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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12/05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인간적 한계의 인정?



한국은 다시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한다. 전 세대에 있었고, 나의 세대로 겪었고 그리고 지금 새로운 세대가 겪을 이 소용돌이는 침략에 대한 황색 경보가 아니고 독재에 관한 적색 경보가 아니고 평등과 희망에 관한 녹색의 기운으로 구간을 지나 마을을 감싸고 들어온다.


서울통신을 한달 만에 다시 쓰면서 지난 한달 사이 서울통신에서 제기한 이슈들에 진전도 있었다. 걱정했던 구글의 한국상세지도 반출요청 건은 트럼프가 당선되어 보호무역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다행히 11월 18일 우리 정부가 구글의 지도 반출 논란에 대해 불허(不許)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관련하여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구글 측에 안보 문제 해소 차원에서 주요 국가 시설에 대한 위성 영상을 '블러(흐리게) 처리'하거나 저해상도로 처리해달라는 보완책을 제안했지만, 구글 측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허가해주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10월 19일에는 필자가 특별한 관심으로 안전을 바라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인명사고가 또 발생했다. 그날 오전 필자도 5호선을 탔었다. 귀가해 뉴스를 보니 아침 출근시간에 30대 직장남성이 김포공항 역에서 내리려 하다가 스크린 도어와 전동차 사이에 끼어서 목숨을 잃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5월말 구의역 사고 때도 그랬지만, 스크린 도어 적힌 시(詩)를 서울 통신에 소개한 적도 있고, 인명사고이기에 고개 숙이며 마음이 심각해진다. 후속기사들을 따라 읽고 있지만 아직 사고에 대한 결론기사는 읽지는 못했다.


지하철에 스크린 도어를 처음 본 곳은 1994년 싱가포르에서였다. 타는 곳에 덧문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철로가 노출되지 않으니 투신충동이나 헛발질로부터 승객을 보호하는 듯 보였지만 시야를 가리고 오히려 신호전달에 방해가 되는 면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한국 지하철에 삽시간에 스크린 도어가 생겼고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보고된다. 지하철은 대규모 대중교통수단이니만큼 총괄적인 무결점 승 하차 관리와 승객의 조심조심이 절실하다.




오늘 본론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는 생활 속의 미신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과학과 이성을 판단의 최우선으로 삼기 때문에 누가 '점(占)'을 본다고 하면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TV 토크쇼에 보니 충분히 판단력을 가진 일반인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 용한 점을 보러 다닌 다는 것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과장이려니 했다.


대명천지 첨단과학시대에 요즘 누가 점을 믿을까? 하지만 이사 가는 날 손 없는 날이라는 게 있는데 이사업계에서는 그날이 평일의 몇 배 고객이 많다고 한다. 하기야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부조리와 불확실성 하에 사는데 과학과 이성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어떤 불쾌한 일에 대하여 따지기 보다는 '재수(財數, luck)'가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소금을 뿌려 화를 삭이는 처방이 오히려 지혜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을 떠나 가장 성공한 세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한국의 독창적인 예술 장르는 굿이라고 하였다. 서양문명의 온갖 고급예술을 다 만나고 한다는 말이 무속이라니. 그는 절친했던 독일계 전위예술가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행위예술로 1990년 한국에서 진혼굿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였다. 


한달 전 까지는 몰랐는데 필자가 사는 멀지 않은 곳에 선바위라는 신성함을 받는 바위가 있고 그 바로 아래는 굿을 하는 국사당(國師堂)이 있었다. 이 지역[區]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이런 토템신앙장소가 건너편 동네, 산 기슭 근처 아파트, 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지 평생 몰랐다.


선바위는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로 형상이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禪(선)’자를 따서 선바위[巖]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 또는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다.


이 바위 앞에서 사람들은 정성의 기도를 바친다. 오늘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그들이 특정 바위에 어떤 효험이 있다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믿는 게 있다면 그것은 지성(至誠)을 들이고 싶은 절실한 마음의 심지(心志) 일 것이다.


솔직히 바위 앞에서 기도 드리는 게 신앙의 원형을 보게 되는 것인데, 토속적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인정하게 되는 자연에 대한 감사와 인간적 한계의 인정 같아서 근처를 지나면서 덩달아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은 진혼굿 퍼포펀스 '늑대 걸음으로'를 현대화랑 뒷마당에서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현재 금호미술관이 들어섰다. /갤러리현대 제공


결론은 생물학에서 말하듯이, 문화의 겉모양이 아무리 세련되게 변해도 인간은 현대인으로 분류된 지 수 만년 동안 하나의 생물개체로서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을 거듭해서 환경을 변화 시켰지만 그 정보는 책이나 어른의 말 같은 매개를 통해 전수 되었을 뿐 인간의 몸에 저장된 것은 아니다. 현대인의 환경은 격변하였으나 인간본체는 격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생노병사의 틀에 갇혀있으며 인간사회는 동물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텃세와 순위매김의 촘촘한 그물을 드러낸다.


인간이 육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물로서의 본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인간을 운명론자나 회의론자로 방치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오히려 타인의 행동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른 사회의 행동양식에 대처하며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공존의 문턱을 제공한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은 오늘도 동굴에 살던 그때나 현대의 주택에 사는 지금이나 여전히 꼼지락꼼지락 손을 놀리며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자신의 지능을 발산하고 있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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