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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4/21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강화도 여정


4월이 가장 유혹적이다. 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차를 탄다. 섬. 사극에 강화도령이 철종이 되는 이야기로 가장 먼저 알게 된 이름의 섬이다. 그곳에 전등사가 있다. 왜 그랬을까?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들은 ‘가면 볼것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가보면 훨씬 더 좋았다. 아름다운 터. 그리고 그 터를 있게 한 주변의 기운이 나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심지어 나폴리까지 그랬다. 모든 사람이 ‘노래만 좋았지, 가보면 하나 볼 것 없어~’, 그런데 나는 가자마자 그 노래의 정서를 알아버렸다. ‘아! 이래서 그 노래가 나왔구나.’


하여간, 전등사를 가보기 전, 누군가의 ‘거기 볼 것 없다.’라는 말을 먼저 들은 것 같다. 그러다 요즈음 한국사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대목에 강화도가 많이 등장하는데,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명소를 오히려 가 본 적이 없으니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봄맞이 짧은 휴가를 내게 되었다.


강화도는 인천광역시에 속한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며, 고려시대에는 몽골항쟁 기간 동안 도읍지(1232~1270)가 되었기도 하고 조선시대에는 폐군과 왕족의 유배지였고, 19세기에는 프랑스 군대 (병인양요, 1866)와 미국함대 (신미양요, 1871)의 공격을 받고 격퇴와 결사 항전의 역사가 있었던 곳이다.




또한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있고, 단군이 쌓은 제단으로 알려진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고찰 전등사는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시작된 절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래된 유적이다 보니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복원이 지금처럼 적극적이지 않던 시절을 보내는 동안 옛터가 그저 별로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방문한 기간이 코로나 정국이었기 때문에 모든 활동은 최소화되어 있었다. 나도 ‘야외니까 사람 많은 곳 가지 않고, 거리를 두고 조용히 다녀오면 괜찮겠지!’ 하고 갔던 것이었는 데, 방문객이 점점 늘어나니, 지역민은 외지로부터 감염에 대한 우려를 하였고, 관광지는 입장을 제한하거나 주차장을 통제하였다.


전등사에서 얻은 큰 지면의 관광지도를 보니, 강화도에서 바로 가까이가 북한 황해남도 연안이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와서 서울이 DMZ와 너무 가까워 놀란다는 듯, 나 또한 강화가 북한과 너무 가까운 전방임을 실감하는 순간, 초행자다운 경각심으로 어수선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작년 4월 괌(Guam)에 갔을 때 초소를 지키는 병사가 나의 신분증을 요구했듯이 교동도에 들어가려니 이곳에서도 나의 신분증을 요구하였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괌에서는 신분을 확인하고 유턴을 시켜 돌려가게 했다면, 여기서는 신분을 확인한 후 방문증을 줘서 교동도로 들어가게 해준다.




교동에서는 교동향교와 연산군 유배지, 그리고 최근 복원된, 동네 한가운데에 선 교동읍성 등을 둘러보았다. 읍성 문 앞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 오이를 씻게 물 좀 있느냐 하니까 집 안 마당으로 안내해 주신다. 그리고 아궁이에서 군 무른 고구마를 주셨다. 그 집안에 살림살이가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모르겠다. 어떤 분에게 들으니, 강화도에는 실향민이 많이 산다고 한다.


역시 인상적인 것은 사람인 것 같다. 강화 도심에 있는 고려궁지를 둘러보기 위해 갔을 때 주차장이 폐쇄되어 바로 앞 아파트 주차장에 잠시 주차를 했는데, 주민분이 오히려 먼저 인사를 해 주셨다. 시장에서도 마트에서도, 관광지에서도 지역민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뭔가 자기 땅에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든든한 모습으로 차분하게 우리 고장을 지키는, 향토를 사랑하는 사회인이면서 가족 구성원으로, 이완되지 않은 능동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다.


숙소에서 만난 큰 언니 같은 분과 아침 산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상들과 우리 시대에 평화, 물질의 풍요, 그리고 어렸을 때 꿈보다 더 많은 국내외 여행의 기회를 누렸던 고마운 세대로 살 수 있음에 함께 감사했다.




강화에서 농부로 살다 갑자기 왕으로 추대된 (1849년) 19세의 강화도령은 그 당시 50년간 계속된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 전횡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고, 뜻을 펴지 못하고 술과 궁녀를 가까이하였고 급속하게 쇠약해져서 33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8명의 부인에게서 5남 1녀의 자식을 두었으나 아들들도 어찌된 셈인지 안타깝게 모두 일찍 죽었다고 한다.


전제정권의 봉건주의하에서 왕위를 승계한 강화도령은 세도정치라는 궐내 횡포에 좌절했지만, 2020년 같은 땅, 선출을 통해 대표를 임명하는 민주주의에서는 임기라는 변수가 있다.


이제 새롭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들은 권한을 위임받은 임기 동안 청렴하게 공익에 헌신하고, 그 이후에는 평범한 한 명의 국민으로 돌아와 사생활을 누리며 개인으로써 인생을 가꾸는 국민과 정치인이 모두 행복한 선순환 구조를 우리 정치에 정착시킬 때,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룬 장점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의 관심과 주의를 끌며 세계 속의 한국의 영향력은 점점 확산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적적 성공을 이뤄낸 한국의 부와 복지가 잘 운영되어서 세대로 이어지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으로 오래오래 평화와 행복과 공존의 세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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