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을 따르는 원칙주의자는 아니다. 그런데 지난 어느 날 아직 그 말을 인용하기에는 어린 막내가 대화 중에 ‘엄마, 이게 원칙이죠? 맞죠? 그렇지요?’ 하는게 아닌가. 그 순간 깜짝 놀란 나는 아이에게 ‘네가 어떻게 그 ‘원칙’이란 말의 뜻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때 아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엄마가 이 단어를 대화할 때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 아세요?’ 한다. 순간 나는 속으로 내가 그랬었구나 하고 놀라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원칙’이 가진 뜻은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기준’이다. 하지만 원칙은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이라지만 지키기 어려운 게 특징이다. 또한 ‘원칙’ 은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또한 논리학에서는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명제라고도 한다.
사람은 누구라도 크던 작던 자신이 세운 삶의 원칙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내 삶의 ‘원칙’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잘 정한다고 정했지 싶다. 그런데 원칙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실천원칙’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관건이지 싶다. 왜냐하면 원칙을 그럴듯하게 세웠지만 지키지 않으면 그건 바로 나에게 반칙이기 때문이다.
다소 ‘결벽증’이 있고 ‘융통성’이 부족한 내가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면 그이는 나보고 ‘그거 뭐 적당히 하지 그러느냐, 참 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런데 ‘결백증’은 좋은 거지 하고 ‘결벽증’이라는 단어와 헷갈려 한다. 그럴 때면 그저 하하 호호 하고 웃어 넘긴다.
인생이란 그리 녹녹지만 않기에 고뭇줄 잣대로 재면 안되잖아요? 때로 삶에서 ‘원칙’의 레일을 탈선해 이탈하면, 곧 치유할 수 없는(되돌릴 수 없는) 일탈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큰 원칙이 무너지면 삶이 사상누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한다.
나에겐 어린시절 미국이라는 나라는 ‘기회의 나라’이기도 하고 ‘꿈의 파랑새가 나르는 곳’이라고 여겼다. 아주 어린 대여섯살 적에 지오그래픽 잡지를 통해 미국을 소개하는 여러 화보를 보고 그때부터 한번 가서 살아보고 싶은 꿈을 키우는 첫손에 꼽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아이들과 이민이라는 길을 따라와서 살아보니 좋은 점도 많지만, 무섭고 어려운 점도 많았다. 특히 이 나라는 총기와 마약이 도처에 전쟁터의 지뢰처럼 널려 있어 언제 아이들 손길이 닿을지 싶은 생각을 하면 그만 아찔하고 소름이 돋는다.
누구나 그렇지만 살면서 수없이 새로운 원칙을 순간순간 바르게 설정해야 하는 일에 부딪친다. 그 중엔 아직껏 지켜가는 것도 있고 이미 오래전에 수정하고 폐기처분한 것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 어쩔 수없이 또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며 더 좋은 방법이라 여기는 원칙으로 갈아타기도 했지 싶다.
가정은 사회에서 가장 소규모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질서가 필요하다. 그 질서를 지키려면 보이지 않는 ‘원칙의 힘’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원칙’은 까다로움이나 불필요한 액세서리도 아니다. 다만 내게 적용되는 내 안의 질서를 잡아가는 작은 법으로서 내게 청사진처럼 펼쳐져 포진하고 있다가 필요시 툭 하고 나를 일깨운다.
나는 무엇보다 부끄러움 없는 삶을 올곧고 건강하게 사는 것에 원칙의 초점을 맞췄지 싶다. 즉 ‘원칙을 지키느냐”하는 문제는 행복과도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직 어린아이가 그 원칙이라는 단어를 쉽게 이해하고 생활속에서 실천했지 싶다.
나는 처한 환경으로 인해 선택의 여지없이 기러기 엄마로서 혼자 모든 일을 다 도맡아 해야 했다. 연년생 세 아이를 안전하게 키워야 했기에 더 원칙을 강하게 강조하고 엄하게 지켰지 싶다. 덕분에 까다로운 듯싶게 엄하게 키운 삼형제가 위아래를 알아볼 줄 아는 정말 올곧고 반듯하게 잘 성장해 이젠 나의 엄청난 자산이 되어 힘이된다.
어느 날 칭찬에 인색한 그이가 ‘당신 혼자 아이들 참 잘 키워줘서 고마워’ 하니 오래 살고 볼 일이지 싶다.
박유선
수필가, 월간 <수필 문학> 등단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부분)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수필집 '길 없는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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