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아침이 밝았다. 나들이 가기에 좋은 날씨다. 9월 2일부터 2022년 연례 위싱턴주 박람회(Washington State Fair)가 퓨알럽(Puyallup)에서 열리고 있다. 효시(嚆矢)가 1,900년인 박람회는 9월 25일에 끝난다.
오늘 오전에는 딸 내외가 승용차를 타고 밀러스 크리크 마을(Village at Miller's Creek)에 와서 우리를 태우고 161번 도로로 나가 남쪽을 향해 달렸다. 파어니어 공원을 지나자 목적지가 보였다. 오른쪽에 워싱턴주 박람회 안내판이 보이자 사위가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사위는 박람회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우리 일행을 '좋은 하루 되세요(HAVE A GREAT DAY)’라는 안내판 앞으로 안내했다. 퓨알럽은 워싱턴주 피어스군에 있는 시의 하나다. 명칭은 아메리카 인디언족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인심 좋은 사람들(the generous people)’이라는 뜻이란다. 시애틀에서 56km가 떨어져 있다.
워싱턴주 박람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박람회의 하나란다. 우리 일행은 박람회에 들어가 오른쪽의 화려한 모습부터 구경하였다. 어느 붉은 건물 화단 앞에 이르니, 손뼉같이 생긴 의자 앞에 발 마사지기 3대가 놓여 있기에 아내하고 다가가서 앉았다. 손목들이 뒤쪽으로 꺾이고, 손가락 4개가 위쪽으로 꺾여있는 모양이 그럴듯하다. 딸은 우리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우리 부부는 10여 년 전에 시애틀 남쪽의 뷰리엔으로 이민 와서 살던 어느해 가을에 사위 가족과 함께 워싱턴주 박람회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은 'Pumpkin’이라는 초면의 서양계 호박과 실내 전시장에 울긋불긋한 과일들을 원형으로 진열한 모습인데, 아름다운 꽃밭 같았다.
펌프킨 진열대 앞에 이르자, 나는 큼직한 펌프킨과 위싱턴주가 주는 “GRAND CHAMPION / GIANT PUMPKINS / AGRICULTURE / EXHIBIT / WASHINGTON STATE FAIR / PUYALLUP 2022”라는 글자가 담긴 상패를 앞에 놓고 앉아있는 부인을 만났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한국인 노인입니다. 에세이를 씁니다”라고 말하고 상패에 관해 물어 보았다. 부인은 웃으며 일어나 허연 손을 포켓에 넣더니 명함을 꺼내 내게 주었다. 명함에 모든 자료가 들어 있다고 하였다. 명함을 보니, '조엘과 마리 루 홀랜드(Joel & Mari Lou Holland)’라는 부부 이름이 쓰여 있다. 나는 부인의 친절한 안내가 고마웠다.아내와 딸도 좋아하였다.
그렇게 즐거운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서재에서 인터넷으로 'Joel & Mari Lou Holland’를 검색해 보았다. 그랬더니 2017년 10월 9일 캘리포니아주 하프 문 베이(Half Moon Bay)에서 제44차 연례 세계 자이언트 펌프킨 선발 대회(The 44th World Championship Pumpkin Weigh-Off)가 열렸는데, 워싱턴주 퓨알럽 출신의 조엘 홀랜드가 우승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내가 워싱턴주 박람회에서 만난 마리 루 홀랜드 부인의 남편이다.
조엘 홀랜드 씨가 출품한 펌프킨은 무게가 2,363파운드(1,072kg)에 달했다. 역대 대회 중에서 가장 무거웠고 (Heaviest pumpkin in the world for 2017 at 2,363 lbs!), 상금은 16,541불을 받았다. 파운드당 7불을 받은 것이다. 2,363 파운드가 나가는 거대한 펌프킨 옆에서 사진을 찍은 조엘 홀랜드 부부는 삶의 성취감을 즐기는 것 같았다. 상금을 탄 자이언트 펌프킨은 '행복의 덩어리’ 같았다.
신문 기사는 조엘 홀랜드 씨의 활동도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첫째 목표는 펌프킨 재배자들이 펌프킨을 잘 길러서 좋은 가격을 받도록 도와준다. 수입의 일부는 미국 적십자사, 아동 병원, 폐암 연구소, 기타 공익 단체에 기부한다. 워싱턴주에서 미국 농부를 지향하는 사람을 도와준다.
오늘은 10월 21일 금요일이다. 오후가 되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124일 만에 내리는 가뭄 해갈의 단비다. 우리는 집 뒤쪽의 네거리에 있는 마을 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 입구에는 오렌지 펌프킨과 스쿼쉬(Squash)가 많이 나와 있다. 부인들이 반기며 사 간다.
큰 오렌지 펌프킨은 개당 7.99불이다. 뼘으로 꼭지부터 꽃이 진 자리까지의 길이를 재어 보니까 두 뼘 반이 되었다. 작은 오렌지 펌프킨은 하나에 3.99불이고 주먹 만한 하얀 펌프킨은 개당 79센트이다. 아내는 큰 오렌지 펌프킨을 샀다. 아내가 쑨 펌프킨 죽이 맛있다.
소년 시절 봄이 봄면, 나는 아버지와 텃밭에 호박씨를 심었다. 호박꽃은 한국 농촌 정서에 가장 알맞은 꽃이다. 나는 마당 우물물을 자주 길어다 호박에 주었다. 어머니는 호박죽을 쑤었는데, 온 식구가 좋아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워싱턴주 퓨알럽에 와서 펌프킨 농장도 시찰하고 연례 워싱턴주 박람회도 구경하면 좋겠다.
이경구
수필가. 1998년 <한국수필> 등단
작품집: 소렌토 아리랑, 시애틀의 낮달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현재 위싱턴주 뷰리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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