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신문엔 자동차 보험이 오를 것이라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실려 있다. 사람들이 아이들
차 사주면서 보험에서 쫓겨나 머리 아파하는 것을 강 건너 불 보듯 했지만, 막상 내게 닥치기 전에는 그렇게
골치 아플 줄은 몰랐다. 둘이서 운전 할 땐 좋은 보험에 잘 있다가 큰 아이에 이어서 연년생 둘째 아이까지
차 사주면서 서로 경쟁이나 하듯 남편까지 가세해서 셋이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들어 보험에서 쫓겨났다.
“까짓 것 다른 보험으로 가지 뭐!” 했는데, 아뿔싸! 어떻게나 비싸고 까다롭던지 꼬박 일주일을 매달려서 해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문제는 셋이서 합동으로 만든 일이니, 해결 또한 합동으로 해야 되리라 했다.
3년 정도 조심하면 다시 정상으로 된다지만 사실 3년이 아니라 한 평생 우리가 운전하는
한은 어쩔 수 없이 조심에 조심을 더 할 방법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지 싶다.
한시도 보험 없이는 운전을 못하는 우리는
그렇게 보험 일을 해결하고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지점에 홍수가 났다는 다급한 전화가 왔다. 난 아이들과
차를 있는 대로 가지고 가니 지난 밤에 흙탕물이 종아리도 넘게 들어왔다 나간 상태였다. 어이없어 할 사이도
없이 우리는 넷이서 차로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난 정말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연습할 사이도 없이 살아온 것이, 진정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싶다.
여기가 어딘가? 물론 그 이전이나 그 후에 그보다 더한 시련이 없었다고 할 수만은
없겠지만, 그 당시로선 젊은 여자 혼자서 감당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 힘에 겨웠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니 이렇게까지 안 해도 살 텐데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난 고집스럽게도 내
힘으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먼 훗날 있을 결과는 나는 모른다. 나에겐
현재 과정이 더 중요하며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이는 그러지 말고 자기에게 오라고 먼데서 손짓한다. 난 눈 딱 감고 못 이기는
척 휴가 사인을 써 붙이고, 그이가 기다리는 일본으로 날아갔다. 그이가
공항에 마중 나오니 제3국에서 그렇게 만나는 것도 괜찮다. 우리는 도쿄,
오사카, 나라, 교토 등지를 오랜 지인들을
만나며 일주일 정도 즐거운 여행을 했다. 우리는 그 길로 꿈에도 잊지 못하는 나의 조국 한국으로 갔다.
그이는 이상하게 제3국에서는 잘 챙겨주더니, 한국에 도착하면 아예 나 몰라라 하고 신경도 안 쓴다.
우린 헤어져 살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부부인가? 어쩌다 만나 같이 있는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도 지나간다. 정해진 시간은 안타깝게도 금방 지나 별수없이 석별의 정을 나누고 돌아설 수밖에
다른 어떤 방법이 없다. 언제나 가족과 친구는 이상하게 만났다 헤어지면 더 보고 싶고 그립다.
아마 그건 어쩔 수 없는 끈끈한 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람은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뒤집어 말하면 ‘보면 더 보고 싶은’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집에 돌아와 여행 가방을 정리하는데 뭔가 가방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다. 가만히
보니 여권도 비자도 없이 비행기표도 안 내고 살짝 숨어 묻어온 서울 깍쟁이 ‘바퀴벌레’가 아닌가. 순간 난,
‘너는 어쩌면 그렇게 편하게 숨어서 공짜 비행기를 타고 마음대로 왔니?’ 하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바퀴벌레는 ‘어이구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어어! 공기도 냄새도 다른 여기가 어디야?’ 두리번거리며 너스레를 떤다. 난, ‘이 얌체 바퀴벌레야! 여기는 미국 시애틀 북쪽에
있는 켄모어라는 동네야.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겁 없이 온 거야’ 하니까, ‘사실은 숨바꼭질 하느라 가방 속에 숨었다가 그만 잠이 드는 바람에 그랬는데’ 하고 겁먹은 표정이다. ‘어떡하지, 엄마도 친구도 다 잊어 버리고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지’ 하고 울먹거리는 것 같다.
문득 바퀴벌레를 보니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이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귀에 익은 경쾌한 스페인 민요곡이 떠오른다. 그런데 라쿠카라차는
스페인어로 징그러운 ‘바퀴벌레’라는 뜻이라고 한다. 내 경우뿐만 아니라 때로 열대 나라에서 들어온 컨테이너에는
무서운 전갈, 방울 뱀 같은 것이 묻어온다.
그렇지만 어떻게 내 가방에 바퀴벌레가 따라오다니, 좀 묘한 기분이 들다가 나도 너처럼
살짝 얹혀서 아무 준비도 없이 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니 엉뚱하게도 부럽기도 하고 절로
웃음이 난다.
 |
박유선
수필가, 월간 <수필 문학> 등단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부분)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수필집 '길 없는 길 위에서'
|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