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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0/11  조이시애틀뉴스
[오피니언] 돈이 주는 자유 ...엘리엇 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자유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소비보다 돈을 성실히 모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은 일상의 선택에서도 통한다.

부부가 모두 전문직이나 고위 공직자로 일하다 은퇴한 친구들이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그들은 가까운 벗들에게만 소식을 전한 채 아내와 함께 조용한 삶을 즐긴다. 전화번호와 소셜미디어 계정까지 바꾼 친구도 있다.

유유자적. 그래서 은퇴를 ‘숨을 은(隱), 물러날 퇴(退)’라고 했던가. 평생 고된 일과 불편한 인간관계에 지쳐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만한 삶의 방식이다.

그들의 일상은 소박하다. 개를 데리고 숲길을 걷고, 호수와 강가에서 낚시를 한다. 음악을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을 악기로 따라 연주하기도 한다. 옆에서 아내가 시끄럽다고 핀잔을 주면 그것도 일상의 작은 웃음이 된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는 전시회를 열 생각조차 없다. 어디든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움직이면 캔버스에 옮긴다. 저녁이면 멀리 지는 해와 노을을 한참 바라본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다녔던 친구는 당시 물려받은 첫 총과 오랫동안 모아온 총들을 손질한다. 분해하고 닦고 기름칠하는 시간이 그에게는 추억을 되짚는 즐거움이다.

멀리 떠나고 싶으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나 미니밴에 올라 아내와 정처 없이 길을 나선다.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그만이다. 말이 통하고 여권도 필요 없는 미국 땅에는 가보고 싶은 곳이 끝없이 많다고 한다.

큰 텔레비전으로 여행 영상을 즐기는 친구도 있다. 세계 곳곳의 풍경은 물론 드론으로 촬영한 장면까지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감상한다. 그에게는 그것도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다.

다섯 자녀를 둔 또 다른 친구의 집은 명절과 생일이면 고향 마을의 장날처럼 북적인다. 큰 손녀부터 어린 손주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면 누가 누구의 아이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 집 할머니는 손주들이 자라며 작아진 옷과 더 이상 쓰지 않는 장난감을 모아두었다가 어린 손주들에게 나눠준다.

“이 옷은 동부 대학에 간 사촌 형이 고등학교 때 입던 거야.”

옷 한 벌에도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다. 사촌들이 쓰던 물건을 골라 나누는 일은 아이들이 기다리는 즐거운 행사가 됐다. 부모가 바빠도 아이들이 먼저 할머니 집에 가자고 조른다. 물건을 물려주는 작은 풍습이 가족의 유대와 전통을 이어주는 셈이다.

친구들은 ‘세상이 나를 잊어주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새로 이사한 동네의 상점에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 편안함,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고르는 자유가 좋다는 것이다.

깨끗이 씻고 편한 옷을 입은 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새로운 일상을 맞는 일이 즐겁다.

그들의 은퇴 생활은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과정처럼 보인다. 자신을 포장하던 형식을 털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일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쓰던 에너지를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고, 더 많이 소유하기보다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어쩌면 컴퓨터에 쌓인 불필요한 임시파일을 지우듯,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던 부담과 기억을 조금씩 정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생 바쁘게 돌아가던 마음에 맑고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자기 몫의 삶을 성실히 살아온 친구들의 여유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돈이 귀한 까닭은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남은 시간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선택권을 주기 때문이다.

“돈과 자유가 참 좋다.”



엘리엇 김
칼럼니스트
전 워싱턴 주정부 아태위원회 커미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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