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농업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나 보고 피를 뽑으러 논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논으로 갔다. ‘피‘란 벼농사에 아주 골칫거리인 벼와 똑같이 생긴 잡초이다. 벼를 모 부어 싹을 키울 때 어디서 바람에 날아와 ’피‘가 섞인다. 모가 자라서 논에 옮겨 심은 뒤 ’피’를 뽑아내는 일을 ‘피사리’라고 한다.
초록색 모가 자라고 있는 넓은 논에 모두 다 벼뿐이지 피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벼가 자라고 있을 때는 아무리 평생 농사짓는 기술자라도 피와 벼를 얼른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피는 벼와 생김새가 너무도 꼭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피는 빛깔, 잎의 모양. 자라는 상태 등 무엇 하나 진짜 벼와 다를 바가 없이 너무도 꼭 닮았다. 이럴 때 위폐감별기로 금방 가짜 돈을 가려내듯이 가짜 벼인 ‘피’를 감별할 수 있으면 좋은데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다.
나는 오늘 아버지로부터 피와 벼를 구별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배웠다. 아버지는 피 잎사귀를 펼쳐 보이며 “피 잎은 가운데에 선명한 흰 줄이 세로로 나 있다. 벼는 이 흰줄이 없다.” 라고 하셨다. 과연 흰줄이 가늘게 보였다.
다음에 아버지는 “피 줄기는 뿌리 근처로 갈수록 붉은색을 띤다.” 며 보여주셨다. 붉은색은 희미했다. 또 피 잎사귀를 손으로 만지면서 반들거린다고 하셨다. 아버지를 따라 만져봤는데 감각을 잘 몰랐다. 촉각으로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여 시각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피와 벼 잎사귀를 뜯어 햇빛에 비춰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잎사귀를 햇빛에 비춰볼 때 투명한 초록이면 그것이 ‘피’이다.”라고 하셨다. 과연 피 잎사귀와 벼 잎사귀를 뜯어 햇빛에 나란히 비춰보니 벼는 어두운 초록색이고 피는 밝고 투명한 초록색이었다. 아버지는 얼른 볼 때 피는 잎사귀색이 벼보다 진한 푸른색을 띈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보니 구별이 가능하였다. 나는 햇빛에 비춰보고는 벼와 피를 구별하여 피사리를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일이 대조해 보지 않고도 감(感)으로 피를 뽑으셨다. 뜨거운 햇볕이 내려 쪼여 땀이 비 오듯 하였다. 아버지는 침침한 눈으로 용케도 피를 족집게처럼 뽑아 내셨다. 나는 아버지의 반의반도 피사리를 못하였다.
나는 농업고등학교에서 벼와 피를 구별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실습을 통해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구별을 하지 못한다.
피사리를 했지만 남아있는 피는 벼를 누르고 벼 보다 몇 배나 왕성하게 생육 한다. 뿌리가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 비료분을 전부 흡수하여 벼가 자라지 못한다. 벼보다 빨리 자라 영글어 피 씨가 떨어진다. 이 때 벼는 아직 영글지 않을 때이다. 피를 벼와 같이 베여 수확하면 피 씨는 이미 다 논에 떨어져 내년에 온 논에 피가 판을 칠것이다.
피는 볏과에 속해 제초제약도 잘 듣지 않는다. 피사리를 제때 안 해 주면 내년에 피논이 되고 만다.
가수 신신애는 가짜가 난무(亂舞))하는 세상을 풍자(諷刺)하며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인생 살면 칠팔십년, 화살 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중략.....
배우이자 가수인 신신애가 1993년에 이 노래를 불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가짜를 거꾸로 ‘짜가’로 비아냥대며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짓 즉 짜가를 비판하며 세상은 요지경속이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불렀다.
나는 지금도 신신애가 이 노래를 부르면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를 따라 부르며 상념에 잠기곤 한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가짜 돈이 진짜 돈을 밀어 내고, 가짜 벼 즉 ‘피’가 진짜 벼를 누르고 잘 자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도 가짜 참기름이 판을 치니까 깨도 ‘참’깨 이것을 기름 짜 ‘진짜 참’기름 그것도 부족하여 ‘진짜 진짜 참 참기름’으로 부르고 있다.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 명품과 짝퉁(模造)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아니 가짜가 진짜를 능가하여 거짓이 진짜행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가짜가 아무리 진짜인 양 속여 봐도 결국은 가짜임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인류는 참을 위해 거짓과의 전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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