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잠을 자야 한다. 제일 가혹한 고문이 잠 못 자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려서 잠들 때 어머니나 할머니의 자장가 노랫소리를 들으며 꿈나라로 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자장가는 정해져 있다.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꼬꼬닭아..."
늘 똑 같은 노래를 부르니 아기는 말은 못하지만 소견은 멀쩡하여 가사를 모조리 외우고 있다. 어머니의 자장가 노래 보다 할머니의 자장가 노랫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더 빨리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치아가 빠지지 않아 정확히 발음하기 때문에 다음 노래가 무엇인지 대충 알아 노래에 집중력이 적은데 비해 치아가 빠져 잘 알아듣기 어려운 할머니의 자장 노랫소리는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까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에 잠이 금방 온다.
학교 수업시간에 재미있는 역사시간은 졸리지 않은데 재미없는 수학이나 영어 시간이 더 졸리다. 자지 않으려고 잠과 싸워도 이겨 낼 장사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잠'은 밤과 낮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그 연결 고리는 오늘과 내일을 잇는 생활의 고리이기도 하다. 아들이 아기일 때 일이다, 나는 아들을 잠 재워 내일로 가게 하려고 애를 쓰고, 아들은 오늘에 머물러 있으려고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옹알이를 해댔다. 그 때 나는 자연스럽게 자장가를 생각해 냈다.
학교에서 배운 자장가도 있었지만, 어머니나 할머니가 우리들을 업고 불러 주시던 자장가였다. 짧은 가사지만 아기가 잠을 안자면 계속하여 연속적으로 반복하여 부르고 그래도 성이 안차면 마음대로 작사하여 부르곤 하였다.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꼬꼬닭아, 울지 마라
멍멍개야 짖지 마라.
자장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6남매를 모조리 업어서 키우느라 할머니는 허리가 바짝 굽으셨다. 다행히 위로 누나가 있기에 밑의 동생들을 많이 업어 키웠다. 늦은 밤. 잠을 자지 않고 울거나, 잠에서 깨서 보채는 동생을 들쳐 업고 토닥이며 불러 주시던 어머니나 할머니의 그 자장가 노랫소리는 내 소년 시절 왠지 구슬프고 처량하게 나에게 와 닿곤 했다.
어머니나 할머니가 부르는 그 멜로디가 단조(短調)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집안이 일제의 억압에서 고통을 받아 노랫소리가 슬프게 발산 된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을 재울 때 그런 청승맞고 구슬픈 자장가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그 애조로 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아들에게 구전(口傳)재래 동요 자장가 외에 더 어필 할 수 있는 자장가를 찾기로 하였다.
김동환(이흥렬 작곡)의 자장가(자거라 자거라 귀여운 아기야....)
김영일(김대현 작곡)의 자장가( 하늘나라 아기별도 엄마 품에 잠든다...) 그리고
한인현(이흥렬 작곡)의 '섬집아기'(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나는 한인현 선생의 '섬 집 아기'를 자장가로 삼기로 했다. 그 때 아들이 밝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동요를 불러 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유독 섬 집 아기 노래를 좋아하는지 이 노래를 계속 듣다가는 뒤쳐 가며 잠을 청하다가 얼마 후에 잠이 들었다. 이렇듯 아들과의 잠 싸움에서 섬 집 아기 노래가 다른 자장가를 제압 했던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일까? 아들도 꿈나라에서 부르는 앳된 누나의 은은한 자장노래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가로 들렸을까?,
섬 집 아기 노래를 듣노라면 구구절절이 내가 체험하는 것 같이 생생하였다. 아기를 혼자 남겨 놓고 굴을 따는 어머니는 하루 종일 정신이 혼자 집에 있는 아기에만 있다가 급기야 갈매기 울음소리에 정신이 들어 굴을 따는 일도 중단하고 모래 길을 달음박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이 노래를 듣는 아이들은 많이 운다고 한다. 2019년 12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 아이가 10살 때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왔는데, 마침 그날 배운 노래가 섬 집 아기였다고 한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엄마 생각이 나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자장가는 아기를 잠재우기 위한 노래로 목소리와 손으로 아기를 보는 사람이 토닥이거나 업고서 흔들거나, 요람을 태워 흔들며 부른다.
자장가의 어원은 자장(自將)으로 옛날 군사들이 출정할 때에 아기를 안고 부르는 엄마들의 남편을 위한 기도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만큼 남편을 적지로 보내는 애잔한 마음과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아기를 잠재우는 자장가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서양의 자장가에서는 영어의 'lullaby', 이탈리아나 루마니아어의 'ninna nanna', 에스파니아어의 'arrullo' 'nana' 등과 같이 되풀이되는 말이 많다. 이것은 아기를 잠재우고자 하는 주술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의 자장가는 아기를 눕히거나 업고 흔들어 재우면서 그 흔드는 동작에 맞추어 불렀다. 등에 업힌 아기는 몸 전부를 할머니나 어머니 또는 누나의 등에 밀착(密着)하여 따뜻한 스킨십의 체온에 동화(同化)되면서 한없는 사랑에 취해 곧 잠이 들곤 했다.
우리의 자장가는 "은자동아 금자동아/ 천지만물 일월동(日月童)아"라든가 "금(金)을 준들 너를 사며/ 은(銀)을 준들 너를 사랴" 등의 가사에 금은보다 소중한 아기가 훌륭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자장가 속에는 끝없는 사랑이 배어 있다. 자장가는 엄마가 아기를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불러 주는 노래이다. 자장가에는 사랑하는 아기를 위한 소원이 가득하다. 아기가 튼튼하게, 지혜롭게, 용기 있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 유명한 아베마리아(Ave Maria)는 아기를 임신한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이다. 임신한 사실을 안 뒤 마리아가 고백한 마니피캇(Magnificat)이란 찬미노래야말로 모든 임산부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귀엽고 소중한 아기를 잉태한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보살핌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한국 방문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인데 아기를 보기가 힘들다. 20~30년 전만 해도 아기를 업고 다니던 젊은 엄마가 많이 눈에 뛰고, 골목 마다 동생을 업고 노는 소녀가 수두룩했었는데 요즈음 젊은 세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三抛)현상 때문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집안에서 삼락성(三樂聲)이 들려야 그 집이 융성한다고 했다. 즉 아기의 울음소리, 글 읽는 소리, 베 짜는 소리이다. 대를 이어주는 아기를 낳지 않아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아기를 재우는 자장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집집마다 어린애 울음소리가 끊기지 않고 잠을 재우는 자장가 노랫소리가 계속 들렸으면 좋겠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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