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권사님이 주일 날 교회 노인회 모임에서 눈깔사탕을 나누어주었다. 노란 파인애플을 원료로 만든 하와이 특산 눈깔사탕이었다. 권사님은 하와이 관광을 가서 먹은 눈깔사탕이 너무도 맛이 있었다며 회원들에게 맛 뵈려고 사왔다고 했다.
회원 동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권사님은 생일 때면 식사대접을 하고 또 한국방문을 하고 돌아올 때도 50명이나 되는 회원들을 식당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곤 했다.
L권사님이 나누어 주는 사탕을 받아 입에 넣으니 파인애플 향기가 진동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입 안에 퍼져 나를 매혹시켰다. 이 눈깔사탕 맛은 특이했다. 보통의 사탕은 그 맛이 하나같이 달달하고 더러는 새콤한 맛이 났지만 이 파인애플 사탕은 진한 파인애플 향기에 부드러운 신맛이 단맛과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캔디 맛을 내었다.
회원들은 각자 귀한 사탕을 입에 넣고 한 동안 맛을 음미하느라 조용했다. 나는 입에서 녹는 눈깔사탕을 천천히 빨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나는 어린 시절을 일제강점기의 전시(戰時)때 보냈다. 가난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어려운 때였다. 좋아하는 사탕 대신 옥수수 대를 잘라 씹어 먹었고, 입술이 새카맣게 오디를 따 먹었다. 눈깔사탕은 부잣집 애들이나 먹지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시골 애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라고 기억된다. 이웃에 사는 내 또래 애와 짝꿍이 되어 문방구 가게를 지나 학교를 오갔다. 우리들은 이 가게에서 공책도 사고 어쩌다 어른들로부터 용돈을 받는 날이면 눈깔사탕도 사 먹는 단골손님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공책사라고 돈을 주며 나머지 거스름돈은 눈깔사탕을 사먹으라고 하셨다. 하굣길에 짝꿍과 같이 가게에 들려 공책을 사고 거스름돈을 받고 보니 겨우 눈깔사탕 1개를 살 돈이었다. 나는 사탕 1개를 혼자 먹을 수 없었다. 돌처럼 단단하여 2개로 쪼갤 재간이 없어 우선 내 입에 넣고 빨아 먹다가 얼마 후에 뱉어서 친구 입속에 넣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모르나 그 당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느 때는 학교를 파하고 2km가량을 6~7명의 또래 애들이 때를 지어 집으로 걸어가는데 또래 중 아버지가 서울갔다오면서 사온 왕 눈깔사탕을 먹고 남겨둔 1개를 여럿이 번갈아가며 빨아먹었다. 입에서 입으로 맛있는 사탕 맛을 음미하면서 그게 더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눈깔사탕은 꽤 커서 맨 처음 먹는 애는 볼 따귀가 터질듯이 볼록하게 튀어 나왔었다.
나는 젖 떨어질 때 할머니가 밥을 입속에 넣고 조금 씹은 뒤에 수저로 옮겨 나를 먹여 주셨다고 한다. 이를 보고 있는 어머니도 그게 더럽다는 생각을 전연 하지 않고 감사히 생각하셨다한다. 나는 이유기(離乳期)에 그렇게 밥을 받아 먹고 컸어도 배탈이 나서 병원한번 가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의 젊은 어머니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기절초풍할 것이다.
한번은 눈깔사탕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짝꿍과 등교시간에 가게 주인이 없는 틈에 눈깔사탕을 훔치기로 하였다. 훔치는 게 아니고 재미삼아 눈깔사탕 ‘서리’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 당시는 서리하는게 하나의 유행이었다.
이 문방구 가게에는 젊은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물건을 팔았다. 학교에 가는 시간에 우리들은 드디어 실천에 옮겼다. 가게는 안채와 좀 떨어져 있었는데 가게는 비어 있었다. 나는 주인이 오나 안 오나 망을 보고, 친구는 눈깔사탕이 들어있는 통을 열어 잽싸게 사탕 한줌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고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 도망쳤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다행히 주인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도 잠시뿐 조금 후에 가게 젊은 주인이 쫓아오면서 “야! 이놈들아! 눈깔사탕 훔친 놈들아! 거기 서지 못 하니?” 큰 소리를 질렀다. 우리 둘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국 붙잡혀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되었다. 젊은 주인은 우리 몸을 뒤져 눈깔사탕을 꺼내 놓았다. 아마도 일곱여듧 개 쯤 되는 걸로 기억된다. 부릅뜬 황소 눈알처럼 굵은 사탕이었다.
주인은 훔친 사탕을 증거로 우리를 죄인취급을 하며 학교 교무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다짜고짜 여러 선생들 앞에서 큰소리로 “눈깔사탕을 훔친 애들을 붙잡아 왔유. 이 애 담임선생이 누구유”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가까이 왔다. 일본 선생이 많은데 다행히 우리 담임선생님은 조선 사람이었다. “아니! 미야모도(宮本)와 가네야마(金山)아니냐?” 개명한 일본식 이름을 불렀다. 가게 주인은 “이 놈들은 눈깔사탕을 한두 번 훔친 게 안유! 지금까지 훔친 것 몽땅 다 물어내야 허유” 라며 소리를 질렀다.
담임선생님은 보호자를 오라 해서 이 사실을 알리고 주인이 요구하는 변상을 하면 된다. 하지만 보호자가 와서 야단맞은 애들이 깊은 상처를 입게 될까봐 두려워서
“너희들 이 아저씨 말처럼 여러 번 눈깔사탕을 훔쳤니?“
“아니유. 오늘 처음이유!“ 우리 둘은 동시에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이놈들아! 처음이라고?”
담임선생님은 “주인아저씨가 요구하는 대로 내가 변상을 해 줄 터이니 대신 이 사실을 애들 부모에게 알리지 말아요.”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그리고 우리들 보고 “절대로 부모님에게 오늘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바로 그 때였다. 문방구 할아버지가 급히 교무실로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젊은 주인아저씨는 입장이 난처해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할아버지는 “이 애들은 여러 번 훔친 게 아니고 오늘 처음 훔쳤소. 그러니 변상은 할 필요 없소. 그리고 어린 애들이 눈깔사탕이 얼마나 먹고 싶으면 훔쳤겠소?.”라고 말하고 오늘 훔쳤다가 압수당한 눈깔사탕을 몽땅 우리들 손에 쥐어 주며 “가지고 가 동생들과 함께 나누어 먹도록 하여라.”
우리들에게 혼을 낼 줄 알았는데 의외라 너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과거에 나는 형들을 따라다니며 참외, 수박, 콩서리 등을 할 때 서리는 훔치는 것이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고 그저 재미로 하였었다. 혹시 들키더라도 어른들은 애들 장난으로 알고 큰 책망 없이 한번 만은 관대히 용서해 주었다. 눈깔사탕도 그런 ‘서리’로 알고 어린 마음에 훔치는데 동참한 것이다.
어린 시절 눈깔사탕이 먹고파 훔치다가 붙잡히고, 훔친 사탕 값을 변상해 준다며 부모님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우리 편을 들어주신 인자한 담임선생님, 그리고 우리를 용서해 주며 훔친 눈깔사탕을 손에 쥐어주던 너그러운 문방구 할아버지의 눈물이 나올 만큼 고마운 마음씨가 어린 가슴에 감동과 뉘우침을 주었다.
오늘 L권사님이 사온 눈깔사탕을 먹으며 70년도 더 되는 아득한 옛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새록새록 생각났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www.joyseattle.com/news/34966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