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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7/03/20  조이시애틀뉴스
[기획특집] "눈앞에서 수류탄 터져 한국전 참전 2주만에..."



현재 오리건주 윌슨빌 지역에 거주하는 존 베스티언(87)은 한국전에 참전했지만 불과 보름만에 치열한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중상을 입는 바람에 전선에서 실려 나왔다.  


베스티언은 한국전이 발발한지 한달 반이 지나 한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8월 2일 한국에 도착했다. 당시에 22세였던 그는 샌디에고 부대 소속의 해병대 하사로 파병됐다.


"내가 한국전에서 투입된지 2주만인 1950년 8월 17일 중상을 입었다. 낙동강 전투에서 우리 부대의 위쪽에서 공격을 해오던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이 바로 앞에서 터졌다. 그때 정신없이 일어나는 순간 피투성이의 복부에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동료들에 의해 구조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약 2달간 부산의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서야 겨우 미국으로 돌아오는 배에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미국에 돌아와 해군병원에 입원, 1년 넘게 치료를 받은 후 스탭 서전트로 진급과 함께 의병 전역했다. 

 

베스티언은 함께 싸운 많은 동료 병사들이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며 "북한군의 포화 속에서 진지 앞 50피트 전방에서 수류탄이 터져 팔이 잘려져 나간 동료도 있었고 내가 목숨을 건진 것은 기적이었다"고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한달 반에 걸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망명 정부 수립을 논의할 정도로 위급했던 당시 상황에서 국군과 경찰, 미국을 위시한 UN 참전용사들의 투혼으로 방어선을 성공적으로 지켜내고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발판을 제공해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전투로 기록됐다.


베스티언의 한국전 참여는 부상으로 단기간에 끝났다. 그는 당시에 자신이 주둔해 있던 경상남도 일대는 포장도로가 없어 차가 지나면 많은 먼지가 날렸고 전쟁통에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자신이 한국에서 싸운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이 끝난 후에도 1950년와 1960년대에 2차례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17살에 군에 입대한 해병대 직업군인으로 올림피아 태생이다.


부상으로 전역한 후에도 후유증으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베스티언은 군에 입대하느라 겨우 8학년을 마친 학력이어서 공부를 더하고 싶어 고등학교를 마치고 오리건주립대학에도 입학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1년만에 중퇴하고 기술직 직장을 얻어 38년간 일한 후 정년퇴직했다.


베스티언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산 차의 성능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언제고 한국차를 탈 기회가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기사/사진=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조이시애틀뉴스 기획취재팀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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