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23년 2월 12일, 우리 부부는 딸 내외를 따라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에서 루프트한자에 올랐다. 여객기는 시카고와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경유해서 이집트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더 나일 리츠-칼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내가 고대 이집트 문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아내하고 뷰리엔 시청 도서관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잡지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잡지는 표지에 '투트의 보물(TUT’S TREASURES)'라는 제목과 얼굴에 황금 마스크를 쓴 파라오의 모습을 싣고 있었다.
카이로 시간 2월 15일 호텔에서 만난 이집트 패키지 여행자들은 이집트학 학자로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여성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관광버스를 타고 동쪽 언덕에 있는 카이로 성채(Cairo Citadel)를 방문하였다. 12세기에 아이유브 왕조(Ayyubid dynasty)의 시조인 살라딘(Saladin)이 십자군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지었단다.
성채 안에는 건물이 많이 들어섰는데, 그중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Mosque of Muhammad Ali)는 1976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보호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망루에서 내려다보니 카이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다음에 방문한 곳은 건물 외벽이 산호색으로 덮이고 입구가 둥그런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이다. 박물관 앞에는 파피루스가 자라고 있다. 미나릿과의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이 박물관은 7천여 년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전시실에는 12만 점의 고대 유물이 전시중이며 지하실에는 15만 점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나일강이 이집트 문명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이집트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태양신의 사자’ 곧 풍뎅이(scarab)가 벽면에 붙어서 태양을 운반하는 조각이 보였다. 옛날 나일강이 범람하면 풍뎅이가 제일 먼저 땅에서 나와 동물의 배설물을 공처럼 뭉쳐서 굴리고 갔는데, 그 모습이 태양을 운반하는 형상과 같았다고 하여 풍뎅이를 ‛태양의 사자’라 부르게 되었다. 넓은 홀에는 무게 80톤에 높이 12m가 되는 람세스 2세(Ramses 11)의 석상이 서 있다. 제19왕조를 67년간 다스린 막강한 파라오였다.
박물관 1층에는 시대순으로 상(上) 이집트 왕인 나르메르가 하(下) 이집트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통일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기록한 팔레트(Palette of King Narmer), 화강암으로 만들고 상형 문자를 새긴 파라오 석상들, 석관, 부조물, 파피루스 문서들, 죽은 자의 심판이 기록된 사자의 서(The Book of the Dead) 파피루스, 장례용 예술품, 왕비들의 보석 및 장신구, 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고대 이집트 문명의 고귀한 고적들이다. 고대 이집트 왕인 파라오는 신처럼 숭배를 받았다.
박물관 2층에는 이집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Mask of Tutankhamun), 황금 왕좌, 황금관, 황금 목걸이, 황금 샌들, 황금 의자, 파라오를 미라로 만들 때 내장을 담는 데에 사용한 대리석 항아리, 투탕카멘의 실물 크기 입상, 람세스 2세의 미라, 그 외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고전미를 음미하려면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것 같다.
나는 상형 문자(hieroglyphic characters)가 궁금해서 안내인에게 물었더니 프랑스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Jean Francois Champollion, 1790~1829)이 상형문자를 해독하여 책으로 냈단다. 이 문자들은 기원전 3000년대 초반에 생겼다. 기원전 2700년대에는 상형 문자로 문장을 쓰게 되었다. 서기 1세기에는 로마인들이 사용했으며 그 후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고대 이집트 문서 해설에 따르면 ‛사자(死者)의 서(書)’는 고인이 지하 세계를 건너 사후 세계에 무사히 이를 수 있도록 주문과 방법을 수록한 일종의 저승 안내서이다.
인류 최초의 종이인 파피루스에 그렇게 쓰여 있단다. 기원전 1700년 무렵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을 다스리는 오시리스(Osiris) 신은 죽은 자의 심장을 큰 저울에 올려 정의와 지혜의 여신 마트(Maat)의 깃털로 무게를 재는데,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이승에서 죄를 지었다고 판단하며 심장은 괴물이 먹어 버린다. 이승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세케트 아아루 곧 갈대의 들판’이라는 천국으로 들어가고.
나는 문자를 만들어 후대에 남긴 이집트인들에게 그지없는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새(鳥)의 그림’ 같이 생긴 문자이지만 바위에 새겨 놓았기에 그 기록들이 남아서 최고 문명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의 상형 문자를 보자, 나는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널드 토인비(Arnold J. Toynbee)가 저술한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 TOYNBEE)』라는 책이 머리에 떠올랐다. 서울에서 공직에 다녔을 적에 헌책방에서 샀다.
토인비의 책을 요약하면 인류의 역사는 도전(challenges)과 응전(responses)의 역사라는 것이다. 문명은 탄생(geneses)과 성장(growths)과 쇠퇴(breakdowns)와 붕괴(disintegrations)라는 단계를 거친다.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도전이 있어야 하고 그 도전에 대한 효과적인 응전이 있어야 한다. 토인비는 27년간의 집필 끝에 책을 펴냈다.
우리 조선 왕조의 세종(世宗)은 1446년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세상에 반포하였다. 세종 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한글을 창제한 것은 우리 민족의 최대 걸작이요 한글 문자 문명의 탄생이다. 그런데도 일제 강점기에 통감부는 조선어와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는데, 한글 문자 문명에 대한 도전이었다.
