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술을 했다. 첫 번째 인공관절 수술은 6월 10일로 두 달 하고 2주 만에 왼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내년까지 기다려서 왼쪽 무릎을 하려고도 해보았지만 내가 선택한 정형외과의는 내년 8월까지는 나에게 순서가 오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어차피 아플 거면 한꺼번에 아픈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큰 오판이었다.
수술한 부분이 어찌나 아픈지 죽을 맛이다. 지난 6월에 수술한 오른쪽 무릎도 아직 아픈 상황에 왼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하다니… 무모한 게 아닌가? 내년까지 무릎 통증을 기다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내년에 내 사무실 상황이 어찌 될지도 모른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우리가 받던 정부 기금이 17% 이상 줄어들어서 우리 같이 오래도록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이제 본인들이 자진해서 은퇴하는 것을 은근히 압박도 내려온다. 직원을 줄여서 지출을 줄이고 환자·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나는 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왔기에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쉽지 않은 6개월의 유급 병가를 주고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얘기해주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가운데에도 감사한 일이다.
8월 19일 두 번째 인공관절 무릎 수술을 마치고 집에서 완전 넉아웃이 되어 회복 중인데 지속적으로 메시지가 울려왔다.
어느 문예단체에서 글을 기고해 보라는 권면이었다. 물론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전문가적인 글을 써보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특별히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리포트라고나 할까.
또한 정신지체자나 중독자, 노숙자들의 잘 모르는 이야기들, 아니면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세상과 나누다 보니 이야기가 14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상황인 것이다.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장 내용을 좀 더 아름답고 예쁘게 고쳐주고 싶을 것도 같지만 내가 쓰고 있는 글은 그냥 황량한 벌판에 드러난 생채기 같은 글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읽기가 편하고, 그래서 부담이 없을 수도 있는,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너무 기가 막혀서 숨쉬기도, 때로는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글이 “레지나 채의 살아가는 이야기” 글이다.
아파서 비몽사몽 중에도 잠깐씩 시간을 내어 이메일을 살펴보고 전화도 열어보니 수많은 전화가 왔다. 안부 전화에, 문의 전화에… 특별한 분의 전화 메시지를 틀어놓고 눈을 감고 있다가 아무래도 이분은 내 상황을 모르니 일단 전화를 받아서 설명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진통제 먹은 후 40분 내에 전화를 해드렸다. 난번 통화를 한 번 했던 분이었다.
이분은 얼마나 속이 상한지 우울증이 심해서 잠이 잘 안 오고 밥도 잘 못 드신다고 했다. “기대를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어쩌면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쫓아가서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버리고 싶지만 어디 그게 되나요?
그러다가 만일 이혼이라도 한다고 하면 그 일은 누가 책임지나요? 그렇지요! 두 분에게 못해도 지네들끼리 문제없이 살아가면 되지요.
그런데 속상한 것은 애들이 자기네들이 기분이 나빠지기만 하면 손자·손녀들을 보여주지 않는 거예요.
지금 한창 조잘거리면서 이 얘기 저 얘기할 때라 너무 예쁜데 보고 싶어도 안 보여주려고 하니, 아니 어쩌면 내가 안 보려고 하는 이유도 있어요.
왜 지난번에 큰손녀가 6살인데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함께 먹고 하루 자고 가던 날이었어요. 미국에서는 거의 다 맞벌이 부부라 그날도 부부가 아이를 우리가 봐주면 딸아이 부부가 좀 더 쉴 수 있겠다 싶어 손녀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고 저녁 식사를 하러 외출 중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손녀와 함께 놀아주며 손녀의 유치원 이야기도 듣고 즐겁게 보내며, 평소에 우리가 먹는 식단에 손녀가 좋아할 다양한 과일로 상을 차려주었지요.
우리 부부는 평소에 비싸서 제대로 사먹지 못하는 오가닉 제품으로 블루베리, 딸기, 라즈베리, 키위 등을 깨끗이 씻어서 올려주고, 메인 디시로는 손녀가 좋아하는 야채 볶음밥과 우리 부부가 먹으려고 끓여놓은 미역국으로 차려주었는데 손녀가 아주 맛있게 밥을 먹은 거예요.
