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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05/13  조이시애틀뉴스
수필가 김학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목적"

▲미국에서 홀로 3아이를 키우고 암투병 등 여러 어려움에도 감동적인 수필을 쓰고 있는 김학인 한국 문인협회 워싱턴지부 초대회장 © 이동근

이번 주 시애틀에 최고의 날씨가 왔다. 계절의 여왕인 5월에 들어서도 춥고 흐린 날씨가 많았는데 드디어 화씨 70도-80도로 따뜻하고 햇살도 눈 부시다.

마침 오리건주에서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 오랜만에 화창한 날씨여서 어제는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가까운 비치에 나가 바다내음을 맛보고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94세 장모님은 지팡이를 짚었지만 그래도 잘 걸으신다. 아내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걸으며 동네에 핀 붉고 하얀 로도덴드론 꽃들을 설명한다. 햇살 속의 정다운 모녀 모습이 아름답다.

70도 햇빛 속을 걸으니 따사한 열기가 뺨에 닿아 상쾌하다. 동네 제일 높은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 빙하의 케스케이드 산맥에서 불어오는 시원하고 맑은 공기에 저절로 감사하다.

흐린 날에는 나오지 않는 하얀 레이니어 눈 산이 가까이 보이고 구름 한 점 없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 위에 태양이 뜨겁다. 아직도 정상에는 하얀 눈들이 보이는 산맥들이 둘러싸고 바다를 오가는 페리 뱃고동도 들리는 짙푸른 숲속 같은 꽃동네를 걸으면 정말 시애틀이 천당 아래 999당이라는 것이 실감된다. 

비 많이 오고 춥고 어두웠던 긴 겨울을 이겨내니 이제 따뜻하고 찬란한 밝은 날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행복지수가 높아가는 계절이다.

이번 주는 좋은 날씨 속에 바닷물도 많이 빠져 바닷가 조개잡이와 미역 따기, 굴 따기를 가는 한인들도 많이 보인다. 지인들이 따다준 바다소식 가득 담긴 미역이 따스한 햇살아래 반나절에 거뜬하게 말려진다.

기분 상쾌하게 산책하고 돌아오니 김학인 수필선 ‘안아 봐도 될까요?’라는 한 권의 책이 도착했다.

지난 달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인 안문자씨가 수필집 ‘숲에 잠겨 꿈을 꾸다’를 출간했다. 뒤표지를 보니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추천사를 쓴 협회 김학인 창립회장은 내가 신문사 근무시절 협회장 등으로 활동해 관련된 많은 기사를 썼었다. 특히 그녀의 인품과 미소처럼 글 표현이 시처럼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 좋아하는 분이었다.

추천사에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글이 있었다. "안문자 수필가의 푸른 꿈은 세월을 타지 않는다. 봄을 피우는 나무의 새순처럼, 여름을 가꾸는 숲의 요정처럼, 가을을 거두는 산길의 향기처럼, 겨울을 녹이는 한줌 햇살처럼 희망을 업고 따스한 손길로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그의 수필은 허허로운 가슴에 평화를 안겨준다."고 평했다. 추천사가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시였다.
 
펜데믹 뿐만 아니라 그동안 편찮으시다는 소식도 들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고 안성진 목사 음악회에서 반갑게 인사한 분이 있었는데 그녀였다.

안문자 수필집을 통해 다시 연결이 되어 반갑게 전화를 했더니 지난해 책이 나왔다고 해서 한권 부탁했다.

‘안아 봐도 될까요?’ 수필선은 김학인 작가가 낸 것이 아니고 한국현대수필 작가 대표작 선집 위원회가 발간한 것으로 워싱턴주 문인으로서는 유일해 더 귀하다. 

이미 그녀는 ‘비 그리고 맑음’, ‘시애틀 환상곡’, ‘내 마음의 벤치’, ‘해돌이의 노래’ 등 여러 수필집을 내었지만 이번 수필집은 대표 작품 29편이 수록돼 있어 더 기대가 되었다. 

그녀는 워싱턴주 한인사회 문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한 그녀는 2007년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를 설립하고 1대와 2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숙명여대 국문과, 미국 국립교육대(National College of Education) 대학원 영어교육 석사, 연세대학원 영어교육 박사를 취득했으며 시카고 볼타초등학교 교사, 한국방송통신대학 영문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형제교회 권사로서 부설 교육원(HJI)에서 수필작법을 강의하며 많은 수필작가를 발굴 양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수필문학가 협회에서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또 제21회 수필문학상(2011년), 제 6회 연암수필문학상(2018년)을 받았다. 이와 함께 어려운 가운데도 3자녀를 훌륭히 키워 중앙일보 장한 어버이 상을 수상했다.