2월 16일 아침에는 우리 일행이 관광버스를 타고 기자 평원(Giza Plateau)에 있는 대스핑크스(Great Sphinx)를 찾았다. 사자의 몸과 사람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석회암 조각상이다.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 카프레(pharaoh Khafre)의 명령으로 암석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길이 73m 폭 19m 높이 20m가 되며 대피라미드(Great Pyramid)와 함께 이집트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대스핑크스는 코가 파손되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고대 이집트 문명의 권위와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대스핑크스에 작별을 고하고 돌아서자, 저만치서 낙타 몰이꾼들이 낙타를 타고 손들을 흔들며 지나간다. 낙타를 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는 않겠지.
우리 일행은 뒤쪽에 있는 대피라미드(Great Pyramid)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기자(Giza)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크고 오래된 피라미드이자 이집트 제4왕조의 파라오 쿠푸(pharaoh Khufu)의 무덤이란다. 기원전 2570년에 세워졌으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보호 지역이다.
이 피라미드는 높이가 147m이며 네 밑변이 각각 230m이고 평균 2.5톤의 석회암 돌 230만 개로 만들어졌다. 대피라미드 속에는 왕의 방과 왕비의 방이 있다. 국토의 90%가 사막인 이집트에서 문명이 싹튼 것은 나일강이 준 혜택이라는 것이다.
2월 17일 오전에 우리 일행은 카이로 공항에서 여객기를 타고 남쪽에 있는 아스완(Aswan)에 도착하였다. 아스완 시내의 필레 신전(Philae Temple)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아길키야섬(Agilkia)에 있는 필레 신전을 찾았다. 바위섬들의 낯설은 풍경이 아름다워 보인다. 신전의 첫째 탑문 왼쪽 벽면에 묘사된 파라오가 몽둥이로 적들을 굴복시키는 장면과 필레 신전에서 신들의 어머니인 이시스(Isis) 여신이
호루스(Horus)를 낳았다는 아야기가 인상적이다.
그 다음 날 여행객들은 항공편으로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s)을 방문하였다. 이 신전은 기원전 1264년에 람세스 2세가 20년에 걸쳐 본인과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해 만든 신전이란다. 산과 같이 거대한 바위를 파내고 조각해서 석상을 만들었다. 아스완 댐이 건설된 후 수위가 60m나 높아지니 아부심벨 신전이 수몰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1964년부터 20여 년에 걸친 유네스코의 노력과 현대 공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65m 위로 이전하게 되었다.
우리 여행객들은 아스완으로 돌아와서 크루즈를 타고 콤 옴보(Kom Ombo)에 도착하였다. 모두가 걸어서 콤 옴보 신전을 찾았다. 이 신전은 남북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매의 머리 형상인 호루스(Hawrus) 신과 악어의 머리 형상인 소베크(Sobek) 신을 모시고 있다. 신전 벽면에는 갖가지 의료 도구와 의학에 관한 그림들과 상형 문자들이 음각으로 부조되어 있다. 3천 년이 넘는 풍화를 이기고 기둥에 남아 있는 부조 조각들을 보노라니,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우리 일행은 콤 옴보에서 크루즈를 타고 북쪽에 있는 룩소르(Luxor)에서 내렸다. 관광버스를 타고 카르나크 신전군(神殿群)을 방문하였다. 아몬 대신전(Temple of Amun)은 이집트의 신전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단다. 아몬 대신전의 ‛대형 다주식 방(Great Hypostyle Hall)’은 카르나크 신전군의 배미란다.
하트 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30m이다. 새로 발견된 청동제 신상(神像)은 1만 7,000개이다. 거대한 기둥과 벽에 새겨진 부조들과 상형 문자들을 바라보고 이집트 문명의 위대함을 느꼈다.
관광객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파라오들의 공동 묘역인 왕가의 계곡(The Valley of the Kings)으로 들어가 투탕카멘의 무덤(King Tut’s tomb)이 가까운 곳에서 내렸다.
루시아 갈린(Lucia Gahlin) 이집트 고고학 전문가가 지은 『고대 이집트의 신과 종교(GODS AND RELIGION OF ANCIENT EGYPT)』라는 연구서에 따르면, 투탕카멘(c.1336-c.1327 BC)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였다. 파라오의 무덤은 1922년 11월 4일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아내와 딸은 따가운 햇볕을 쬐며 좌우에서 내 팔을 붙들고 투탕카멘 무덤으로 가는 길을 길을 안내하였다. 관광객들은 나이가 89세인 내 모습을 보고는 웃었다. 무덤 입구에는 ‛TOMB OF TUT ANKH AMUN NO : 62’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사위를 따라 층계를 내려갔더니, 얼굴과 양쪽 발이 검은 투탕카멘 미라가 흰 이불을 덥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진에서 본, 컴퓨터 단층 촬영을 거쳐서 복원된 미라 얼굴은 갈색이고 이목구비가 수려하다.
우리 가족은 석별을 아쉬워 하였다. 2월 21일 우리 관광객 일행은 항공편으로 이집트 홍해 해변 휴양지인 샴엘 셰이크(Sharm El Sheikh)에 도착하였다. 멋진 호텔에서 여행의 피로도 풀고 색다른 요리도 먹고 단잠에 빠졌다. 다음 날은 카이로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우리 가족은 루프트한자를 타고 시애틀로 향하였다.
이경구
수필가. 1998년 <한국수필> 등단
작품집: 소렌토 아리랑, 시애틀의 낮달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현재 위싱턴주 뷰리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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