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군(君)의 행위는 자신의 존재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지군 스스로 용서 받을 수 없는 중죄임을 인정하고 있고, 지군이 올바른 심성으로 아름답게 성장할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어 지군을 실형에 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피고인과 같은 사춘기 자녀를 둔 어미로서 지군 부자(父子)의 죄책감과 고통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비록 피고인을 아버지 품으로 바로 돌려보내지는 못하지만 어미의 심정으로 피고인의 장래를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며, 1심과 같은 징역 단기 3년, 장기 3년6개월을 선고한다.”>
◆ 오랜 고통속 비극적 결말
위의 내용은 작년 11월, 대한민국을 경악하게 했던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지모군이 저지른 '존속(어머니) 살인 및 8개월간의 사체 유기 사건' 에 대해 지난 9월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고등법원 505호 법정에서 읽혀졌던 판결문입니다. 취재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 형사 10부 조경란 부장판사(52, 사법연수원 14기)는 피고인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안경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여러 차례 훔쳐냈다고 합니다. 그것은 '존속살해 와 아동학대' 사이에서 고뇌한 부장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녀로 인해 방청석 곳곳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누가 이 아이를 '존속 살인 및 사체 유기'라는 불효막심한 범죄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갔습니까?
이 아이는 수많은 날 동안 자기를 낳아 길러준 친 엄마로부터 감당해 내기 힘든 모진 학대를 당해왔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 아이의 부모가 오랜 세월 별거해야 했는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아이는 부모불화의 피해자로서,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우울하고 힘들어 했던 엄마의 감정 분출 대상이 되어야만 했고, "너는 반드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야 한다." 라는 엄마의 일방적인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안은 채 살아야 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로부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어 폭력과 굶주림, 골프채를 통한 신체적 학대를 당해 왔다고 합니다.
아이는 이처럼 무섭고 두려운 가정폭력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지만 아빠는 물론, 친가나 외가의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로부터도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 오랜 세월 공포의 시간들을 지내왔다고 합니다. '학대'라는 막 다른 골목에 다다른 어리고, 무기력한 이 아이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떤 이유로도 범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동안 그 아이가 혼자 겪어 냈어야 했던 '잔인한 학대'를 생각해 볼 때 어느 누가 감히 이 아이만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 가정폭력은 엄연한 범죄
'아동 학대, 노인 학대를 포함한 가정 폭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인종, 국적, 계급, 교육 수준과 경제적 수준을 초월하여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반(反)인륜적이며, 반인권적인 범죄 행위입니다.
"내 여자 내가 때리는 데 무슨 상관입니까? 맞을 짓을 하니까 때리지요!" "내 몸에서 나온 새끼(자식)인데 살리든 죽이든 왜 참견해?"'가정 폭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고정 관념'이 무고한 가족들을 불행의 늪 속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매 12초 마다 한 명 꼴로 여자가 폭행을 당한다. 가정폭력의 84%가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것이다. 가정 력은 미국 여성들이 입는 부상의 가장 큰 원인이다. 자동차 사고, 강도, 강간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이 가정 폭력으로 다치고 있다. 1998년~2002년 연구 조사에 의하면 49% 응답자가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혀졌다.>
위의 통계는 미국 사회의 가정폭력 현황을 말해 주고 있지만 한인사회의 가정 폭력 실태 또한-예측 가능한 통계가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면서도 체면이나 고정 관념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피해자 자신의 합법적이지 못한 신분 때문에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범죄행위'이므로 반드시 근절시켜야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당했을 땐 꼭 신고해야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연애 관계나 가족, 또는 친척 관계에서 한 사람이 상대방을 지배하고, 그에게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신체적 또는 심리적 학대를 가하고, 위협하고, 협박하며, 고립시키거나 경제적으로 억압하는 양식'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것'만을 폭력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폭력의 범위는 이 보다 훨씬 넓고 다양해서 '신체적인 폭력 이외에도, 언어적인 폭력,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폭력, 성적 폭력, 그리고 경제적인 폭력 까지도' 포함시키게 됩니다.
이민 생활에서 오는 언어장벽과 문화적인 이질감으로 인해 부적응을 겪게 되면 심리적, 정서적 불안, 경제적인 궁핍 등으로 인해 부부 관계에 이상 기후가 생기게 되고 그 결과, 가정이 삐그덕거리기 시작합니다. 이 때 부부간이건, 부모-자녀간이건 상관없이 문제에 직면하여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데, 안타깝게도 많은 가정들이 문제를 덮어버리거나 피하고 싶어합니다. 어떻게든 문제의 근원을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서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이런 과정에서 '욕설과 비난, 비하의 말로 상대를 억압하려는 언어적인 폭력,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신체적인 폭력, 집세나 생활비, 혹은 학비를 주지 않는 경제적인 폭력 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한인 이민사회에는 '가정폭력'을 방지하거나 근절(根絶)시키기 힘든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고질화된 체면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 별 것 아니다라고 지나쳐 버리고, 남의 일이니까 알아도 모른 척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무관심하게 되고, 내 가정에서 일어난 부끄러운 일을 혹 남이 알까 쉬쉬하며 덮어두다 보니 덧나고 곪아서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힘 있는 사람이 폭력으로 힘 없는 사람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 행위입니다. 사람은 채찍으로 다스려야 할 짐승도 아니고, 함부로 취급해도 상관없는 물건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자체가 '존엄성'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침묵하거나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혹, 피해자가 서류 미비자라 할지라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이민법에는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늘 속으로 숨어들지 마십시오.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지 마십시오.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한인커뮤니티의 전문기관(뉴욕가정상담소)에 즉각 전화하십시오. 여러분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긴 미국입니다.*
이계자 (뉴욕광염교회 사모, 부모교육 세미나 강사, kyejagu@gmail.com)
기사=뉴욕일보 (조이시애틀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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