짜를 정해 모두 보내버렸다.
1년 전 구입했던 가죽 침대 세트도, 아는 지인을 불러 그냥 줘버렸다. 이웃들이 팔라고 권했지만, 나는 정든 물건들을 돈 받고 파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 물건들을 소중히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두 기부했다.
단층집으로 가져갈 물건은 두 개의 침대 세트와 작은 소파, TV 정도뿐이었다. 그 외의 대부분의 물건이 나가던 날, 나는 트럭에 물건을 옮기는 제이슨과 그의 동료를 바라보다가, 마치 내 인생의 추억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하, 이렇게 인생을 정리하게 되는구나!” 그것은 내게 정말 큰 결정이자 중요한 정리의 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값지고 구하기 어려운 고전 가구들과 테이블, 가죽 소파는 다 떠나보냈는데, 인조 크리스마스트리 박스만은 그대로 단층집으로 가져왔다.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우리 가족이 모은 오너먼트를 걸 생각을 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거실이 너무 좁고 방 크기도 침대 하나 들어갈 정도여서 트리를 세울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트리는 크고 자리를 많이 차지해 집 안에 둘 수 없었는데, 새집 거실에 커다란 창이 있어 그곳에 세워보니 햇살도 걸러지고, 집 안도 가려져서 적절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우리 집의 역사를 담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늘 푸르게 창문 밖에 서 있었다. 억수 같은 비가 내려도,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도, 우리를 지켜주는 듯한 존재였다.
나는 거의 모든 물건을 정리하고 기부하며 시집보냈다고 생각했지만,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만큼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2025년 6월 초, 오른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병가를 내고 집에서 회복 치료를 받던 중 어느 날 창밖을 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트리 안으로 드나들며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궁금해져서 트리 가까이 가 보니, 우거진 가지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휙 날아 매플 나무에 앉았다. 가지 사이를 살짝 들춰보니, 오 마이 갓! 그 작은 새가 둥지를 틀고, 아주 작은 알 세 개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예쁜 생명의 알들이 어미 새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까마귀 몇 마리가 집 앞을 날며 상황을 살피는 듯해, 나는 얼기설기 가지를 엮어 까마귀 출입을 막고, 매일 새집에 별일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며칠 후 새들이 부화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 세 마리가 입을 벌리며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신기한지, 보호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같은 종류의 새 둥지가 까마귀 습격으로 무너졌던 기억이 떠올라 더 신경 써 보호했고, 며칠 후 두 마리는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한 마리는 둥지에서 떨어졌는지 바닥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조심히 들어 다시 둥지에 넣어주었고, 며칠 후 그 새도 건강하게 날아갔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하, 내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이곳으로 가져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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