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다. 어~어 하다보니 어느새 5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때 우리는 50년 후 오늘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지 싶다. 크던 작던 꿈이야 있었겠지만 너무나도 까마득한 먼 훗날이라 생각했기에. 그 50년 세월이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라 그안에 우리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연습없이 시작한 인생. 눈으로 보는 대로 남 살듯 살면 되리라 여겼다. 오늘도 오직 내 마음은 진심과 성실함으로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면 모든게 잘 되리라 하는 믿음엔 변함이 없다.
우린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특히 이민자의 삶이란 남자 여자 일을 가릴 처지가 못됐으니까. 그저 소인지 말인지 닥치는 대로 무엇이던지 안팍 일을 다하며 헤쳐가야 하는 현실이기에. 아이들은 또 그들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때로 영어 딸리는 부모를 거래처까지 따라 다니며 돕기도 했다. 거래처 사장님들은 우리 큰아이를 작은 사장이라고 불렀다. 그런 가운데서 잘 자라 준 아이들이 참으로 고맙다.
나는 오늘 갑자기 50년 전으로 필림을 되돌려 봤다. 결코 쉽지않은 50년 세월을 그이와 해로했단 생각엔 변함 없다. 그이 역시 결벽증 있는 내가 때론 힘 들었을 것이다. 무엇이던지 바로 놓이지 않으면 못보는 성미의 소유자인 나. 냄비 두껑 공기 구멍 조차도 항상 같은 방향으로만 덮어야 하는 괴팍하고 까다로운 사람과의 호흡을 맞춘다는 건 어렵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때론 미안하기 그지없다. 한데 타고난 성품이니 어쩔 수도 없지만.
젊어선 먹고 사느라 헤어져 살았지만 이젠 하는 일과 나이도 있어 각방을 쓴다. 너무 편하고 좋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먹고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서로 다른 일상을 살기 때문이다. 그이는 화가이다 보니 자다가 아무때나 그리고 싶을 때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나는 또 시덥잖은 작가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또 나만의 자유시간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막내 며느리가 방을 따로 쓰는걸 보고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이해 한단다. 내 생각엔 부부라 해도 나이를 먹을수록 피차 너무 간섭하지 않는 삶이 좋다고 여긴다. 살만큼 살아서 이젠 웬만한 건 눈감고도 다 제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니까.
워낙 곰표인 난 나이를 먹을수록 말 수가 더 줄어들었다. 중요하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다. 때로 말없음으로 인한 오해도 있다. 옛 사람들도 나이들수록 ‘면벽의 시간’이 는다고 했다. 혼자 고요히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젠 한집에 같이 살면서도 때론 따로 생활한다. 결국 ‘같이 또 따로의 삶’이 지나친 간섭없이 편하기 때문이다.
혹 어떤 사람처럼 인생 성공을 돈에 기준을 둔다면 우린 분명 실패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인생에 있어선 분명히 있다. ‘무엇을 얼만큼 가졌냐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해봤느냐 하는 것’이라고 한다. 때로 돈많다고 자랑하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맛난 밥 한그릇도 사먹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느끼는 점이 많다. 그런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도 못쓰는데 천만에 타인을 위해 쓸까 싶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자랑도 아니지만, 남에게 손벌리지 않을만하면 되지 않을까? 지지고 볶으며 반백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별로 이렇소 하고 내보일 건 없다. 그러나 다만 아직 둘이 건강이 웬만하고 피차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이는 그림을 그리고 나 또한 끼적거리고 있으니 그 또한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니겠지만, 노후에 그런대로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박유선
수필가, 월간 <수필 문학> 등단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부분)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수필집 '길 없는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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