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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04/24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무소유' 가르침의 본산

 

4월이 오자 날씨가 훨씬 나아졌다. 잊었던 바람도 시원하게 불려왔고 멀리서 당겨온 햇빛도 유난히 반짝인다.


누군가 성북동에 있는 한 미술관의 전시회를 소개하면서 ‘길상사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걸어서 가도 좋아요~’ 한다. 그런데 그 말이 나에게는 ‘성북동 길상사에 2번 마을버스타고 오세요!’ 라고 들렸다.


나는 성북동도 알고 길상사도 알고 마을버스도 잘 안다! 그러나 그런 조합으로 성북동을 가본 적은 없기에 그렇게 가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리 낯설지 않은 4호선 전철을 타고 삼선교역에 내려 6번 출구로 나와 성북동 가는 마을버스 2번을 탔다.


성북동은 고등학교 때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를 배우면서 처음 들었지만 그 후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이 가본 동네는 아니다. 어쩌다 지나가 본 기억으로는 넓은 아스팔트 비탈길이 있었고 차고가 있는 큰 개인저택들이 쭉 연결되어 있는데 의외로 주택 옆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인지 무척 조용했던 것 같다. 


길상사(吉祥寺)는 시인 백석 (1912~1996)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1916~1999)님이 자신이 소유했던 고급 음식점, ‘대원각’부지를 ‘무소유’의 가르침을 준 법정스님 (1932~2010)에게 시주하여 1995년 절로 만들어져 유명한 곳이다.


마을버스는 전에 서울통신 (2013 11 09)에도 언급했듯이 지하철역에서 아파트단지나 고개 너머로 주민을 실어 나르는 주행거리가 짧은 동네기반 연두색 버스이다.

 

성북동의 비탈길을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니 마치 관광을 온 듯 쾌적함에 잠시 행복하다. 버스는 어느새 길상사 앞에서 바로 섰고 정문과 경내에는 벌써 석가탄신일을 알리는 색색 연등이 여기저기 꾸며져 있다.

 


길상사 안은 절이면서도 산속의 넓은 정원 같은 느낌이 든다.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여러 종류의 전각(殿閣)들과 부속건물들, 행사안내들과 석탑 조각들, 그리고 나무들과 저절로 생긴 듯 꽃밭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방문객들은 각자 인상 깊은 장소에서 걸음을 늦추며 잠시 시간을 보내며 맑고 향기로운 바람과 하늘을 누린다.


나는 3군데 지점에서 좀 오래 서 있었다.


첫째는 ‘침묵의 집’이라는 작은 집이었다. 가까이 가보면 바로 온돌방문이 보이는 집인데 명상을 위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 안을 들여다 보니 아무도 없다. 방문을 열고 지금이라도 당장 들어가 명상을 할 수 있는 서울 중심가에 방 하나. 누구에게도 열려있다.


두 번째 내 발길이 머문 곳은 법정스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진영각(眞影閣)이었다. 꽃밭 한쪽에 ‘유골 모신 곳’이라는 팻말이 있고 방안에는 법정스님의 유품과 저서 등이 비치되어 있어 경건한 분위기다. 여기도 자유롭게 둘러 볼 수 있게 방문도 대문도 열려있었다.


세 번째는 시주자 김영한님의 사당과 공덕비를 꾸며놓은 장소였다. 그녀의 약력과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새겨져있는 글을 읽었다. 백석을 만나 인연을 맺었지만 그의 집안에서 반대하는 것을 알고 스스로 그를 곁을 떠났던 여인. 그녀의 행적을 보면 영특하고 대범하고 사업능력도 있는 분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길상사는 종교시설의 외관을 갖추고 있지만 절의 유래를 보면 방문자들에게 세상의 무엇보다 ‘사랑이 영원하다’고 범종을 울려 메아리 치게 하는 특별한 전설의 장소가 된 것 같다.


종로나 대학로도 아니고 강남이나 신촌도 아니고 아직도 아파트가 아닌 개인주택과 예전 동네분위기를 간직하면서 그 특징을 문화적으로 보존하고 보강하고 있는 성북동이다. 근처에는 다양한 박물관들이 새로 생기고 대사관저들이 많고 여러 문화적 구경거리들이 많지만 당일은 길상사 만으로 시간이 많이 갔다.


구경하고 나오면서 참 이 세상은 볼 것도 많고 변하는 것도 많고 아쉽고 애틋한 것도 많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품에서 빠져나가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더 나은 내가 더 나은 네가 다시 저 고개를 건너 걸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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