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성탄절을 생각하면 6.25 이 후 서울 마포에서 고등학생으로 유년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과 지냈던 성탄절이 생각난다. 맥주깡통을 펴서 만든 양철 지붕 밑, 작은 교회당에서 난로도 없어 추운 마루 위에 가뜩 모여 앉은 코 흘리는 아이들과 불렀던 <탄일종이 땡 땡 땡> 하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탄일종이 땡 땡 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 꼴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나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오막살이 한 방에서 촛불 하나 켜 놓고 어린 두 남매가 손 모으고 기도하는 그림이 생각난다. 가난하고 초라해 보여도 아주 고요한 성탄절이 그리워진다.
요즘 성탄절은 너무 호사스럽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은 다시 나실 곳이 없어 마구간으로 가셔야 한다. 호사스러운 장식들, 반짝이는 찬란한 전구들, 호사스런 선물들, 시끌시끌한 잔치들, 예수님이 계실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것 같은 성탄절의 이런 모순은 아주 마음 아픈 일이다.
그 때 그 시절에 비하면 나는 가히 지옥 같은 환경에서 천당 같은 환경으로 와서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 때, 나와 우리는 얼마나 배가 고팠고 얼마나 어려웠었나. 그런데 오늘 내가 가진 것은 얼마나 많은가. 혹 이런 말을 하면 <또 그놈의 가난타령>하고 고개를 저을지 몰라도, 이 세모에 지난날을 뒤돌아보는 것은 오늘의 큰 복을 바로 알기 위함이다.
나는 우리 주위에서 꼭 행복해야 할 사람들, 그래서 날마다 춤을 추며 감사를 하고 사랑을 나눠주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원망과 불평을 하며 아주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종종 보며 안타까운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이 이 땅에 거지로 사는 왕자와 왕자로 사는 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사실은 많이 가진 왕자이지만 나도 못쓰고 남도 안주고 거지로 사는 왕자가 있다. 사실은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왕자이지만 날마다 미워하고 날마다 원망하고 날마다 거지처럼 살아가는 왕자가 있다. 결국 이 사람은 거지다.
사실은 별로 가진 것이 없는 거지가 있다. 그러나 이 거지는 못 가진 것보다는 지금 가진 것 하나 가지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산다. 이 거지는 조그만 것 가지고 옆의 거지와 사랑을 나눈다. 이 거지는 소원은 있어도 원망이 없다. 이 사람이 사실의 왕자다.
오늘 내가 거지인가 왕자인가. 오늘 왜 내게는 그렇게 고요하고 소박한 감사와 행복이 없는가.
탄일종이 땡 땡 땡. 이제 이해도 저물어 간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부자에게도 시간은 여기까지 와 있다. 이 시점에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앞을 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뒤를 바로 보아야 앞이 바로 보인다. 내게 날마다 내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내게 내일이 없게 된다. 내게도 일 할 수 없는 밤이 다가오고 있다.
이런 시간 앞에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천당에서 지옥생활을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보다
아주 억울한 일이다. 이것은 내 인생을 학대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감사의 노래를 다시 불러야 한다. 촛불 하나 켜 놓고 내외가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탄일종이 땡 땡 땡. 탄일종 소리를 들으며 조금만 소박해지자. 조금만 가난해지자. 조금만 어리석어지자. 조금만 나를 비우자. 이제 우리 모두 마구간, 말구유로 가자. 아기 예수님은 거기 계시다.
김상구
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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