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설(舊正)날이다.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음력을 쓰지 않아 추석이나 음력설, 정월 대보름과 같은 명절을 모르고 자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할 때 진열해 놓은 음식을 보면 명절이 돌아온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우선 떡국을 끓여 먹는 썬 떡을 많이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 음력설이 가까이 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오늘 아침에 떡국을 먹고 페더럴웨이 한인회에서 개최하는 윷놀이 대회장으로 향했다. 올해는 페더럴웨이 사하리(Saghalie)중학교로 장소가 바뀌었다.
페더럴웨이 한인회는 해마다 음력설날이면 윷놀이 대회를 갖는다. 이민 사회에 우리 고유의 전통 민속 문화를 널리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그곳에서 제8대 페더럴웨이 한인회장 및 이사장 이 취임식과 통합한국학교 어린이들이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이어서 윷놀이가 시작되었다.
나와 아내는 4년 전에 한인회 주최 윷놀이 대회에서 1등을 하여 51인치 삼성 TV 1대를 탔고 8년전에 충청향우회 주최 윷놀이대회에서 1등을 하여 비행기표를 탄바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양보하는 마음으로 3년간 경기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올해는 1등에 65인치 LG TV를 준다는 홍보에 매력을 느껴 초등학교 어린이로부터 노인들 까지 타코마, 시애틀, 페더럴웨에서 대거 출전을 하였다.
실내 체육실 넓은 장소에 깔개를 여러 개 펴 놓고 19팀의 윷놀이는 일제히 시작되었다. 조용하던 장내는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 함성을 지르고 웃고 떠들며 신명나게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나의 첫째 번 게임은 타코마에서 온 여자 분과 한 판 승부를 겨루었다. 상대방은 강팀은 아니지만 잘 노는 편이었다. 첫 경기에 한해 2승3판 즉 세 번 놀아 2번이기는 경기였다. 처음에는 서로 먹히고 먹는 숨 가쁜 경기가 진행되었다. 우리팀의 '말'이 우세하였다. 결정적인 승리는 내가 ‘모’를 계속해서 2번 나고 ‘개’가 나는 바람에 상대방의 2동이나 업은 ‘말’을 잡음으로 가볍게 일승 하였고, 두 번째 경기에서도 상대방이 '말'을 쓰는 작전계획이 미흡하여 우리가 이겼다.
두 번째 게임 대상은 초등학교 5학년생과 그 어머니였다. 초등학생은 11년 전 아내가 베이비시터를 할 때 돌 본 애였다. 이름도 잊지 않고 있다. “건영”이다. 7삭 동이로 아주 약한 어린애를 친손자처럼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어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4년 전에도 우리팀과 싸워 진일이 있는데 올 해 또 만났다. 4년 동안 쑥 컸다. 두 번이나 게임 상대로 만난 것도 신기한 인연이었다.
어린 나이에 윷에 관한 조예가 깊고 ‘말’도 잘 썼다. 평소에 어머니가 많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대회에 출전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가볍게 우리가 이겼다.
세 번째 게임은 상록회 팀이었다. 말하자면 집안 식구끼리 싸우는 셈이었다. 상대방은 노련하게 윷도 잘 던지고 신명도 좋았다. 하지만 ‘뒷도’(退豚)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리는 처음에 ‘도’가 났다. 그리고 다음에도 ‘도’가 났다. 둘을 업었다. 또 ‘도’가 났다. 또 업었다 두 동을 한꺼번에 업은 것이다.
다음에 ‘뒷도’가 나서 날밭(반환점)에 메겼다, 다음에 걸이 났다. 말 둘을 업은 것을 냄으로 것이 2개 ‘말’이 난 셈이다. 이는 엄청 빨리 난 것이다. 이상한 것은 도가 2 번 나 업을 때 까지 한 번도 먹히지 않았다. 이렇게 2개의 말을 냄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은 우리는 순탄하게 게임이 풀려 상대방의 말을 잡으므로 쉽게 이길 수가 있었다.
1승으로 경기가 끝났다. 이렇게 4강(준결승전)에서 승리하여 우리팀은 결승전에 진출 하게 되었다. 결승전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까지의 윷놀이 보다 규칙도 엄격했다. 깔개도 4개를 합하여 공간이 넓어졌고, 윷도 앉은 키 높이만큼 높이 놀되 윷을 구르거나 하는 특이한 기교를 부릴 수 없었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65인치 LG UHD TV를 타느냐 아니면 전기밥솥을 타느냐 하는 기로에 놓여 있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결승전이라 바짝 긴장이 되었다. 결승전답게 3번 놀아 2번을 이기는 2승3판 경기였다. 여러 사람이 보는데서 하는 경기라 두 팀은 긴장하였다. 아내는 ‘모’가 연거푸 두 번 나고 ‘걸’을 나 앞에 업은 상대방 말을 잡아 승리할 수 있었다. 상대방도 ‘모’와 ‘윷’을 자주 났지만 쫓기고 쫓기다가 결국은 분패하였다.
한번 승리한 우리 팀은 여세를 몰아 한 번 더 이기기 위해 작전계획을 짰다. 이제 막판에 우리가 한 번 더 이기면 1등을 하고 만일 지면 또 한 판 붙어야 한다.
1승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놀았다. 먼저 노는 편이 잡혀 죽을 염려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유리하다고 한다. 상대방이 ‘모’가 1번 ‘윷’이 두 번 나는 바람에 우리말이 다 잡혀 죽었다. 날밭(귀환점)가까이 다 온 우리말들은 업은 것 까지 아깝게 모조리 잡혀 몰살당해 하나도 없고 상대방은 말이 3개나 나고 1개만 ‘막’(끝)으로 나면 이기게 되었다. 그것도 날밭가까이 바짝 와 있어 한 두어번 놀면 끝나게 되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새로 출발했다. 응원꾼들은 다 우리팀이 졌다고 단정 지었다, 다시 시작했다. ‘도’가 났다. 또 ‘도’가 났다. ‘도’를 2개 업었다. 준결승전에서 뒷도의 덕을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뒷도’는 나지 않았다.
나는 큰 소리로 ‘뒷도’라고 외쳐 봤지만 그냥 ‘도’가 났다. 또 ‘도’를 업었다. 결국 세 개의 ‘도’를 업었다. 상대방은‘ 막’(끝)가기 때문에 우리의 ‘도’를 잡을 수 가 없었다. 뒤땅은 전부 우리 땅이었다.
아내가 힘껏 던지는 윷은 운 좋게 ‘윷’이 나고 ‘걸’이 나 세 동을 업은 우리말이 잽싸게 상대방의 ’막(끝)‘가는 말을 일격에 잡았다. 다음에 내가 ’모‘가 나고 ’걸‘이 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변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1등을 하였다. 도저히 상상도 못 할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윷놀이의 실력은 상대방이 우리 팀 보다 훨씬 우수했다. 하지만 우리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수상식이 있었다. 기자들이 TV와 전기밥솥을 놓고 수상자들과 한인회장 그리고 이사장이 합석한 가운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늦게 까지 응원해 준 많은 분들과 윷놀이 진행을 맡아 수고한 한인회 임원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했다.
이성수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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