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간부후보생으로 지원하여 전쟁 당시 포병 장교로 복무하였다. 필자의 소속 포병대대는 평안남도 덕천 지역에서 중공군의 포위망으로 병력과 장비 손실을 입고 후퇴 후 인원과 장비 보충을 위해 1951년 3월에는 안동의 한 학교 건물에 주둔하고 있었다.
하루는 부대 내에 뜻하지 않은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병사 한명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병사는 보충병으로 배치된 신병 중 한사람이였다. 직속 상관인 포대장(중대장)은 즉시 선임하사를 불러 하사관 몇명과 함께 주둔지 일대를 수색할 것을 지시하였다.
선임하사 일행은 종일 주둔지 일대를 샅샅이 탐색했으나 실종 병사는 끝내 찾지 못하였고 결국 포대장은 대대장에게 실종보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대대장은 포대장에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단 시일내에 해당 병사를 찾아오라는 엄한 명령을 내렸다.
포대장은 일단 포대 내에서 대책회의를 개최한 결과 병사의 원 주거지로 찾아가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병사는 안동 서쪽에 위치한 상주가 고향이였고 부대 내에 그의 주소가 비치되어 있었다. 안동에서 상주는 근 200리 길이며 도보로는 2일은 걸리는 거리이다. 선임하사와 운전병은 지프차로 상주로 달려가보니 그 병사가 그곳에 와있어 그를 대동하여 부대에 복귀하였다.
포대장과 대대장은 이 사건을 탈영으로 규정하였으나 당사자가 신병이고 군대 규율과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점을 고려해 훈계형식으로 끝내고 그이상의 처벌은 하지 않기로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사건 발생 후 약 2주 후 이 병사가 또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포대장은 또다시 선임하사를 불러 상주 본가에 가서 이 병사를 대려올 것을 명하였고 그 병사는 다시 상주집에서 발견되어 선임하사와 함께 부대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대 내의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탈영을 했으니 중형에 처해져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것이다. 탈영병사는 대대장실에 끌려가 즉석 재판을 받게되었으며 전 부대원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중형을 기대했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처벌 없는 엄중한 훙계로 종결됐다. 대대장의 관대한 판결은 곧 부대원의 사기앙양에 힘을 보탰고 앞으로의 전투태세 준비에 더욱 효율적으로 작용하게 됐다.
그후 얼마동안 이 탈영병 사건은 일단락을 지은듯 보였으나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제3차 탈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탈영병사는 또다시 부대로 끌려와서 구금되고 이번에는 포대장, 대대장과의 면담과 대화도 없이 대대장의 즉석판결이 내려졌다. 즉 “총살형”이였다. 그당시 전시상황하에서 지휘관에게 부여된 즉결처분권이 발동되었으며 대대장도 더이상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내린 엄단이었다.
부대주둔지 뒷산 언덕에 매장될 땅구덩이를 준비하고 대대장은 그곳에 대대장병 전원을 소집한 후 탈영병을 매장구덩이 앞에 꿇어앉히고 그뒤에 6명의 하사관 소총수를 대기 시켜놓았다. 총살형이 준비되자 대대장은 대대원 전원에게 총살형의 불가피함을 설명한후 곧 6발의 총성이 울리자 탈영병사는 미리 준비된 땅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한 인간의 기구한 종말을 고하는 엄숙하고 처절한 장면을 대대장병 전원이 목격했으며 부대원 가운데는 흐느끼고 눈물을 흘리는자가 한두명이 아니였다. 필자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필자는 아직도 이 병사가 왜 두번이나 엄한 훈계를 받고서도 탈영을 계속 강행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동료 병사들 말에 의하면 이 탈영병은 평소에도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으며 항상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듯 보였다고 한다.
필자는 군복무 중 엄한 군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여러명 보았으며 위의 탈영 병사도 그중 하나로 보고 있다. 그후 들려온 말에 의하면 이 탈영병사는 거주지에 홀어머니와 징집 직전에 결혼한 신부를 남겨두고 입대하였다는 안타까운 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이 낳은 한집안의 슬픈 이야기임에 틀림 없다.
필자는 전쟁 중 피아 전사자는 물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목격했지만 위의 탈영병 총살건은 너무나 특이한 사건이므로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늘 필자는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독자 여러분께 전쟁 중에 겪은 이 눈물겨운 비화(悲話) 한토막을 소개하는 바이다.
윤영목
농생물(병충해)학 박사
서북미 6.25 참전국가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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