그리고 손녀와 저녁 시간을 잘 보내고 토요일 아침을 맞아서 아침에도 손녀가 먹기 좋은 음식으로 비건 팬케이크와 포도, 사과, 블루베리 등 비싼 오가닉 제품을 사서 올려주었어요. 오가닉 제품이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니까 우리 부부는 한두 개 맛만 보고 손녀에게만 먹이고 있었지요.
그런데 손녀가 키친 아일랜드에 있는 과자 봉지를 보더니, “할머니, 나 이거 먹어도 돼?” 라고 물어서 “그래! 아침밥 먹고 나서 30분 후에는 먹어도 돼”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6살 난 손녀는 아침밥으로 만들어준 팬케이크와 할머니가 다양한 과일로 예쁘게 꾸며준 식탁에서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는 아까 물어본 과자를 한 입 가져다 먹었어요. 자기네 집에는 없던 과자라 맛이 있었는지 서너 개를 먹고는 거실로 가서 피아노를 친다고 퉁탕거리던 중에 토요일 아침이 되자 딸아이가 집으로 들어선 거예요.
딸아이는 “엄마 아빠 덕분에 잘 쉬었다”고 말하더니 곧바로 거실로 가서 손녀에게 이것저것 묻더군요. 그러더니 별안간 눈이 커지면서 나에게 묻는 거예요.
“엄마, 이 과자 먹였어요?” “그래, 손녀가 과자를 먹겠다고 해서 밥 다 먹고 먹으라고 해서 아마 두세 개 먹었나? 그런데 왜 그러냐?”라고 물으니, 딸아이는 전화기를 꺼내더니 과자를 집어 들고 재료 성분을 살펴보더군요.
저는 속으로 ‘또 시작이겠거니…’ 하면서 기다렸지요.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는 별안간 소리를 지르더니, “엄마, 이 과자 생산한 곳에서 고기도 함께 취급하는 곳이잖아? 어떻게 이걸 먹일 수가 있어요!” 라면서 나에게 소리를 치더군요.
그리고는 곧장 손녀에게 가서는, 과자를 먹은 지 한 시간도 더 되어 아무 탈 없이 잘 놀고 있는 딸아이에게 “○○야, 너 괜찮은 거야? 아무 이상도 없는 거야?” 라고 묻기를 시작했지요.
이제 6살이 넘은, 꽤나 영악한 손녀는 이미 상황 판단이 된 듯, “엄마, 나 조금 혓바닥이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한데, 엄마가 막대사탕 하나 주면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손녀는 딸아이가 막대사탕을 하나 쥐어주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빨아먹으며 놀았지만, 저는 이미 마음이 상해버렸답니다. 아니, 아이가 문제없이 잘 놀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엄마가 놀래서 “너 괜찮은 거야?”라고 물으니 손녀는 이를 기회로 평소에 못 받던 막대사탕을 얻어낸 것이죠.
“엄마, 나 막대사탕 먹으면 혓바닥 간지러운 게 없어질 거야!” 이렇게요. 물론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한 사건일 뿐이고요. 그 외에도 너무나 많습니다.
한 가지만 더 얘기하면, 고등학교 2학년쯤인가 학교에서 ‘프로틴 인더스트리’(고기가 가공되는 과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다고 해요. 그때부터 딸아이는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며 고기 종류를 입에 대지 않았지요.
아무래도 아이가 키가 크려면 고기에서 얻는 단백질이 필요할 텐데, 본인이 거부하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 성향을 받아들였지요.
아마도 채식주의는 대학을 마치고 결혼한 후에도 이어진 것 같습니다.
딸아이는 본인만 채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가”를 설파하며,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동물 학대범이라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부부는 원래 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가끔 불고기도 해 먹고 치킨도 튀겨 먹었어요. 그래서 딸아이 주장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딸아이는 우리에게 “엄마 아빠가 그렇게 육식을 하면 성인병에 걸려 삶의 질이 나빠질 거고 급기야 온갖 질병이 생긴다”며 설교하기 시작했지요.
