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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태생의 미군 참전용사 버트 룬드. |
올해 89세로 시애틀에 거주하는 스웨덴 태생의 버트 룬드는 1949년 12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하지만 시애틀에 도착한지 불과 6개월만에 징집된 그는 당시 22살의 나이에 하사 계급으로 미군에 입대, 한국에 파병됐던 한국전 참전용사다.
스웨던에서는 공군으로 잠시 복무했던 룬드는 한국에서 10개월간을 주둔했지만 주둔한 지역 등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쉽게도 당시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룬드는 한국전 참전으로 미국과 한국 정부로 부터 많은 공로훈장을 받았다.
룬드는 "추운 스웨덴 날씨에 익숙한 나로서는 한국의 겨울날씨는 참을만 했지만 여름날씨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헬멧을 쓰고 있으면 땀이 줄줄 흘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룬드는 6.25 당시 스웨덴 적십자가 부산에 대규모 야전병원을 열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한국전 인연으로 한국을 사랑한다는 그는 현재 살고 있는 시애틀 매그놀리아 지역 주변에 많은 식당, 세탁소 등 비즈니스를 하고 한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룬드는 청년시절 미국으로 이민온 그의 가족과 친척은 대부분 여전히 스웨덴에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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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트 룬드가 한국과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공로훈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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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트 룬드가 한국정부가 메달과 함께 수여한 '평화의 사도' 표창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
같은 한국전 참전용사로 룬드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제임스 배너맨(83)은 벨링햄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 거주하는 벨링햄 토박이다.
땅바닥을 기어갈 자신이 없어 육군이 아닌 공군을 택해 1952년 20세의 나이에 입대했다는 배너맨은 한국전 참전을 위해 1953년 1월 군산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한국을 오는데 거의 3일이 걸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2시간 걸려 호놀룰루에 도착했고 다시 도쿄까지 12시간이 걸렸다. 그곳에서 대기하며 명령을 기다린 끝에 한국 군산기지에 도착한 것이다.
공군 보급부대에 소속된 배너맨은 폭격편대가 주둔해 있는 텐트에서 첫 몇일밤을 지내던 중 시차로 인한 피로감으로 곤하게 자는 자신을 깨운 선임병이 구내식당에서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드럼통에 담아 버리고 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다른 2명의 병사들과 함께 음식찌꺼기가 담긴 드럼통을 트럭에 싣고 먼지가 나는 자갈길을 지나 10마일쯤 가서 구덩이에 드럼통의 음식물을 쏟아버리려는데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 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
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백명이 주변에 살면서 미군이 쏟아 버리는 음식 찌꺼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드럼통 안의 음식이 땅에 버려지지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배너맨은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그래서 이들을 도와줘야한다는 절실한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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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공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제임스 배너맨이 부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
배너맨은 한국전 당시에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였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침략을 받아 삶이 엉망이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며 "한국인들은 예절바르고 친절했고 열심히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폭격으로 완전히 부서진 폐허에서 재건을 시작하는 한국을 뒤로하고 1953년말 미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벨링햄에서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벨링햄시에서 회계사로 근무했다. 처음에는 모두 손으로 직접 써서 회계장부를 기록했지만 5년 뒤에야 IBM 컴퓨터가 들어와 전산화작업을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배너맨은 30년간 시청에서 근무한 후 정년퇴직했다.
지난 2003년 한국 정부가 항공권도 제공하며 참전용사들을 초청한 행사가 있었지만 배너맨은 일이 너무 바뻐서 한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워싱턴DC의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만찬에는 참석한 적이 있는 그는 행사에 나온 대사가 "한국을 구해준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는 말과 함께 3번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배너맨은 "우리 참전용사들에게 늘 감사해하는 한국인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미국 남부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었을때 여러나라들 가운데 한국이 가장 많은 지원을 해줬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사진=워싱턴주 벨링햄에서 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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