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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01/06  JoySeattle
"한글학교 발전을 위해 온힘 쏟고 있습니다"
박영민 전 페더럴웨이 시장

 

주류사회에서는 마이클 박으로 통하는 박영민 전 페더럴웨이 시장은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국민대학교(경영학과) 졸업후 1976년 도미, 페더럴웨이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정치에 입문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지역에서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서북미 최대 한국문화행사인 한우리축제와 함께 각종 행사 지원에 앞장서 한인커뮤니티의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실시된 첫 직선시장선거에 출마했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시고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정계 활동을 마감했다. 요즘은 페더럴웨이 한국통합학교 이사장으로 2세 한글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박 전 시장은 한번 뛰어들면 쉽게 그만둘 수 없는 마약과 같은 정치에는 더이상 미련이 없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동안 페더럴웨이시에서 얼마동안 공직생활을 하셨는지.

  

1995년 6월부터 시의원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했고 2011년 말로 공직생활을 끝냈으니 16년 7개월간 시장과 시의원으로 활동을 한 셈이다.

 

 

처음 시의원에 출마하셨을 때의 동기는. 

 

처음에는 겁없이 도전했던 것 같다. 1991년에 미주 세탁협회 총회장일 당시에 권유를 받아 시애틀한인회 이사장에 취임했고 1992년에 한인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인커뮤니티를 위한 페더럴웨이시 분기 시정보고회를 추진, 시장을 만나 한인들이 많으니 시와 소통을 위한 채널을 만들 것을 설득해 그해 9월에 첫 한인 시정보고회가 시작됐다. 그 후 주변의 권유와 함께 한인커뮤니티의 지위향상을 위해 시의원에 출마하게 됐다.

 

   

앞으로 공직출마 계획은 전혀 없으신지.

 

지난 2001년에도 공화, 민주 양당으로부터 주 의원 출마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공화당에서는 당시 공석이었던 주 상원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민주당에서는 프랭크 찹 하원의장이 권유했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맞지 않아 무소속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정치에 다시 뛰어들 생각이 없다. 정치는 한번 뛰어들면 쉽게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다시 정치를 권유하면 어렵게 이제 겨우 마약중독에서 벗어났는데 또 하란 말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사실 작년에 시의원직을 그만둔 직후에는 주 의원 등 다른 공직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련을 버렸다. 다만 페더럴웨이는 한인이 출마하면 당선가능성이 높은 곳인데 아직은 정치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없어 아쉽다.

 

 

그동안 시장, 시의원으로 재직하시면서 한인사회가 많은 혜택을 받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데, 앞으로도 시에서 한인커뮤니티에 계속 관심을 보일지.

 

시 관계자들, 지역 정치인들과 네트웍을 구축해 놔서 이러한 관계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직일때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인 유권자들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인들에 대한 주류사회 정치인들의 관심은 지속될 것이다. 한인들이 투표에 적극 참여한다면 정치인들도 무시할 수 없다.

 

 

페더럴웨이 한인 인구는 어느 정도이고 한인 유권자들의 투표참여도는.

 

대강 1만명에서 1만2천명 정도의 한인이 페더럴웨이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가운데 18세 이상 시민권자는 최소한 3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한인 투표참여가 극히 저조한 편이다. 내가 1995년에 처음 출마했을때 시의 전체 유권자가 3만7천명이었는데 당시에 투표에 참여한 한인은 90여명에 불과했고 2009년에 투표권을 행사한 한인 유권자도 200여명에 머물렀다.

 

직선시장선거가 실시된 2010년에는 한인 400여명이 투표권을 행사, 대략 한인 시민권자의 1할 정도가 투표한 것으로 파악된다. 만일 한인 유권자 모두가 나에게 투표했더라면 내가 시장에 당선됐을 수도 있었다. 만일 페더럴웨이 한인 3천명이 모두 투표에 참여한다면 지역 정치인들이 한인들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할텐데 우리가 이러한 귀한 보석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아쉽다.

  

최근 아담 스미스 연방하원의원은 워싱턴주의 연방하원의원이 한명 늘어나며 지역구가 페더럴웨이, 켄트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조정돼 지역구의 소수민족이 절반을 넘어서게 되자 한인사회에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소수계 유권자들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한인들이 투표참여가 극히 저조하기 때문에 같은 날 일본, 중국, 필리핀, 한국 커뮤니티 행사가 동시에 개최되면 한인 행사를 찾는 정치인은 거의 없는게 현실이다. 사실 지역 정치인들이 한인 커뮤니티의 기부금을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단지 사진 한장만 같이 찍으면 되기 때문이다.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기브'만 있고 '테이크'가 없는게 너무 안타깝다.

 

  

요즘은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 이사장으로 2세 한글교육에 바쁘신데.

  

페더럴웨이 통합한글학교가 작년 9월에 개교했다.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페더럴웨이한인회 부설로 운영되고 있는 한글학교 운영에 교계의 후원이 없이 다소 아쉽다. 페더럴웨이에 모두 11개의 교회부설 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통합한국학교에 참여해 현재 통합한국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90여명의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 열고 있는 한국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는 학생수 보다는 얼마나 양질의 교육을 실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9개 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직원은 교장선생님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한글과 함께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특별활동으로 태권도, 공작시간, 한국영화 상영, 합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 마련은.

 

재외동포재단에서도 일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주류사회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잉의 경우에도 소수계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금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아직은 초창기이지만 실적을 쌓고 준비를 해서 주류 기업들을 대상으로 타진을 하려한다. 이미 퓨젯 사운드 에너지와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등에는 그랜트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현재 한 학기에 120달러의 수업료를 받고 있어 자녀가 여럿 있는 가정에는 다소 부담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외부의 지원을 받아 이같은 부담도 덜어주려고 한다. 이를 위해 지금은 기초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학교는 페더럴웨이 퍼블릭 아카데미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을 했으나 주중에는 가능하지만 주말에는 관리자들을 별도로 고용해야하는 관계로 무료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은 적지 않은 비용이 학교 사용료로 나가고 있다. 

 

 

한인 2세 자녀 한글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다중언어시대가 될 것으로 본다. 지구촌시대에서 한나라 말로는 통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를 익혀야 한다. 나의 딸이 유엔에서 근무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어 뉴욕에서 인턴 근무도 했다. 유엔에서 근무하려면 최소한 3개국어를 구사해야 하고 대게는 4~5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인 자녀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자연스럽게 영어와 한국어를 말하는 이중언어 구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영어와 한국어를 포함해 3개국어는 쉽게 마스터할 수 있게 된다. 이런점을 학부모들에게 주지시키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한국학교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다른 일이 있으면 학생들이 결석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최근 한국정부가 페더럴웨이 교육청과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이해각서를 체결해 학점을 받을 수 있게된 것이 동기부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해 새로운 계획이 있으시다면.

 

건강이 중요하다. 젊게 살려고 한다. 올해 한국 나이로 68세가 된다. 하지만 나는 40대 이후로는 나이를 안먹는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젊은 마음으로 한글학교 운영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침 9시에 한글학교 버스 보이로 나와 학교 입구에서 학생들을 맞고 있다. 내가 스스로 30~40대라는 생각을 갖고 젊은 학부모들과 친구가 되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올해에는 특별한 목표보다는 소시민으로 한글학교 발전을 위해 온힘을 쏟으려 한다. 또 TOPIK 운영위원으로 이 제도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힘쓰고자 한다.

  

인터뷰 = 김정태 편집인 editor@joyseatt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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