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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문학 |
| 정월 대보름 연 날리기 ...이성수 |
| 이성수 2022/02/18 11:16:05 [조회 : 851] |
정월 대보름 민속(民俗)놀이로 작년 섣달부터 정월보름까지 연을 날리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은 액(厄)을 쫓는 주술적(呪術的)인 의미로 대보름날 해질 무렵 연실을 끊어 그 해의 온갖 재앙을 연에 실어 멀리 날려 보내고 새해 복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보름이 지나면 농사일이 시작되니 연 날리는 오락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숨은 뜻(暗示)도 있다. 나는 윷놀이도 좋아하지만 연날리기를 더 좋아했다. 어린 시절 추운 줄도 모르고 밭으로, 논으로, 들로 쏘다니며 연을 날리던 어린 시절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창호지를 접어 대나무를 얇게 쪼개어 십자로 붙이고 꼬리를 길게 단 <가오리 연>을 만들어 날렸다. 이 연의 특징은 방구멍이 없고 꼬리를 길게 붙여 바람이 꼬리를 타고 흐르게 하여 연을 쉽게 띄울 수 있었다. 또한 만들기가 쉬워 주로 어린이들이 좋아하였다. 연을 날릴 때마다 내 곁에서 할아버지는 북서계절풍의 세기와 방향 등 연 날리는데 필수적인 기초 공부를 가르쳐 주셨다. "연 날리는 데는 1초에 5m의 속도로 부는 바람이 제일 좋다. 이보다 약하면 갑갑하고 세면 몹시 흔들린다." 라고 하셨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손수 방패연을 만드셨다. 방패연은 꼬리가 없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중앙에 구멍이 뚫려있는 우리나라 전통 연이다. 재료는 대(竹)와 창호지가 필요했다. 창호지를 30cm 대 45cm의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크기로 자른 다음 대나무를 얇게 깎아 찰밥을 짓이겨 붙였다. 연의 무게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대나무는 마디가 작아야 하고 속살을 벗겨낸 얇은 대나무 줄기를 사용했다. 연의 중앙에 지름 7cm의 둥근 구멍인 '방구멍'을 뚫었기 때문에 센 바람을 흡수하여 연이 잘 뜨며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었다. 방구멍 위에 태극문양도 멋지게 그려 넣었다. 연실은 명주실을 썼고 감는 얼레는 네모얼레를 썼다. 할아버지는 방패연 날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나는 열심히 연을 날렸다. 몇 년간 정월 보름 때면 할아버지의 수제자가 되어 연 날리는 기법을 배웠다. 한마디로 연에 미쳤었다. 계절풍이 알맞게 부는 날 나의 연은 하늘 높이 까마득하게 날아올라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비상(飛上)하는 연을 보며 내 마음도 연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연의 매력은 하늘 높이 떠서 재주를 부리는 것이다. 연실을 잡아당겼다가 잽싸게 놓으면 연이 높이 솟아오르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치며 추락한다. 추락할 때 실을 감아 당기는 순간 창공에 큰 원을 그리는 연의 멋진 묘기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그리고 또래 애들과 연싸움을 할 때 연실이 잘려 방향을 잃고 멀리 사라져가는 친구 연의 모습을 보는 것도 통쾌하였다. 군(郡)에서 정월 보름날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나 보고 한번 출전해 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들판에 마련한 군(郡)대항 연날리기 대회장으로 갔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늘에는 여러 종류의 연이 떠서 제 모습을 자랑하며 대회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었다. 나는 소년부에 출전했다. 그간 할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비법(秘法)으로 사금파리를 잘게 부숴 찰밥에 반죽하여 연실에 먹였다. 사금파리그릇 깨진 것은 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유리병을 깨트려 쓴다. 그런데 사금파리의 서슬이 유리의 서슬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로부터 배워서 알게 되었다. 연날리기는 연실에 먹인 서슬의 강약에 의해 그 승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연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씩 싸워 이기고, 이긴 팀과 싸우는 토너먼트 경기 방식이었다. 하늘 높이 까마득하게 떠오른 나의 연은 이마를 끄떡 끄떡하며 상대방 연에게 싸움을 청했다. 할아버지는 곁에서 열심히 응원해 주셨다. 사금파리를 부숴 먹인 내 연줄에 스치기만 해도 상대 연들은 힘없이 끊겨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상대방의 연은 유리병을 깨트려 연실에 먹였을 것이다. 무려 대여섯 번 이상 상대방의 연실을 끊어 떨어트렸다. 떨어져가는 연들은 묵은 해의 재앙을 가지고 멀리 사러져 갔다. 구경꾼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나는 군수상을 타고 부상으로 큰 대야를 받았다. 높은 창공에서 종횡무진으로 날며 여러 연들을 떨어뜨리는데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한 방패연을 할아버지께서 가슴에 안고, 나는 대야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군 대항 연날리기 대회에서 1등상을 탔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고 만나는 어른들마다 장하다며 나를 칭찬해 주셨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돌아오면 소년시절 연날리기 대회에서 소년부 최고상을 받으며 가슴 벅찼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성수 (워싱턴주 페더럴웨이 거주)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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