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하순 경에 텃밭에 상추를 파종하였다면 지금 한창 보들보들한 상추를 뜯어 먹고 있으며 4월에 씨를 뿌린 상추도 지금 많이 자라 먹기 시작하고 있다.
마트에서 사서 심은 고추 오이, 호박, 토마토 등의 모종은 이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다. 올 봄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 오고 추워서 농사짓는데 재미가 없다.
봄이라 계분이나 소똥과 같은 비료를 사서 주어야 한다. 이런 비료는 톱밥을 섞었기 때문에 질소성분이 약하지만 대개 이런 비료를 밭 맨 위 표면에 펴 놓고 씨를 뿌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면 비료성분으로 인해 발아율이 떨어지고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힘이 들더라도 30cm 가량 땅을 파 업고 흙과 비료가 고루 섞이도록 하고 잘 썩은 퇴비(잔디 썩은)를 주는 게 좋다. 이렇게 퇴비나 계분과 같은 유기질 비료를 주면 지렁이가 모여들어 서식한다.
우리는 텃밭을 파고 거름을 줄 때 흔히 지렁이를 발견하게 된다. 무심코 꿈틀하고 기어 다니는 지렁이를 볼 때는 징그러워 혐오감을 느껴 기피하게 된다. 하지만 지렁이는 인간에게 매우 이(利)가 되는 벌레이다.
지렁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징그럽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땅의 용 즉 지용[地龍]에서 왔다는 설이 있으나 학자들은 한자명칭 중 하나인 지용(地龍) 즉 지룡이 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밭에 지렁이가 살고 있으면 그 밭은 비옥한 밭이다. 미국에서 농장을 사고 팔 때 단위면적당 지렁이가 몇 마리나 살고 있는가에 따라 값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즉 지렁이 마릿수가 많을수록 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그럼 왜 지렁이가 많이 사는 밭은 비옥한 밭인가? 지렁이는 몸의 앞부분을 늘리면서 흙을 밀어낸 다음 뒷부분을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움직이며 땅속에 여기저기 작은 굴을 뚫는다. 흙을 삼켜 흙속의 유기물을 먹고 제 몸 무게만큼의 흙을 배설한다. 그 배설물 속에는 칼슘과 그 밖의 영양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비료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을 거름지게 만든다.
지렁이가 있는 밭은 땅에 작은 구멍을 파 놔서 부드럽고 거름 진데 비해 지렁이가 없는 밭은 땅이 딱딱하고 메마르다.
이와 같이 지렁이는 사람이 땅을 일구고 매주는 일(中耕)을 대신해 주는 이로운 벌레이기 때문에 소나 돼지, 개를 가축(家畜)으로 여기고 있듯이 지렁이도 가축으로 여기고 있다.
지렁이는 배에 강모(剛毛)라 부르는 작은 털이 있어 이동할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해준다. 폐 또는 아가미가 없으며 흙 알갱이 사이에 있는 공기를 얇은 피부를 통하여 모세혈관으로 흡수하므로 호흡을 한다고 한다.
지렁이는 물고기, 새, 두더지의 중요한 먹이가 되고 낚시의 미끼로도 이용되며 환경과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벌레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노인들이 취미생활을 즐기고 따라서 치매를 예방한다는 취지로 4년 전에 앞의 잔디밭 일부를 텃밭으로 개조하여 30필지의 작은 텃밭을 만들어 분양해 주었다.
시애틀 K아파트가 오래전부터 노인들이 밭을 가꾸어 치매를 예방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우리 아파트에 입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아파트 당국에 밭을 만들어 달라고 민원을 낸 결과 소원이 이루어졌다. 정원 주위에 키가 큰 상록수가 있어 햇볕이 잘 드는 곳과 그늘진 곳이 있어 제비를 뽑아 밭을 분양하게 되었다.
84세대가 다 텃밭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평수가 작은 밭이지만 닭똥을 사다 주고 씨앗이나 모를 사다가 심어야 하며 거의 매일 같이 물을 줄 뿐만 아니라 들여다보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농사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텃밭은 1평짜리 20필지와 0.5평짜리 10필지이다. 지렁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밭은 지렁이 배설물이 많다 보니 흙이 비옥해져 작물이 잘 자란다. 지렁이가 땅을 일궈 놓았기 때문에 땅이 부드럽고 공기가 잘 통하고 보습력이 있어 밟으면 땅이 쑥 들어갔다가 다시 원상으로 회복된다. 지렁이는 퇴비, 계분, 소똥과 같은 유기질 비료를 주면 어디서 모여 드는지 금방 증식하여 지렁이 밭이 된다.
옛날 한국의 농촌 밭에는 지렁이가 참 많았었다, 그러나 퇴비와 소, 돼지의 배설물을 주지 않고 질소 화학비료나 요소 같은 금비(金肥)와 생석회를 주므로 지렁이가 다 죽어버렸다.
그것은 퇴비와 유기질 비료를 낸 논에서는 ‘우렁이’가 잡히고, 화학비료를 준 논에서는 ‘우렁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지렁이를 사육하는 법을 배워 천연 비료를 생산하고 있다. 구태여 무거운 계분과 같은 비료를 사다가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렁이는 자지도 않고 24시간 땅에 굴을 파고 텃밭을 일구면서 흙을 삼킨다. 그 대신 질 좋은 천연 유기질 비료를 배설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지렁이를 키워 비료를 얻어 보자.
커다란 화분에 지렁이가 살고 있는 밭의 흙을 퍼 담고 지렁이를 수 십 마리 잡아넣는다. 그리고 맨 위에 과일껍질, 부엌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 시금치 파 배추 열무 상추 같은 푸성귀를 다듬고 남은 쓰레기, 유통기한이 지난 식빵, 심지어 1회용 종이컵, 종이 식반, 신문지까지 썩는 물질(유기질)은 무엇이나 다 넣어 두면 지렁이가 열심히 다 먹어 치우고 배설물(비료)만 남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지렁이에게 주는 먹이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 제품은 주지 말고, 짠 음식과 지나치게 매운 음식 찌꺼기는 물에 씻어 주어야 한다. 신기하게 지렁이가 먹는 음식물 찌꺼기는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화분은 뚜껑을 닫아주고 마르지 않게 물을 뿌려 둔다. 그리고 먹는 대로 먹이를 보충하고 위에 쌓여 있는 배설물 즉 천연 비료는 파서 밭에 내면 된다.
텃밭에 서식하고 있는 지렁이는 알을 나 계속 번식하며 비료를 만들어 낸다. 또 화분의 지렁이도 가정용 쓰레기를 먹여 비료(배설물)를 밭에 내니 텃밭은 비옥하게 된다. 다만 밭에 지렁이의 먹이가 될 썩은 퇴비를 주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성수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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