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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문학
  세살은 세 살에 알아야 할 것이
박유선  2021/10/22 10:11:45 [조회 : 529]

언젠가는 잘 한다고 정부에서 포상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제대로 사건을 조사하지도 않은 상황에 기자는 사실 아닌 사실을 신문에 대서특필하며 하루 밤 사이에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한 기업을 죽이기는 하루 밤? 아니 어쩌면 몇 시간도 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일이 잘못이 없는 것으로 판결 났지만, 끝날 때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게 소리 소문 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 일로 인해서 우리가 받은 정신적, 물질적 손실과 충격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언론에 대한 불신감 때문에 한동안 신문을 보지 않게 된 것은 말할 여지가 없다. 


집, 자동차, 가전제품 모든 돈될 것은 다 팔고 서울을 떠나, 방 두 칸을 얻어서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어려울 때는 어렵게 지내고, 그러다 보면 또 제대로 되는 날이 있으리라.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가족이 건강’하면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우리는 그런 연유로 인해서 한 지붕 두 가족이 되었다. 우리가 세든 집에는 우리 막내와 동갑인 3살짜리 계집아이가 있다. 할머니가 어찌나 위해 바치는지 아이 버릇이 말이 아니다. 제집에서 먼저 밥 먹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우리가 상 차리면 너무 급해서 신발도 거꾸로 벗어 던지고 뛰어 들어와서 애들 아빠 밥 그릇을 붙잡고 앉는다.


생선을 졸이면 할머니는 가운데 토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우리 아무개 주게 달라”고 하신다.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그러면 우리는 뭘 먹어요” 하며 작은 토막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밤중에도 누가 새우 깡이라도 들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서 당장에 내놓지 않으면 뒹굴고 난리가 난다.


어느날 그 아이엄마는 느닷없이 “우리 아무개 크면 당신 같은 시어머니 있는 집에는 절대 시집 안 보내겠단다.” 나는 하도 우스워서 웃으면서 “됐네요. 나도 아무개 같은 며느리 안보고 싶으니까” 하고 받아 쳤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 아이엄마는 내가 좀 아이들을 까다롭게 키운다고 생각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아무리 철없는 아이라 해도 “세 살은 세 살에 알아야 할 일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런 그 아이엄마는 나와는 반대로 “안 가르쳐도 나이 먹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나.” 글쎄?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기를 살린다고 너무 자유분방하게 키우고, 네 집인지 내 집인지 구분도 없이 무례한 걸 보면, 저건 아닌데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아이들이 집밖에 나가서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는 데…. 누구 방식이 최고라는 이야기 보다는 아무리 아이라 해도 아이의 나이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가.
 

글쎄, 사실이 그 아이 엄마 말대로라면 무엇 때문에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을까?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세 살은 세 살에 알아야 할 것’이 있지 않은가. 나보고 아이들 너무 기 죽여 키운다는데. 글세! 엄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죽여 키워서 지금 자기 몫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되었나 모르겠다.


누구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내 방식이 다 옳다는 말은 더 더군다나 아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입 짧아서 잘 먹지도 않고 욕심도 없는 우리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애들이라 남의 손에 것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겠지 싶어서 “너희들 만약에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엄마 귀에다 대고 살짝 말하라”고 했다. 그것은 나의 친정에 가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말 내가 별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아이라 해도 남 앞에서 민망스럽게 남의 것을 탐내는 것은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그 말을 참 잘 알아듣고 따라줬다.


어느날 막내가 무심히 그 아이네 집에 들어 갔을 때, 마침 저녁 식사 중이었단다. 그 아이엄마가 “아무개도 저녁 먹어야지” 하니까, 막내가 서슴없이 돌아서 나오며 “아니 예요, 우리도 밥 먹을 거예요” 하드란다. 같은 세 살 일지라도 가르치면 알아듣는다

 

어느 가을날 마당에서 그 아이 모녀가 긴 의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다가 우리가 나가니까 그 아이가 갑자기 큰 눈을 껌벅이며 아무개야 “너, 이거 먹으면 꺅! 하고 죽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호박씨를 까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아이엄마도 웃으며 “재가 이걸 먹고 죽으면 너는 안 죽느냐”고 해서 웃었다.    


할머니도 그 집 식구들도 다 그립다. 커피 머신 같은 것은 있지도 않던 시절, 양은 냄비에 무거리 커피를 끓여 할머니 드리면 참 좋아하셨지. 김치 버무리면 “무슨 맛난 냄새 나네” 하고 오신다. “할머니 저녁에 드세요” 하고 한 그릇 담아 드리면 퍽 좋아하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명절이라고 고기라도 한칼 사다 드리면 참 기뻐하셨지.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런 대로의 또 추억이 되었다.


어느날 할머니는 며느리 때문에 속상한 하소연을 하신다. 나는 끝까지 듣고는 “할머니 요즘 세상에 아무개 엄마만 한 며느리도 없어요, 그러니 할머니가 너그럽게 이해하세요” 했다.

 

그런 어떤 날은 그 아이엄마도 나를 보고 시어머니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를 하지만, 내 방법은 역시 “아무개 엄마, 요즈음에 그 만큼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요?” 하면서 “그러니 아무개 엄마는 복 많이 받은 줄 아세요” 하고 입 막음을 한다. 나는 양 쪽에다 대고 그런 말은 들은 일도 없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극을 잘 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렇게 어렵게 단칸방에 세 들어 살면서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한질 사주었다. 그것을 본 남동생은 집에 가서 “누이는 미쳤는가 보다고 하면서, 지금 무슨 아이들 책이 필요하냐”고 하드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아무리 부모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하드라도 아이들 성장이 멈추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다.


‘세 살은 세 살에 알아야 할 일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배워야 할 것은 제때에 배워야 평생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책을 사놓고 날마다 아이들 잠들기 전에 읽어 주었다. 아이들은 ‘엄마랑 아가랑’이라는 책을 좋아해 발음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따라 하며 재미 있어 했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가 매일 밤 영어동화 책을 읽어 주셨듯이 나 또한 그대로 답습한 것인가 보다.

 

백수로 지낸 2년 동안 나는 말없이 살림을 꾸려 나갔다. 그때 내게 있던 패물이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사할 때 마다 남편 눈치 보며 저장해 놓았던 많은 생활 필수품이 있어서 2년이란 세월동안 우리는 하나도 사지 않고 살았다. 안집 할머니는 옛말에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더니, 애기 엄마 네를 보니 정말 그렇구나” 하신다. 남들은 패물을 한번 팔면 다시 사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아이들 건강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 했으므로 아낌없이(?) 팔아서 썼다.


사업에 문제가 생기고 힘을 합쳐도 헤쳐가기 힘든 상황에서 귀가 여린 남편은 남의 말만 듣고 한때는 내게 오해가 컸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엔 내 방식이 더 나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어느 날 남편은 “당신은 좋은 가정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라서 사람이 선하다”고 한다. 나는 그 한마디에 지난 모든 고난이 봄 눈 녹듯 녹고 말았다.
 

내가 까다로워서 딸은 우리집에 시집을 안 보내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바로잡아야 할 일은 그때그때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가.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땅한 의무요 도리이며 사랑이 아닐가.


박유선

수필가, 월간 <수필 문학> 등단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부분)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수필집 '길 없는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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