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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5/09  조이시애틀뉴스
[조이문학] 쇠비름과 돼지 ...이성수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아파트 정원에 텃밭을 만들어 입주자에게 한 평 씩 분양해 주어 농사를 지었다. 하루는 잡초에 끼어 자라고 있는 쇠비름 한 개를 발견하였다. 쇠비름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한 동안 멍하니 사색에 잠겨 있는데 옆에 농사짓는 P권사님이 "아니!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요." 한다.
 

"예? 이 풀 좀 보세요. 이게 쇠비름이란 풀인데요. 영양가가 많아 사료가 귀하던 옛날에 한국에서 이 풀을 채취하여 돼지를 먹였던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일이다. 등록금이 모자라 재수를 하여 학비를 벌었다. 토마토를 재배하여 자전거에 싣고 가까운 5일 장(場)에 내다 팔았다. 그리고 어미돼지를 사육하여 새끼를 내어 팔았다. 돼지는 한 번에 보통 10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값도 상당하므로 농가에서 부업으로 많이 길렀다.  
 

그런데 문제는 돼지의 먹이(飼料)였다. 1950년대에는 너무 가난하여 사람 먹을 양식도 부족한 때라 사료는 아예 없고 쌀이나 보리를 도정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겨(糠)와 음식물 찌꺼기, 부엌에서 나오는 구정물을 먹였다. 그것도 충분히 먹이지 못해 늘 배가 고프다고 돼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더구나 새끼를 밴 돼지는 바싹 야위어 뱃가죽이 축 처져있었다. 그런 돼지로 새끼를 낼 수가 없어 생고기(生豚)로 많이 팔았다. 이런 야윈 돼지는 비계가 없어 인기가 높았다.
 

또 먹지 못해 야윈 돼지의 털은 아주 비싸게 팔렸다. 플라스틱이 나오기 전이라 칫솔의 원료는 모두 돼지 털로 충당했다. 잘 먹어서 살이 찐 돼지의 털은 보드라워 칫솔의 원료로 쓰지 못하고, 못 먹어서 마른 돼지일수록 털이 빳빳하여 칫솔 원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즉 잘 사는 나라의 돼지털은 너무 보드라워 칫솔로 쓰지 못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의 돼지 털만이 칫솔의 원료로 쓰였다. 특히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한국의 돼지털은 단연 일등품이었다.


우리 집은 돼지새끼를 잘 낳아 기른다고 동네에 입소문이 퍼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다른 집 새끼 밴 돼지는 영양실조에 걸려 사산(死産)을 하거나 기껏 5~6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것도 잘 크지 못해 야위어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돼지 새끼는 5일장에 내 가면 운동선수처럼 어깨가 딱 벌어지고 토실토실 하게 살이 쪘기 때문에 금방 팔렸다. 사료가 없던 시절, 겨(糠)와 구정물, 밥찌꺼기만 먹인 돼지가 영양실조로 잘 크지 못하고 빌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 구장 댁(舊區長宅) 돼지는 어떻기 먹여서 고(그)렇게 잘 큰 데유?“ 동네사람들은 만나면 인사처럼 할아버지께 물었다. 구 구장이란 할아버지께서 전에 구장(이장)일을 보셨기 때문에 부르는 호칭이었다. 할아버지는 ‘쇠비름’을 먹였더니 잘 크더라고 하시며 이것을 먹이도록 권면 하셨다.
 

‘쇠비름’이란 밭과 들, 길가 어디에나 무성히 잘 자라는 잡초인 산야초(山野草)이다. 이 풀을 뽑아 한 달간을 여름햇볕을 쐬어도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정도로 생활력이 끈질기게 강한 지독한 풀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이 풀을 혐오하고 독이 있어 생으로 먹으면 죽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근거 없는 루머였다. 
 

한방(韓方)에 조예가 깊으신 할아버지께서는 동의보감이란 의서를 보시고 “쇠비름”이란 풀은 마치현(馬齒莧)이라 부르는 약초로 해산한 임산부가 산후에 먹으면 어혈을 제거하고, 중풍과 혈액순환, 조갈증(당뇨),피부병 등 모든 병에 만병통치약이라고 하시며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쇠비름을 채취하여 김치도 담가 먹고, 돼지에게 사료보충으로 먹이면 돼지가 미르지 않고 잘 자란다고 하셨다.
 

