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 틈나는 대로, 어정쩡하게 남는 시간이나 차 안에서 무료할 때 폰을 보면 해결되지만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좀 한가한 시간대에 중년이상의 여성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그녀가 읽는 책이 무얼까 궁금해서 살짝 다가가 책제목이나 내용을 슬쩍 보곤 했다. 남자들의 경우는 중년보다 청년들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가서 본 책들의 대부분은 여자는 성경책, 남자는 주식이나 재산에 관한 경제서적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하고 보면 역시나 그런 적이 많았다.
나도 십년마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많은 책을 처분한다. 그래서 난 현재 소장하고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편이지만, 급하게 신간이 읽고 싶으면 사서 읽게 된다.
책이 별로 간직하고 싶지 않으면 요즘은 웬지 모셔 두기 보다는 누구에게 준다든가, 혹은 필요한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중고서점에 내 놓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나도 팔만한 책이 있으면 팔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대상이 최신간을 간직할까 포기할까 결정하여 팔기로 했다.
그리고는 중고서점의 파는 줄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 기분이 생각과는 다른 감정에 휘말렸는데, 그것은 마치 책을 팔러 기다리는 순간이 피를 파는 사람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긴 얼마 전도 그런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내가 20년 전에 산 책인데 잘 안 읽고 책장만 차지 하는 책이 있었다. 적당한 사람에게 줘야겠다 생각하던 중, 마침 갖고 싶다는 친구가 나타나서 솔선해서 책을 포장해서 그 친구에게 줬다.
그런데 막상 주고 나니까 그 책장 빈 것이 너무나 속상하고 후회가 되었다.
‘책이란 게 문장을 읽지 않고 자리만 차지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 ‘필요한 사람에게 유용하게 줘야 한다!’ 는 합리적 판단을 실행한 것인데 빈 책꽂이를 보자 내가 그 책을 사고 가져오고 오랫동안 저자와 한방에서 대화한다는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물리적인 자리가 그 책의 한 속성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랬다. 책이 장식(裝飾)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 책은 앨범처럼 나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궤변인데, 책에 내용이 아니고 부피와 자리가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있었다. 그 의미가. 추억과 의도와 출판물로서의 아름다움이……
그래서 나는 이제 책을 잘 안 버릴 생각이다. 아니 그냥 읽지 않는 책도 제목을 뚫어지게 보면서 언젠가 읽을 것이다.
책은 이제 인터넷에 밀려 부피를 줄여가는 데 줄일 수 없는 부피로 나를 장식하게 하는 책은 그냥 오랫동안 글씨가 아니라 책으로 함께 한다. 이게 뭘까. 입지 않으면서도 버릴 수 없는 옷처럼. 연주하지 않으면서도 같이 이사하는 악기처럼 나를 둘러싸는 장식으로서의 책들.
앞으로 한번도 다시 볼 일 없는 오래된 노트들. 그들이 나를 위로한다. 이게 어느 날 한꺼번에 없어진다 해도 나는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때 그 시절 내가 산 책들과 남겨진 노트들이 나의 정체성을 지지하며 나에게 힘을 준다.
정말 생각지 못했던 책의 기능이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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