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나절에 남편은 오른쪽 맹장이 있는 쪽이 아프다고 하더니, 조금 지나자 괜찮다고 하였다. 며칠 후 또 같은 증상이 생겼다고 불편해하더니, 아픔이 지속하자 나와 함께 동네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엑스선 사진을 찍고 나서 약을 주면서 다음날 오란다.
이튿날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이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의사인 조카에게 전화로 사실을 알렸더니, 자기가 즉시 절차를 밟아 놓을 테니 혜화동에 가서 방사선 촬영을 먼저 하고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라고 권하였다. 시키는 대로 그곳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사과만 한 크기의 암 덩어리가 보인다고 하였다. 무슨 정신으로 이렇게 다닐 수 있는지 기가 막혔다.
아이들에게는 미리 알리지 말고 수술이 다 끝나고 집에 퇴원한 다음에나 아니면 나중에 알리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시카고에 있는 알곤 국립연구소에 근무하는 작은 아들이 일본 센다이에 있는 동북대학에서 세계 석학들이 모이는 큰 학술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기회에 며느리와 저의 장인 장모님과 같이 일본 남쪽 오키나와서부터 일본 북쪽에 있는 동북대학까지 여행 계획을 세웠다. 아들은 오키나와에 도착하자 서울 집에 전화했다.
여러 날 아들은 나와 전화 통화가 안 되다가 하루는 집에서 내가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안 된 이유를 아버지 건강 검진을 하라고 외사촌 형이 권해서 검진을 며칠 입원하면서 받으시는 중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저의 장인어른이 들으시고 그럴 리가 없다고 하시는 말을 듣고, 즉시 아들은 시애틀의 여동생에게 전화하니 딸아이는 통곡하면서 나한테 전화를 하였다.
이쯤 되니 더는 말을 안 할 수 없어 군대에 가 있는 큰아들에게까지 아버지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며느리는 즉시 여행을 취소하고 서울로 왔고, 우리 작은아들은 울면서 학술회를 취소하고 서울로 간다는 것을 장인어른이 말리시고, 지금 간들 달라질 게 없으니 회의가 끝난 다음에 가라고 하셨다.
동북대학 한국 유학생들은 한국인 학자가 부인과 같이 온다니까, 나이 지긋한 분이 오시는 줄 알고 근처 온천 접대를 계획했다고 하였다. 막상 만나니 30세를 막 넘긴 젊은 학자이고, 부인과 같이 온다고 하더니 혼자라서 조금 실망 아닌 실망을 했다고 하였다. 작은아들은 학술회가 끝나자 곧장 서울대학병원으로 달려왔다.
대장암 수술은 막내 시동생이 충북대학 약대 학장으로 있을 때 친분이 있었던 서울대학병원 박재갑 교수의 집도로 이루어졌다. 수술 날은 휴가 나온 큰아들이 아버지를 돌봐 드렸다. 며느리는 시아주버니 점심 수발을 했고, 둘째 아들은 귀대한 형을 대신해서 아버지 퇴원을 도와 집으로 모시고 왔다. 늘 멀리 떨어져 살던 자식들이 아버지가 위급할 때 효도를 하게 되어 무척 고맙고 크게 다행한 일이었다.
며칠 뒤 작은아들이 출국하는 공항에서, 나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때 내 어깨가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암 환자를 어떻게 돌봐 살린단 말인가. 암의 병기가 3기라니, 생존 확률은 얼마이며 무엇을 먹여야 하며 항암 치료 부작용을 어찌 나 혼자 감당한단 말인가. 자식들도 옆에 없으니 말이다.
나는 서점으로 뛰어가 암 환자의 극복 사례에 관한 책을 사 왔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환자는 정맥주사로 항암제를 맞는 5일 동안은 물론 그 후에도 10일 동안은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먹기 좋은 팥죽도 넘기지 못했다. 그 시기가 지나서 보름 동안은 조금 회복되나 싶으면 또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환자가 먹을 수 있는 것이 콩죽이었다.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보름 동안은 콩죽으로 하루 세 끼를 먹도록 했고, 내가 근무하는 한약국에서 항암 효과가 있는 한약재를 지어다가 다려서 항암 주사 맞는 시기를 피해 하루 세 번 먹게 하였다. 1년간 항암제 주사를 맞은 후에도 8년간 한약을 하루 세 번 복용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간호한다 해도 환자의 고통은 본인이 짊어지는 고통이므로, 옆에서 지켜보는 일도 참 힘든 기간이었다. 천운인지 지금 수술한 지 21년이 되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돌이켜 보면 콩죽이 환자의 면역력을 붙잡아 줘서, 항암 치료의 부작용을 견딜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하며 또한 콩에는 항암 효과까지 있다니, 요즘 나는 항암 부작용으로 식사를 못 하는 사람에게 콩죽을 먹으라고 권하고 있다.
남희우
수필가, <출판과 문학> 등단
뷰리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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