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l  로그인  l  회원가입  l  아이디/비밀번호찾기  l  2026.10.28 (수)


 //www.joyseattle.com/news/30194
발행일: 2017/03/20  조이시애틀뉴스
[기획특집] "한국전이 끝난지 반세기만에 고교졸업장 받았어요"


스포켄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용사 리차드 헤이즐마이어 씨가 한국정부로 부터 받은 훈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전쟁터에 나갔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워싱턴주 스포켄의 조용한 주택가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생활하고 있는 리차드 E. 헤이즐마이어(83)는 1952년 가을부터 1953년 봄까지 한국에 파견된 한국전 참전용사다.


미군 7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그는 평강, 철원, 감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고지를 차지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고지확보를 위한 총력전이 펼쳐지면서, 피의 능선에서만 적군과 아군 4만5천명이 전사했다.


헤이즐마이어는 21살의 나이에 PF3 계급으로 한국전에 참전, 제7통신중대 소속으로 트럭을 운전하며 통신장비, 전선, 배터리 등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등포, 춘천, 동두천 등지를 다니며 부대에서 필요로하는 통신장비를 실어 날랐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서울이 북한군의 폭격을 받아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어서 사람들이 군에서 사용하는 막사를 얻어서 천막을 치고 생활을 하기도 했고 식수시설 등 위생도 엉망이었다."
 

헤이즐마이어는 조지아주 포트 고든에서 군에 입대, 뉴저지 기술학교에서 통신기술을 배우자마자 한국으로 보내졌다. "처음에는 어디를 가는지도 몰랐다. 각종 통신기기를 수송하며 서울 외곽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당시에 한국전에 파병된 미군은 대부분 18~20세로 젊은 병사들이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인 전투에 투입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헤이즐마이어씨가 한국전에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맥주를 좋아했다는 그는 한국에서 미국, 일본, 필리핀, 베트남 맥주까지 마셔봤지만 한국 맥주는 맛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전에서 돌아온 그는 타코마 포트 루이스 기지에서 근무하다 54년에 제대했고 이듬해인 55년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1956년에 재입대 명령을 받아 이번에는 공군에서 근무했다. 독일 등 해외에서도 근무했고 베트남전에도 참가하고 버지니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근무한 그는 타코마로 돌아와 22년 6개월의 군복무를 끝내고 1973년 7월에 퇴역했다. 그후 타코마 창문을 제조하는 밀가드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1998년 은퇴해 부인과 함께 스포켄으로 돌아왔다.


헤이즐마이어는 2002년 당시 문병록 시애틀총영사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그후 한국정부가 전달해준 참전용사 메달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스포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퇴역후 스포켄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2년전 암으로 사망, 현재 휠체어에 의지해 외롭게 살고 있어 인근에 거주하는 딸이 자주 와서 빨래나 조리 등으로 도와주기도 한다.


워싱턴주에서 2차대전 참전용사들에게 고교졸업장을 주는 제도와 함께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도 이를 주도록 하는 소위 '졸업법안(Graduation Bill)'을 추진해 결국 관철시킨 그는 자신도 한국전이 끝난지 반세기가 넘어 고교 졸업장을 받았다.


현재 스포켄에는 한국전참전용사기념비가 없다고 지적한 그는 "내가 소속된 추진위원회에서 한국전참전비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워드칼리지 인근에 들어설 한국전기념비는 내년봄에 들어설 예정이고 이날 행사에는 주지사, 주 보훈국장, 신원택 전 스포켄한인회장 등을 초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사/사진=워싱턴주 스포켄에서 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l   About Us   l   기사제보   l   개인정보보호정책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