▲2009년 장한 어버이 상 시상식때. 앞줄 왼쪽 아들 이동훈 변호사, 김학인 회장, 남편 이영창 장로. 그리고 문인협회 회원들 © 이동근

이번에 받은 조그만 수필집을 기쁘게 다 읽어보니 아름다운 문장 표현들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녀 80평생의 애환이 솔직하게 글 속에 담겨져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특히 초기 미국 이민생활에서 한인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이 가감 없이 묘사되어 있었다.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남편 대신 미국에서 혼자 3자녀를 키우기 위해 공장 직공, 간호보조원, 사진수정사 등 갖가지 힘든 일을 해야 했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에게 성경 읽어주고 어머니 임종 순간까지 묘사한 어머니 사랑 마음, 과학자가 되길 바랐으나 40년 전 워싱턴주 첫 한인 변호사가 된 첫째 아들 이동훈 변호사와 자녀들 이야기.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불안과 두려움, 슬픔과 우울, 하늘이 가려진 나락에 떨어진 암 투병. 

그녀의 글밭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마음에 글밭을 만든 것은 열다섯 살 때 전국학생위문편지 현상공모에 입상, 상금액을 어머니 손에 쥐어주며 가슴 떨리게 기뻤었다. 

“그러나 이듬해 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글밭을 가꾸기로 작정하고 흙을 고르기 시작했던 나는 수십 길 낭떠러지서 멀어진 하늘을 보며 무기력해진 두 손을 놓아버렸다. 그 후 내 삶의 뜰에는 비바람이 몰아쳤다. 글밭은 형체도 없이 폭풍에 쓸려갔고 황량한 들판에는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았다. 내 글밭은 담 밖으로 밀려나 잡초만 자랐고 나는 작은 울타리 안을 뱅뱅 돌다가 그 울타리를 통째로 지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녀의 아픔은 책에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었다. 57년에 결혼해 65년 8개월 함께 한 남편 이영창 장로(전 한양대학교 대학원장)가 지난해 1월 돌아가셨고 이로 인한 마음 상처인지 2011년 진단되었던 암이 지난해 7월 재발해 현재도 투병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학인 권사는 모든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은혜라고 감사하고 있다. 남편 사별과 암 투병으로 우울한 날 속에 살며 책 낼 형편도 되지 않았는데 작품선집을 해준다는 것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으니 하나님이 보답해 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을 쓸 때마다 삶의 애환 속에 깊이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라는 그녀는 “순수 문학은 창조주 하나님의 빛을 받아 우리가 빛을 반사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글을 통해 주님의 빛이 비춰지길 바랐다.

나는 현재 80대 어느 장로님 자서전을 집필 중에 있다. 교회 부흥과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그 장로님도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하나님이 살려주시고 보호해 주셨다며 감사하고 있다.

나의 94세 장모님의 경우도 일제강점기, 6.25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도 6남매를 잘 키우셔서 감사하다. 그러나 이제 고령이 되어 귀도 잘 들리지 않고 기억과 생각조차 희미해 지셨다. 초기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집안의 장모님의 경우도 많은 간증들이 있겠지만 글로 남기지 못해 안타깝다.

김학인 작가처럼 어려운 이민생활을 살고 있는 문학인들에게는 오히려 여러 애환과 악조건과 상황들이 좋은 소재가 되어 가슴을 울리는 한편의 시와 수필이 되어 더욱 영롱한 빛을 발 할 것이다.

김학인 권사님은 비록 현재 투병 중이고 연세도 드셨지만 그동안 그녀의 글밭에 뿌려진 많은 씨앗들이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거친 바람 부는 땅에서도 잘 다져진 옥토에 심겨져 더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으로 믿는다.

“안아 봐도 될까요?” 물음은 김권사가 입양아 데려다 주기로 3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갈 때 비행기 안에서 한 백인 여성이 우는 아이를 “안아 봐도 될까요?” 하고 묻고 돌봐줘 감사하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다음에 김학인 작가를 만나면 암 투병 중인 그녀에게 “안아 봐도 될까요?” 하고 허그를 하고 싶다. 그동안 좋은 글로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다. 

이동근 (전 시애틀 중앙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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