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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문학 |
| 동지 팥죽 ...이성수 |
| 이성수 2017/01/04 12:02:23 [조회 : 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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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동짓날이다. 음력으로는 동짓달 23일이다.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그날 팥죽을 쑤어 먹으면 어린이에게 해를 가져온다는 미신으로 팥죽을 쑤어 먹지 않고 팥떡을 해서 먹지만, 동지가 동짓달 하순에 들어 있으면 ’노동지‘라 팥죽을 쑤어 먹는다. 올해가 바로 노동지이다. 아내가 비교적 건강하여 쑤기 힘든 팥죽을 쑬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아내는 옛날부터 쑤어내려 오는 재래식 방법으로 팥죽을 쑬 줄 안다. 이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팥을 물에 담가 불려서 팥죽이 완성되기 까지 3시간도 더 걸린다. 팥은 한국산을 사야 한다. 중국산 팥으로 쑨 죽은 맛이 없다. 팥을 완전히 물에 불린 뒤에 팥이 겨우 잠길 만큼 물을 붓고 센 불로 팔팔 끓인다. 처음 끓인 물은 농약 같은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 버린다. 물을 부어 센 불로 한소끔 끓인 후 약한 불로 오랫동안 팥이 호물 호몰 될 때 까지 고아야 한다. 다 곤 후 식힌 다음 체에 밭이고 손으로 으깨어 완전히 껍질을 제거한다. 체에 밭인 팥물은 가만히 놔두면 앙금은 밑에 가라앉고 윗물은 위에 뜬다. 이때 윗물은 새알심을 만드는 데 쓰인다. 가라앉은 앙금에 물에 불린 쌀과 새알심을 넣고 센 불로 새알심이 둥 둥 뜰 때 까지 끓인다. 이 때 나무 주걱으로 서서히 저어서 눋지 않도록 한다. 젓는 것도 힘이 든다. 꼭 지켜 서서 저어야 한다. 젓는 일은 내 몫이다. 양이 많을 때는 팔이 아프다. 되직하게 끓이면 팥죽이 완성된다. 새알심은 찹쌀가루를 약한 소금물로 익반죽(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지름 1cm정도의 크기로 새 알처럼 둥글게 빚어 만든다. 새알심은 농경문화의 다산(多産)을 상징한다고 한다. 팥죽을 다 쑤는데 는 적어도 3시간도 더 걸린다. 이 팥죽이야 말로 입에 넣으면 팥 특유의 향과 말랑말랑한 새알심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부드러운 촉감과 걸쭉한 팥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전통 팥죽이다. 이웃 할머니가 팥죽을 투 고(to go) 박스에 담아 가지고 왔다. "우리 손녀애가 신식으로 쑨 팥죽인데 맛이 어떤가 좀 봐주어요." 이웃집 할머니로부터 들은 신식 팥죽은 바쁜 생활에 쫓겨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재래식 방법으로 쑬 수 가 없기 때문에 빠르고 쉽게 편법으로 쑨 팥죽이었다.
우리의 전통적인 먹거리를 만드는 데는 대부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된장은 메주를 쑤어 장을 담가 먹기까지 무려 6개월 이상, 고추장은 3개월 이상의 발효기간을 거쳐야 하고, 김치도 최소한 20일 이상 발효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 또 호박죽은 1시간 더 걸리고, 곰탕도 2시간 이상 뼈를 푹 고와야 깊은 맛이 난다. 젊은 세대가 개량식으로 쑤었건, 아내가 전통 방법으로 쑤었건 간에 맛에 상관없이 팥죽을 먹으면 팥의 붉은 색소가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혈관을 청소해주는 청소부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몸의 붓기를 빼주고 칼륨이 많아 피를 맑게 한다니 꾸준히 섭취하면 몸에 좋은 웰빙 음식이 될 것이다. 몇 년 전에 킹 카운티에서 80여 세대의 아파트 노인들의 소일거리로 밭을 만들어 희망하는 입주자에게 분양한 일이 있다. 노인의 치매예방으로 추진하는 사업인데 전체 입주자의 절반이 텃밭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있다. 나는 H권사와 바로 옆에서 농사를 지었다. 권사님은 내가 농사를 잘 짓는다며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비결은 없고 제 때 물을 잘 주고 비료(계분)를 주면 된다”고 하였다. H권사는 나 하는 대로 따라 했다. 나는 오이와 호박을 따서 주고 H권사는 상추를 뜯어 주었다. 이 텃밭 농사 덕에 H권사님과 우리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이가 80대 중반에 접어든 H권사님은 한 달 전에 월남국수집에서 식사를 하고 온다며 국수 2인분을 투 고(to go)해 가지고 와 초인종을 눌렀다. “아들이 국수를 사주어 먹었는데 맛이 좋아 투고해 왔다”며 두 분 정답게 드시라고 주고 갔다. 우리 내외는 그 월남 국수를 맛있게 먹고 권사님께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얼마 안 있으면 동지가 돌아오고 그 때 팥죽을 쑤어 주어야 갰다고 마음먹었다. 월남국수 뿐 아니라 평소에 음식을 하면 꼭 갖다 주곤 하였다. 월남 국수를 먹은 지 며칠 안 되어 H권사님은 생굴과 간장 게장을 먹고 배탈이 나 복통과 설사가 심해 911에 신고하여 병원에 실려 갔다. 굴과 게장의 식중독으로 증세가 악화되어 병원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 어이없게도 소천 하셨다. H권사님은 평소에 인자하시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 하셨다. 믿음이 돈독하여 주일 성수는 물론 수요예배,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는 우리 부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고소해 나는 생굴을 좋아한다. H마트에서 생굴을 사 부침개를 부쳐 먹기도 했고, 최근에는 코스코에서 얼음에 채인 생굴을 사 먹었다. 또 지난봄에는 해변으로 가서 굴을 따 생으로 먹었다. 간간한 맛이 구미를 돋우어 주었다. 나는 으레 굴은 생으로 먹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굴 식중독 사고를 보고서부터는 굴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생굴에 붙어 있는 무서운 ‘노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인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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