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따뜻한 봄날, 학교 운동장에서 노란 새끼 병아리를 파는 것을 보고 너무나 예뻐 그걸 사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며칠을 졸라 드디어 2마리를 사 가지고 신이 나서 집에 돌아왔다. 추울까봐 상자에 넣고 안방 아랫목 따뜻한 곳에 놓고 조, 쌀을 주고 극진히 길렀다.
계란을 삶아 노른자를 으깨 주라고 하여 그걸 먹이기도 하였다. 상자에 넣어 기르는 것이 갑갑할 것 같아 방에 내 놓고 길렀다. 울 때는 '삐악 삐악‘ 하고 울었다. 게다가 사람을 보면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쫓아다니기도 하고, 주변에 아무도 안보이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다가 다시 누군가 보이면 울음을 그치는 등 하는 행동이 영락없는 아린 아기 같았다.
병아리를 떼어 놓고 학교에 갈 때는 할머니에게 봐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나는 병아리가 귀엽고 예뻐서 늘 손에 쥐고 있었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아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주 순수한 첫사랑이었다.
짧고 부드러운 샛노란 털의 색깔, 조그만 까만 눈, 귀여운 발, 삐악삐악하며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 울 때마다 V자 모양으로 짝짝 벌리는 입, 두 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데다가 두리 뭉실 복슬복슬해서 엄청 귀여웠다. 어린 생명을 사랑하는 나의 첫사랑을 아낌없이 병아리에게 주었다.
일주일쯤 지났다. 또랑또랑 방속에서 돌아다니던 병아리는 힘이 없이 방 귀퉁이에서 졸고 있었고 주는 모이도 먹질 않았다. 그 날 학교에 갔다 와 보니 창가에서 병아리는 죽어 있었다.
할머니는 “네가 하도 손으로 만지고 노상 껴안았기 때문에 병아리가 손 타서 병이 들어 죽은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병아리가 너무나 불쌍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사랑인데, 죽다니 눈물이 났다. 그렇게 샛노랗던 병아리는 축 쳐져 거무충충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밭에 작은 구덩이를 파서 죽은 병아리의 시신을 묻어 주었다. 병아리의 장례식 조문객은 나 혼자 뿐이었다. 땅에 묻으면서 혼자 울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느꼈던 일주일간의 첫사랑을 어린마음으로 일기에 써 놓았다.
그 일기를 담임선생님이 보고 잘 썼다고 칭찬하며 반 학생들에게 읽어 주었다. “쓸쓸한 장례식을 울면서 혼자 치렀다”는 대목에 여러 학생도 덩달아 같이 울었다. 그 애들도 나와 꼭 같이 병아리를 사다 길렀고, 병들어 죽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커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운동장 근처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보고 첫눈에 반해 첫사랑의 대상으로 사다가 기르며 예뻐했다. 그 작고 앙증맞은 노란 병아리를 보며 내 어린 시절 병아리를 사랑했던 추억이 새롭게 떠올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를 가기 전 딸아이가 병아리가 죽었다고 울고 있었다. 급히 방으로 가 보니 병아리하고 너무 가까이 자다가 숨 막혀 죽은 것 이었다. 죽은 병아리가 불쌍하다고 울고 있는 딸애를 보니 문득 내가 딸애만할 때 병아리가 죽었다고 울었던 기억이 나서 마음이 짠하였다.
아이에게 첫 사랑이었던 병아리, 그것은 바로 그 애가 커서 이성 간에 느끼는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2017년은 닭띠 해이다. 닭도 붉은 닭이다. 12 띠 동물 중에 닭이 유일한 새(鳥類)이다. 닭은 '삼국유사'의 혁거세 신화에 나올 정도로 한민족이 오랫동안 기른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동물이다.
닭은 동이 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우는 시보(時報)의 역할을 한다. 삼라만상 우주 만물이 칠흑 같은 밤중에 곤히 자고 있는데 닭만이 깨어 소리 높이 혼자 울어 새벽을 알리는 독특한 사명을 띠고 있다. 그 옛날 농촌에 살 때 잠결에 멀리에서 우는 닭울음소리를 아득한 꿈속처럼 듣던 기억이 난다.
닭 울음소리는 수컷은 "꼬끼오~", 암컷은 "꼬꼬댁, 꼬꼬", 병아리는 "삐악삐악 운다. 옛날 우리 시골마을에서는 수탉 울음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여명(黎明)을 알리며 우는 닭은 수탉이다. 홰를 치며 ‘'꼬끼오~’'하고 울면 다른 집의 수탉이 받아 울고 이렇게 해서 온 동네 수탉이 날이 샐 때까지 번갈아 울어 댄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이라 수탉울음 소리는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시계의 알람이었다.
심청가를 보면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내가 죽는다'고 하면서 새벽을 알리는 닭을 원망하는 애틋한 구절이 나온다.
나는 어려서 허리가 바짝 굽은 할머니의 등에 업혀 자랐다. 할머니는 치아가 빠져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멍멍개야 짖지 말고 꼬꾜 닭도 울지 마라! 우리아기 잘 자라.” 자장가를 부르면 난 개와 닭의 모습을 연상하며 스르르 금방 잠이 들었다. 나이 어린 고모가 나를 업고 같은 자장가를 똑똑한 소리로 불렀지만 할머니 등에서처럼 쉽게 잠들지 않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가몰 거린다.
서양 닭과 우리나라 닭의 울음소리가 다르다. 우리나라의 민속 전통음악은 5음(궁 상 각 치 우)이고 서양은 7음(도래미파솔라시)이다. 우리의 음이 2음 짧고 서양 음이 2음 길다. 그런데 닭의 울음소리는 신기하게 반대로 우리나라 닭은 “꼭끼오오오~”로 2음 길게 울고, 서양 닭은 “꼭끼오~”로 2음 짧게 운다.
나는 농촌에서 닭을 길러봤기 때문에 닭울음소리를 안다. 암탉은 달걀을 낳고 나서 “알 낳았다!“고 자랑하듯 호들갑을 떨며 ”꼬꼬댁 꼬꼬!“ 울고, 적이 나타나면 ”꼬꼬댁 꼬꼬댁~“ 하고 연속으로 급하게 울고, 새끼를 부르거나 모이가 있다고 알릴 때는 ”꼬꼬꼬“ 운다.
닭은 다섯 가지 덕(德)을 갖춘 가축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일덕(德)은 머리의 볏은 관(冠)을 쓴 모습이고, 볏은 벼슬과 발음이 비슷해 문(文)이오. 이덕은 발에 삼지창(무기로 쓰이는 며느리발톱)을 지녔으니 무(武)요. 삼덕은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니 용(勇)이오. 사덕은 먹이를 보면 혼자 먹지 않고 불러드려 나누어 먹으니 인(仁)이며, 오덕은 날마다 때를 어기지 않고 새벽을 알리는 울음은 신(信)이다.
닭의 해 구정이 다가오고 있다. 새해(丁酉)에는 우리 모두 닭의 오덕을 거울삼아 문무를 갖추고 용맹하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어 베풀면서 부지런한 생활습관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성수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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