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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애틀문학 |
| 나이테 단상 ...이경구 |
| 이경구 2020/01/02 11:20:16 [조회 : 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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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벽난로 앞쪽에 놓고 애용하는 밤색 커피 테이블은 미얀마산 티크 나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6년에 첫 해외 근무지인 랑군 총영사관에 부영사로 있을 때, 시내 전통 시장에서 샀다. 랑군이란 양곤의 옛 이름이다. 이 티크 나무의 횡단면을 보면 나이가 나보다 26살이 많다. 나이테마다 색깔이 처음에는 연하고 그 다음에는 진한 것을 보면 더운 햇볕도 쬐고 많은 비도 맞고 심한 가뭄도 견디며 자랐다. 윤이 나는 109개의 나이테는 굳센 생명의 힘을 보여 준다. 내가 어릴 적에 일꾼들이 뒷산 참나무를 발매할 때는 도끼로 베었다. 나이테가 삼사십 개쯤 되는 참나무 둥치를 도끼로 찍노라면 나뭇가지가 흔들려서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참나무가 ‛우지끈’ 하고 쓰러질 때는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도토리는 주어다가 토도리묵을 만들어 먹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생명의 끈질김을 보았다. 하루는 시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장승배기 고개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키가 큰 이웃집 아저씨를 만났다. 포켓 북을 읽으며 걷고 있었다. 아저씨는 들판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하였다. 그림 감을 찾기 위해 밭둑으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쾍’ 하는 외마디소리가 들렸다. 둘이서 뛰어가 보니 붉은 줄무늬가 있는 길다란 뱀이 개구리의 오른쪽 다리를 물고 있었다. 커다란 참개구리였다. 뱀이 턱에 힘을 주며 다리를 입에 넣으려 하자 개구리는 또다시 외마디소리를 지르는데, 그것은 다른 생명들에게 급하게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였다.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그런데 아저씨는 개구리를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연필과 도화지를 꺼내어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을 스케치하였다. 생명의 외침을 그린다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그림 그리기를 대충 끝내자 돌을 집어서 뱀에게 던졌다. 목슴을 건진 개구리는 펄떡펄떡 뛰어 콩밭 속으로 도망을 갔다. 개구리의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그 후 서울 강남에서 글을 쓰며 노년을 보내던 1998년 가을 어느 날, 문우들과 버스를 타고 합천 해인사로 단풍 구경을 갔다. ‛가야산 해인사(伽倻山 海印寺)’라는 일주문을 지나서 봉황문 가까이 다다르니 오른쪽 둔덕에 '고사목(A Withered Elm Tree)'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거기에는 ‛이 느티나무는 1,200여 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에 수령을 다해 고사(枯死)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라는 글이 씌어 있다. 바로 뒤쪽의 철책 안에는 둥치만 남은 고사목이 서 있었다. 둥치 둘레가 5미터쯤 되고 높이는 내 키의 서너 배가 되며 속이 검게 썩었다.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세워진 해인사와 함께 살아오다가 죽어서 풍장(風葬)을 치르고 있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1,200년을 지냈다. 절에서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애틀 근교로 이민을 와서 지낸지 5년째 되던 해인 2013년 11월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재미수필문학가협회에서 ‛한국 바라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이민자의 문학,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라는 표어 아래 ‛에시이 데이’를 제정하고 로텍스 호텔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동석하게 되었다. 여러 주에서 모여든 수필가들은 꿈나무가 되어 본국 국문학 교수의 세계 문학 이야기도 듣고 수필 문학 창작에 관해 토론도 벌이고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영원한 생명력이 되겠다는 결의도 다졌다.
눈들을 왼쪽으로 돌리니 ‛1620 Pilgrims arrive at Plymouth Rock’라는 표지가 눈에 띈다. 최초의 이주자가 플리머스록에 도착했을 때의 나무의 나이를 세어본다. 눈을 더 돌리자 ‛1776 Declaration of Independence’라는 표지가 나타난다. 독립 선언서가 발표되었을 때의 나무의 나이를 알아본다. 둥치의 가장자리를 보니 ‛1934 Tree fell in Humboldt County’라는 표지가 눈앞에 다가온다. 레드우드가 쓰러진 때의 나이를 보여 준다.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려 온다. 나는 레드우드 나이테 앞에서 ‛아, 2,200년의 세월을 살아온 생명의 흔적이여!'하고 머리를 숙였다.
이경구 작품집: 소렌토 아리랑, 시애틀의 낮달 해외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역임 현재 위싱턴주 뷰리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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