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이 공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거하게 한 상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음식은 김밥부터 순대, 라면, 어묵탕, 냉면, 호떡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식. 김밥은 한국 분식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에 흰색 무늬가 있는 접시에 놓여 있고, 냉면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차갑게, 어묵탕은 뚝배기에 뜨겁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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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컷. [넷플릭스] |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뿐 아니라 음식, 옷, 장소 등 K-컬처의 다양한 요소를 작품 곳곳에 배치해 한국인에게는 발견하는 재미를, 외국인에게는 알아 가는 재미를 준다.
우선 한국의 전통문화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주인공인 걸그룹 ‘헌트릭스’는 한복 치마, 저고리를 무대의상이나 외출복으로 입고, 라이벌인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는 갓과 도포를 착용한다.
헌트릭스가 악령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도 조선시대 유물에서 차용했다. 리더 루미의 주무기는 사귀를 베고 재앙을 없앤다는 의미의 ‘사인검’, 미라의 주무기는 반달 모양의 날과 긴 자루로 이뤄진 ‘곡도(월도)’, 조이의 주무기는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신칼’이다.
이들이 공연하는 무대와 의상에는 화려한 단청 문양이 수 놓여 있고, 뮤직비디오와 시상식에는 조선시대에 왕이 앉던 ‘어좌’와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이 등장한다. 이러한 풍경은 또 다른 넷플릭스 히트작이었던 ‘킹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국의 상징적 동물인 호랑이와 까치는 남녀 주인공의 메신저 역할로 등장한다. 호랑이 ‘더피’는 조선 후기 민화 ‘호작도’의 형상을 하고 있고, 까치 ‘수지’는 갓을 쓰고 있다. 데몬 중에는 도깨비 탈을 쓰거나 도깨비방망이를 든 악령도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서울의 명소들이다. 헌트릭스가 묵는 호텔은 잠실 롯데타워, 공연장은 잠실 주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남산타워, 낙산공원 성곽길, 한옥마을, 명동 거리, 광화문, 삼성역 등도 인물들이 오가는 주요 장소다. 한강이 펼쳐진 야경은 딱 그대로 서울의 모습이다.
헌트릭스가 목소리 치료를 위해 찾는 한의원과 피로를 풀러 가는 대중목욕탕, 핫도그 같은 음식을 파는 노점상 등도 한국의 특색 있는 장소다. 도로명 표지판이 붙은 거리에 한글로 쓰인 간판이 늘어서 있고 , 한의원에는 ‘흙과 약초의 힘’이라는 문구와 손 모형, 약재통 등 익숙한 소품들이 배치돼 있다.
대중목욕탕에서 악령들과 싸우던 헌트릭스가 “목욕탕에 대해 오해하지 마. 원래 재미있고 편안한 곳이야”라고 관객을 향해 방백을 하는가 하면, 매니저는 헌트릭스에게 “오늘 상 받고 이태원 가서 핫도그 먹자”고 말한다.
한국인 특유의 문화나 습관도 깨알같이 묘사돼 있다. 헌트릭스가 기운이 없을 때 먹는 힐링 음식이 설렁탕이라거나, 식당에 가서 휴지를 깔고 수저를 놓고, 대중목욕탕에서 수건으로 양 머리를 하는 식이다.
공연장에서도 이들의 팬은 알록달록 불이 들어오는 응원봉과 휴대폰 LED 전광판을 들고 환호를 보낸다. 휴대폰과 플래카드에는 ‘우윳빛깔 루미’, ‘미라내꼬’ 같은 한글 문구가 쓰여 있다. 아주머니 팬들은 등산복을 입고 공연을 보러 오고, 앞뒤로 손뼉을 치며 걷기도 한다.
사자보이즈가 선배 그룹 헌트릭스에게 허리를 굽혀 ‘폴더 인사’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매운맛 챌린지’를 하며 불닭 소스를 먹는 장면도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
한국의 연예인을 모델로 한 인물들도 눈에 띈다. ‘주간아이돌’을 패러디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형돈이와 대준이’를 연상케 하는 MC가 등장한다. 선대 퇴마사로는 ‘저고리 시스터즈’, ‘김 시스터즈’, ‘SES’ 등 과거 실존했던 걸그룹을 오마주한 걸그룹이 나온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밤이 깊어가지만’, 듀스의 ‘나를 돌아봐’, EXO의 ‘LOVE ME RIGHT’ 등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K-팝은 반가움 마저 안긴다.
또한 요즘 유행하는 K-코드도 곳곳에 반영했다. 헌트릭스가 사자보이즈를 처음 봤을 때 눈이 옥수수로 변하면서 팝콘이 떨어지는 장면은 ‘팝콘각’을 시각화했다. 루미가 진우를 만나는 장면에선 멜로망스의 ‘사랑인가 봐’가 흘러나오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러브라인이 형성될 때 로맨틱한 노래가 나오는 공식을 재현했다. 이 노래는 진우 역을 맡은 배우 안효섭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드라마 ‘사내맞선’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컬처를 겉핥기식으로 두루뭉술 반영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현실 반영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이러한 성과 뒤에는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노력이 있었다. 지난 11일 공개된 제작 비하인드 영상에는 매기 강 감독이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제작진과 함께 한국 곳곳을 답사하고, K-푸드로 회식하는 모습이 소개됐다. 매기 강 감독은 “K-팝 세계를 생생히 표현하고 동시에 진정한 한국적 요소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사제휴=미주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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