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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09/24  조이시애틀뉴스
“아메리칸 드림은 계속 된다”...가수꿈 이룬 김영


“진달래 향기로운 고향산천 떠나온 지 몇 해이던가. 잊혀진 세월 마디마디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구슬픈 가락의 서정적인 이 노래 첫 마디는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지난 4년 동안 활발한 노래교실 운영으로 널리 알려진 김영씨의 첫 정식 가수 데뷔 앨범인 ‘여정’의 첫 소절이다.


“이제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고 얘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김씨는 “오십을 바라보는 이 늦은 나이에 고교시절부터 간절히 꿈꿔왔던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미국이라는 이 나라여서 가능했다”며 “아직 미국은 꿈꾸는 자들에겐 천국”이라고 단호히 얘기한다.


김씨는 지난 8월 10일경 (사)대한가수협회(회장 김흥국)로부터 정식 가수회원증을 전달 받았다. 그가 50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이제야 정식 가수가 됐다고 감격해 한다면 요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가수로 인정받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비웃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감격과 감동은 깊이가 다르다.


그의 꿈은 어려서부터 한결같았다. 오로지 마음껏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그의 유일하고도 확고한 꿈이었다. 지금 이 곳에 자리 잡은 이민자들 중에 순탄한 길을 걸어온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김씨의 이민 여정도 그야말로 가시밭길처럼 험난하기만 했다.


2002년 도미한 그는 닥치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가족, 특히 두 딸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업소에서의 노래 활동을 이어가며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1년 김 씨는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 동안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인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몸의 반이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한 달간 온 몸에 침을 맞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죽기 전에 지금까지 못 이뤘던 꿈을 꼭 이뤄보자.” 이젠 마지막 통화일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의 통화를 통해 그는 한국에서의 노래방 열풍으로 노래교실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다시 건강을 되찾자마자 한국의 노래교실과 접촉을 해서 매월 신곡과 교수법을 사사받아 타코마와 린우드에 ‘김영 노래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맘껏 자신 있게 부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변변한 노래 교습학원이 없어 야유회나 각종 모임에서 자신의 노래순서나 장기자랑 시간이 오면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 참석한 뒤로 자신감도 회복하고 생활의 윤기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김영씨의 교수법은 음이나 박자를 못 맞추는 음치, 박치뿐 아니라 맛깔스럽게 부르지 못하는 맛치까지 교정한다고 한다. 그런 소문에 힘입어 이제는 벨뷰에까지 노래교실을 개설해 지역 주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문하생들은 워싱턴주 일대의 각종 모임이나 축제에서 한껏 갈고 닦은 실력으로 상위에 입상하거나 행사를 빛내고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룸과 동시에 많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윤택함과 풍요로움을 선사할 수 있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자신이 헌신하며 뒷바라지한 두 딸이 워싱턴대학(UW)을 졸업했거나 UW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재학하고 있어 아버지로서 또한 그만한 성취감이 또 어디 있을까?


김영,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토록 꿈꾸던 ‘가수’의 꿈을 기어코 이뤄서...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꼈던 그 행복을 전파할 수 있어서...


기사=미디어한국 박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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