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미국에서 유학하려는 학생들에 대해 소셜미디어(SNS) 심사를 의무화하고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전면 중단하는 등 사실상 ‘사상검증’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이에 미국에서 안정적인 연구와 공부를 하기 어려워진 연구원들과 유학생들은 미국을 떠나는 분위기가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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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학교의 학생들이 가자전쟁에 반대하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세계 인재유치 쟁탈전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미국을 떠나는 인재를 수용하기 위한 경쟁도 한층 가열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28일 미국 정부가 유학생과 연구원에 대한 비자를 대거 취소하고 대학에 대한 연구 자금 지원을 중단하자,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워진 연구진들이 미국을 떠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독일 출신 경제학자 마티아스 듀프케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주택을 매각하고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2008년부터 교수직으로 있던 노스웨스턴대학교를 떠나 런던정경대로 왔다. 젠더와 가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듀프케 교수는 “미국에서는 자금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으며, 외국인 연구원들은 언제 비자가 박탈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연구를 이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듀프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저지른 일은 너무나도 참혹해서 트럼프 정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방향성과 특징 가운데 일부는 당시의 사건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역사학을 연구하고 있는 마르시 쇼어 교수와 그의 남편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는 올해 봄, 예일대학교에서 캐나타 토론토대로 이직했다. 토론토대학이 이들 부부에게 교수직을 제안한 것은 약 3년 전으로, 쇼어 교수는 토론토대로의 이직을 “아주 단계적이고 복잡한 가족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가 단행한 전세계 유학생 비자 인터뷰 일시 중단 조치는 단순한 비자 심사 요건 강화를 넘어 백악관과 미국 대학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30억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보조금 지급을 동결하고 유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했다. 기존에 하버드대와 체결한 1억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계약 해지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1월부터 3월까지 발급된 학생 비자는 약 2만900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감소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해외 일자리를 찾은 미국인 과학자의 지원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반면, 미국으로 유입하는 외국인 연구원은 25%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미국을 빠져나온 연구원 유치를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을 떠나는 연구원들을 염두에 두고, 5억 유로의 예산으로 이들의 이주 및 연구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의 엑스-마르세유 대학은 연구원 20명에 대한 수용하겠다고 발표하자, 컬럼비아대와 예일대 등에서 약 300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일본 대학들도 미국으로부터 빠져나온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쿄대와 오사카대, 그리고 큐슈 대학 등은 하버드대 등 미국 대학에서 학습을 계속할 수 없는 유학생이 나올 경우 일시적으로 수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대학들은 2025년도 중에 학내 제도를 개정해 유학생들을 수용할 방침이다.
“미국정부, 유학생 SNS 심사 의무화 추진…유학비자 인터뷰 일시 중단”…사상검증 공식화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전세계 공관에 유학생 및 교환학생, 인턴십 비자 인터뷰를 전면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에 유학하려는 학생에 대해 소셜미디어(SNS) 심사를 의무화를 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 미 대학가의 친(親)팔레스타인·반(反)유대주의 정서 확산을 문제 삼으며 사실상 ‘사상 검증’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27일 폴리티코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서명한 전문에서 “(비자를 신청하는 학생들의) 소셜미디어 심사 및 검증 확대를 준비하기 위해 영사 부서는 추가 지침이 담긴 별도 전문(septel)이 발표될 때까지 학생 및 교환 방문자(F, M, J 비자)의 예약 접수를 더 이상 추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시했다. 다만, 루비오 장관은 이미 예약된 인터뷰는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했다.
전문에는 인터뷰가 일시 중단되는 비자의 종류로 F, M, J 비자가 명시됐다. F 비자는 미국 대학에 유학하거나 어학연수를 받으려는 학생이 받아야 하는 비자이고, M 비자는 직업훈련을 받으려는 사람이 취득하는 것이다. 교육·예술·과학 분야 교류를 위한 J 비자는 교환학생이나 연구원, 인턴십이나 연수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발급되는 비자다.
주무부처인 미 국무부는 이날 폴리티코 보도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면서 각 주권국가에는 입국을 희망하는 외국인을 검증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미 브루스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폴리티코 보도의 사실 여부에 대한 질문에 “공개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내용”이라면서 “만약 그것(기사에서 거론한 국무부 전문이)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유출된 문건일 것”이라고 답했다.
브루스 대변인은 이어 “이 나라에 오길 원하는 모든 (외국) 사람을 심사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도구를 사용한다”며 “모든 주권국가는 (그 나라에) 누가 오려고 하는지, 왜 오고 싶어 하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따라서 새로울 것은 없다”면서 “학생이든 누구든 미국에 오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쓸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리티코는 해당 전문에서는 향후 SNS 심사에서 어떤 부분을 검토할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테러리스트 차단과 반유대주의 대응을 목표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또한 “많은 국무부 당국자는 수개월간 개인적으로 과거 지침, 즉 캠퍼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심사하는 기준이 모호하다고 불만을 제기해왔다”며 “예컨대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팔레스타인 국가 사진을 게재한 학생이 추가 조사를 받게 될지는 불분명하다”고 매체는 지적했다.
다만, 앞으로 반유대주의에 국한하지 않고 반미(反美) 혹은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SNS 게시물도 심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실질적인 사상 검증 제도화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폴리티코는 “행정부가 이 계획을 시행하면 학생 비자 처리 속도가 심각하게 느려질 수 있다”며 “또한 외국인 학생에 크게 의존해 재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많은 대학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앞서 지난 2023년 10월 가자전쟁이 발생한 이후 미국 대학에서 반(反)유대주의나 친(親)팔레스타인 시위가 잇따르자 트럼프 행정부는 시위에 참여한 외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SNS 심사 요건을 도입한 바 있다. 특히, 반이스라엘 활동에 참가한 유학생과 연구원의 비자를 대거 취소했으며 이를 계기로 학생 비자 신청자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우수 인재를 받아들이면서 쌓아온 미국의 학문·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킴벌리 클라우징 UCLA 로스쿨 세법·정책 석좌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방문, 유학, 일하기 좋은 나라인 미국의 매력을 떨어트리고 있다”며 “글로벌 인재를 흡수하지 못함으로써 미국의 혁신과 기업가 정신, 경제 성장의 핵심 원천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 고등교육기관 전체 학생 1900만명 가운데 유학생 비중은 5.9%다. 2023~2024년 기준 외국인 학생 110만명이 미국에 입국했다. 국적별로는 인도, 중국 순으로 많았고 이들의 전공은 대부분 과학·기술·수학(STEM) 분야였다.
수학과 컴퓨터 공학 전공이 25%로 가장 많았고, 공학 전공이 20%였다. 이처럼 STEM 분야에 집중된 유학생 유입은 미국의 기술 혁신과 경쟁력 유지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오히려 미국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사제휴=미주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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