나는 쇠비름을 뽑아 돼지가 생으로 실컷 먹도록 주었다. 쇠비름은 어디에나 많아 얼마든지 채취할 수 있었다. 생으로 먹이고 또 겨(糠)를 넣어 죽을 멀겋게 쑤어 먹였더니 돼지는 배가 불러 잠을 자고, 야위던 돼지가 살이 쪄 건강한 새끼를 낳을 수 있었다. 겨울에는 여름에 말려 두었던 쇠비름으로 죽을 쑤어 먹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네사람들은 신기하다며 쇠비름을 뜯어 먹였다. 이 소문은 인근 마을에 퍼져 앞 다투어 쇠비름을 뜯어 돼지 먹이로 이용하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50년대 초! 6.25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절, 사료도 없이 돼지를 사육하여 세계에서 제일 값나가는 돼지털과 비계 없는 돼지고기로 부끄러운 명성을 떨쳤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공짜로 채취한 쇠비름을 먹여 건강한 돼지를 사육할 수 있었다
 

우리 집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짝짓기(交尾)를 한지 114일 만이다. 어미 돼지는 10여 마리도 넘게 새끼를 낳았다. 새끼를 낳는 날 할아버지는 분만 현장에서 진두지휘를 하셨다. 새끼를 받아 나를 주면 나는 수건으로 싸서 조심스럽게 사랑방으로 옮기곤 하였다. 그냥 두면 어미돼지는 산고(産苦)의 고통으로 정신이 없어 배 밑으로 젖을 찾아 파고들어가는 제 새끼를 깔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섣달 추운 겨울밤에 덜덜 떨면서 새끼를 받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사랑방은 추울까봐 미리 군불까지 지펴 놓았다.
 

새끼를 한 마리 낳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분가량, 10마리 새끼를 낳는데 2시간 반도 더 걸렸다. 나는 새끼를 받아 방에 보관하는 일을 맡고 할아버지는 낳는 새끼를 받아 나에게 주셨다. 태(胎)를 낳으면 분만이 끝남으로 할아버지께서 방에 있는 어린 새끼를 가지고 오라 해서 한 마리씩 어미 품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처음 한 마리를 넣자마자 냄새를 맡아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사정없이 제 새끼를 물어 죽였다. 느닷없이 당하는 일이라 당황하고 놀랬다. 나는 처음 당하는 일이라 자못 심각하였다. 어미돼지가 제 새끼를 물어 죽이는 현장을 보고 무서워 덜덜 떨리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하다가는 10마리 모두 물어 죽이는 게 아닌가 겁이 났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침착하신 할아버지는 “예야! 너 처음에 새끼를 받아 가지고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붓으로 먹물을 찍어 귀에 일련번호를 써 넣었습니다” 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먹물에 향료가 들어 있어 어미돼지가 그 냄새를 맡고 제 새끼가 아니라고 물어 죽였다”고 하셨다.
 

“빨리 어미 돼지 오줌을 새끼 몸에 바르고 특히 귀 근처에 더 많이 발라 어미 돼지 품에 넣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노하우였다. 돼지는 시각(視覺)보다 후각(嗅覺)이 발달하여 제 새끼를 눈으로 보고 구별하는 게 아니라 제 체취(體臭)와 같은 냄새로 새끼를 알아본다는 사실을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오랜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한 산지식이었다. 
 

나는 얼른 할아버지의 지시대로 헝겊에 어미 돼지 오줌을 적셔 새끼 몸에 바르고 특히 귀 근처는 더 많이 발라 어미 폼에 넣어 주었다. 나는 또 물을까 봐 겁이 났다. 어미 돼지는 한동안 새끼냄새를 맡아보더니 순해져서 젖을 잘 먹였다.
 

새끼를 낳느라 극도로 신경이 예민한 어미돼지는 귀에 쓴 먹물 글씨의 향수 냄새를 맡고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켜 제 새끼가 아니라고 물어 죽였던 것이다. 나는 돼지는 후각으로 제 새끼를 판별한다는 산 체험을 얻게 되었다.
 

나는 농업고등학교 축산과를 졸업하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산교육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축산과 전공 선생님으로부터 "닭은 시각(視覺)으로 제 새끼를 구별하고 돼지는 냄새(嗅覺)를 맡아 제 새끼를 알아본다. 그러니 병아리가 귀엽다고 몸에 물감을 칠하면 어미닭이 제 새끼가 아니라고 쪼아 죽인다.

 

또 집에서 먹이는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는 어미돼지의 오줌을 새끼 몸에 발라 주어야 제 새끼로 안다."라는 교육을 받았어도 오늘 아까운 돼지새끼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귀여운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비참하게 죽었으니 마음이 짠하였었다. 
  
가난했던 50년 초! 식량이 부족하여 미국의 잉여농산물(剩餘農産物)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 사료가 없어도 공짜로 채취한 쇠비름을 먹여 건강한 돼지를 사육하시는 할아버지의 지혜로 인해 나는 돼지 새끼를 팔은 돈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감사한 일이었다.


60년도 더 되는 세월이 지났지만 한국이 아니고 미국에서 쇠비름을 보니 반가웠고 여러 가지의 사연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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