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걸을 수 있을까? 여행 유튜버들의 활약상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어떤 영상에서 아프리카 대륙을 작은 카트를 밀며 도보로 횡단하는 한 유럽인을 보았다. 자동차도 아니고 모터사이클도 아니고, 그 거대한 아프리카 땅 위를 걷고 걷는 그의 모습에 마치 지구의 성자같다는 댓글이 달렸다. `
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걸어 보기로 했다. 6번 국도를 따라 지도 위에 신사임당이 건넜을 서울과 강릉 사이에 길을 이어 선을 그었다. 그 선 안에는 신사임당 부부의 또 다른 보금자리였던 평창의 백옥포리도 있고 그녀가 친정을 떠나며 어머니를 그리던 굽이굽이 대관령 길도 있다.
신사임당은 1504년,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1551년 서울 삼청동에서 세상을 떠나 시가인 파주에 묻힐 때까지, 1522년 결혼 이후 강릉과 서울을 이동하며 살았던 여인이다.
요즘은 파주에서 양평까지 경의·중앙선 전철이 있고, 서울에서 강릉까지 KTX-이음 고속열차가 있지만, 사임당은 그 시절에 어떻게 그 먼 길을 오가며 결혼 생활을 유지했을까?
강릉을 지날 때마다 문득 떠오르던 그 시대의 사임당 일행의 이동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의문은 역설적으로 나의 이번 도보여행을 통해 거의 해소할 수 있었다. 비록 시대는 달랐지만 잘 준비된 장거리 이동 여정이란, 누구에게나 일상을 떠난 모처럼의 기분 전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 시절 신사임당 가족은 계절과 날짜를 잘 선택하여 숙소와 쉼터에 대한 모든 지역 정보를 모으고 길을 잘 아는 안내자와 함께 떠났을 것이다. 나만 해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10월 하순을 택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서울에서 양평까지 전철을 탔고, 그다음은 양평(역)양평군 청운면 횡성군 횡성읍 횡성군 둔내면 평창군 장평(리) 평창군 대관령(면) 강릉 방향으로 도보여행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무리하지 않고 가능한 한 어두워지기 전까지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 다시 계획된 구간을 걸어 나갔다.
처음에는 비포장 시골길을 선호했었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는 집과 빈 비닐하우스를 지나면서 점점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외지인의 발소리를 들은 개들이 멍멍 짖는다. 어떤 개는 풀려 있어서 나를 보고 따라온다.
외국 여행 중 개에게 물렸다는 도보 여행자가 생각난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풀린 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달리는 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는 차가 다니는 찻길 가까이 걷는 것이, 사람 없는 곳에 짐승과 대적하는 것보다는 안전에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처음 계획대로 6번 국도에 바짝 붙어 자전거도로나 일반 보도로 걸으며 목표 지점을 이어 나갔다. 길가 배추밭 근처로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작업복 차림의 청년이 나타났다. ‘이 길로 가면 **로 가는 방향이에요?’라고 물으니, 웃기만 한다. 외국인인가 보다. ‘차이나?’ 라고 물으니, ‘차이나’라고 되받으며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는다.
밭에는 아무도 안 보이더니 어디선가 외부인인 듯한 근로자가 모여 수확과 포장 작업을 이어간다. 바로 앞 도로에는 운송용 트럭이 대기하고 있다. 지나가다 어쩌다 만난 사람들은 내가 길의 방향을 물으면, ‘여기서 멀다 멀다’ 한다. 길에는 사람이 없다. 밭과 자동차만 있는 길. 날이 어둡기 전에 오아시스 같은 농어촌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막차 종점에 내린다. 그곳이 밤을 지낼 장소이다.
신사임당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현재는 용평면] 백옥포리에 집을 얻었다. 상상해 보자면, 사임당은 강릉 친정을 떠나 시댁 서울을 향해 대관령을 넘는다. 그러다 대관령을 넘은 어느날, 한 마을에 마음이 끌리고 그곳에 독립된 거처를 마련한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봉평 안내판이 나타나자 나는 바로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봉평 재래시장을 지나 그곳에서 멀지 않은 백옥포리에 도착했다. 수려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의 마을이다.
하천을 따라 산책길을 걸었다. 시선의 끝마다 녹색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날은 백두루미가 날아와 안길 것 같이 파드득 환하다. 사임당은 이 마을에서 천재 유학자 이율곡을 잉태했다고 전해진다. 이번에는 빠르게 지나가지만, 다음에는 봉평만 따로 와서 메밀국수 집도 찾아다니고 이곳 분위기를 좀더 느껴보고 싶다. 애써 찾아간 만큼 여운이 오래 남았다.
한동안 걸어서 녹색교통 안내판에 주문진 지명이 뜨기 시작했다. 이제 걸어갈 길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서운해진다. 아쉬운 마음에 대관령 휴게소가 있는 횡계리에서 근처 관광지인 사설 양떼목장에 들렀다.
휴게소에서 오랜만에 관광객에 섞여서 간식도 먹고 담소도 나누었다. 경기도 한 도시에서 출발했다는 도보여행 중인 청년도 만났다. 다시 대관령을 걸어 걸어 내려가다 어떤 운전자분이 도보 중인 행인을 위하여 차를 멈추어 주셨다. 나는 감사히 탔고 청년은 일부러 걷는 중이라고 하며 정중히 사양하였다.
나는 대관령박물관 앞에서 내려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관람하다 보니 아까 동승을 사양했던 청년이 걸어서 박물관에 도착하는 것이 보인다.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도 좋았고 관람객을 위한 휴식 공간도 잘 구비되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물레방아 옆에서 상쾌한 휴게 시간을 보냈다. 입장료도 마침 율곡제 기간이라 무료였다.
대관령을 넘으면 강릉에 다 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는 그때부터도 만만치 않은 거리의 길이 이어진다. 이 여행의 종점으로 정한 바닷가는 계속 동쪽으로 더 걸어야 한다. 자동차도로 옆으로 보행로를 연결하기가 점점 아슬아슬하다. 결국 얼마를 걸었을까, 노선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몇 정류장을 그냥 보내다, 어느 정류장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목 행 버스에 올라탔다.
안목해변에 도착하니 커피 축제 (강릉커피축제, 2024. 10. 24~10. 27)가 열리고 있다. 긴 도보여행 후 빈 바다가 나를 맞을 줄 알았는데, 페스티벌이 열리고 사람들이 북적인다. 각종 공예품 파는 부스와 버스킹과 영화 상영 등, 축제의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해변에 모인 사람들의 흥이 알록달록한 장식 불이 되어 바다축제를 빛낸다.
도보여행은 지루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권하기에는 교통안전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도 즉석에서 감자를 갈아 감자전을 부쳐주던 한 식당 주인의 말에 의하면 이 대관령을 향하는 젊은 도보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점은 갑자기 비가 많이 온다든가, 많이 걸어 다리에 물집이 생긴다든가 했을 때의 불편함이었다. 좋았던 점은 걸으면서 물소리 바람 소리를 직접 듣거나 보고 싶은 경치가 나타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매인 곳 없이 그 광경을 실컷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없을 때는 생각에 잠기고 사람이 보이면 한마디라도 덕담을 나누면서 걷는다.
도보여행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만 해도 그것이 여행의 궁극적 목적이 된다. 그 걸음은 모여서 성취감이란 득점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이 글을 빌어 안쓰러워 보이는 도보 여행자를 배려하여 라이드 (특히, 터널 앞에서)를 해주셔서 수 km 이동 구간을 줄여 주신 지역의 운전자님들께 감사드린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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