딸아이는 성격상 한 번 꽂히면 끝을 보는 타입이라, 우리는 심드렁하게 넘기고 살았습니다. 그날도 손녀가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보내고 아침에 미역국(고기 국물로 낸 것)을 먹으려는데, 엄마에게 세뇌된 손녀는 국물 속 고기가 안 보이니 맛있다고 하며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탁에 있던 잔멸치볶음을 보고는 먹고 싶어하길래 줬더니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문제는 그다음 주 토요일 아침에 생겼습니다. 몇 년간 채식만 고집하며 고기 먹는 우리 부부를 야만인 취급하던 딸아이가, 우리 밥상에서 끓인 미역국도 먹고 갈비도 맛있게 먹기 시작한 겁니다.
영문을 몰라 “이게 무슨 상황이지?” 했지만, 부딪치기 싫어서 그냥 “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나 보네. 고기도 먹네.” 하며 넘어갔지요.
그런데 토요일 늦은 아침, 손녀를 데리러 온 딸아이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왜 나랑 상의 없이 멸치를 아이한테 먹였어요?”
이때에는 저도 열이 받았습니다. 아니, 부부가 쉴 수 있게 손녀를 맡아 돌봐주고, 아침까지 잘 챙겨줬는데 나타나자마자 따지니 괘씸했지요.
“그래! 음식을 잘 먹고 아무 이상 없으면 감사할 일이지, 그게 뭐가 문제라고 그러느냐. 밤새 돌봐줬는데 벼락을 맞느냐?” 하고 조곤조곤 얘기했더니, 딸아이는 “엄마는 나랑 일단 상의를 해야 하지 않느냐. 자기 식대로 하면 안 된다”며 항의했지요.
아무튼 고등학생 때부터 채식을 고집하던 딸아이가 늘 피곤해하고 감기·몸살에 시달리다가, 의사의 권유로 동물성 단백질을 조금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일반식을 시작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 이야기를 사위를 통해 들었어요.
딸아이는 왜 고기를 먹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주구장창 채식만 주장하며 우리를 야만인 취급하던 행동이 부끄럽거나 자존심이 상해서였겠지요.
이런 이야기들을 가슴에 누르고 지내온 ○○씨 부부가 이제는 속이 터져서, 딸이 한마디 하면 부딪치지 않으려다 보니 혈압도 오르고 없던 당뇨까지 생겼답니다.
그리고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부끄럽다며 제게 물어왔습니다. “선생님, 어찌 생각하세요?” “네, 따님이 자기 성격대로 남을 통제하려다 안 되면 화가 나는 것이겠지요. 본인이 잘못을 깨닫기 전까지는 고치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그냥 상관하지 마세요. 이제는 딸도 성인입니다. 성인인데 비슷한 성인이 잔소리하면 화가 나겠지요. ‘내 말도 안 듣는데 날 가르치려 들어?’라는 생각을 할 겁니다.
자, 이제부터는 딸이 손녀를 맡아달라고 해도 두 분이 할 수 있을 때만 하세요. 두 분도 아직 일을 하고 계시니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쉬셔야 합니다. 딸의 요구에 ‘노’라고 대답하는 횟수를 늘리세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누구나 ‘성향(tendency)’이라는 게 있어요. 타고난 성격이나 습관, 유전적인 것이겠지요.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본인이 그렇게 과민 반응하는 게 남에게 불편을 주겠구나, 깨닫기 전에는요.”
마지막으로 이 부부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부부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되, 힘들게 희생하지 말고 자식들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마세요. 남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낳은 남들이라고요. 그러려면 부부가 힘을 모아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낳은 남들 같은 게 자식이에요. 기대를 버리면 혈압도 내려가고, 당도 내려갈 겁니다.”
소셜워커, 워싱턴가정상담소 소장
이메일: regina.chae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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