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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05/03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종로 찹쌀떡집을 아시나요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고 싱그럽고 최고다. 가정의 달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은 엄마의 젖으로부터 떨어졌어야 하는 장면으로부터 생각이 난다. 엄마가 젖에 빨간 약을 바르셨다.


최근에 어머니께 그때가 몇 살 때였냐고 여쭈어 보니 그때가 1년 6개월 되었던 시절이었다. 세 살배기였던 나는 엄마가 젖을 안 주는 데도 서럽지가 않았다. 엄마가 활짝 웃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편하고 매끄러웠던 엄마의 젖. 하지만 이젠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완벽히 이해했다.


그 다음 기억은 누군가의 결혼식장이었다. 답례품으로 찹쌀모찌를 한 상자씩 주었다. 엄마따라 낯선 장소에 갔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 있어서 나는 그냥 테이블 아래 어두운데 앉혀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나보고 예쁘다고 왜 그렇게 찬사를 하는 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 찹쌀떡이 좋았던 거 같다.


어떤 날 그 결혼식을 했던 아줌마 집에 엄마와 놀러가게 되었다. 그런데 찹쌀떡이 하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찹쌀떡이 많은 집이니까 그렇게 나눠주는 것인데 그 집에 떡이 없다는 것이 이해 안 되어 영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 기억은 5명이 넘는 가족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안행사에 가려던 기억이다. 그전 해만해도 택시승차에는 사람수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올망졸망 아이들이 포함된 우리 가족은 5명이든 6명이든 한 택시에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그해부터 우리는 택시 한 차에 탈 수 없었고 운전자를 포함 5명만 탈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던 초등학교 이전의 아동이었다. 그래서 어른을 따라 다니기만 했었는데 말은 안 했지만 그 연령대 생각을 쭉 했던 것 같다. 그때 생각은 운전사는 운전만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길을 다 아는 줄 알았다.


오늘 종로 2가를 지나면서 많은 화려한 외국어 간판들 사이에 1965년부터 계속하고 있는 종로의 한 찹쌀떡집 간판을 유심히 보았다. 그때 찹쌀떡이 생각나서였다. 만두가 중국전래 음식이라면 찹쌀떡은 일본전래 음식으로 둘 다 한국음식처럼 우리의 친근한 요깃거리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 꿀맛 같았던 중국만두집도 생각나고 오늘도 여전한 찹쌀떡맛도 즐기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떡을 만드는 사람이 떡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운전기사가 모든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동차 핸들을 잡은 사람이 다 길을 아는 것은 아니 듯이 어른이 되었다고 인생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에 없더라도 동네와 길과 나무와 하늘은 오랫 동안 거기에 그대로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상황과 시간이 바뀌더라도 사람은 생각을 계속 함으로써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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