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건 사람만이 아니다. 때로 고향도 몹시 그리울 때가 있다. 3년 전 한국을 다녀오며 다시 못가리라 여겼는데 다시 가 서울 중심가에 숙소를 잡았다. 신세계와 롯데, 명동 남대문을 낀 남산줄기 밑 편리한 동네 회현동. 사람과 자동차와 빌딩이 숲을 이루는 서울은 말 그대로 만원이다. 서울의 요지에서 3주간 변모하며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을 즐겁게 감상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유커들의 들불처럼 타오르는 관광 열기가 뜨겁다. 중국이 2012년부터 5년 연속 세계 최대 해외관광국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단다. 추억어린 신게계와 롯데 벡화점엘 가봤다. 백화점들의 옛모습이 사라져 생소하며, 유커들이 면세점으로 직행하는 출입구까지 따로 마련돼있다.
물론 시대 변천에 따라 펴고 접는 게 비즈니스라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먹거리만 해도 아마 3분의 2는 유커들 입에 맞춘듯 싶다. 명동 역시 그 옛날 자주 가던 최첨단 유행과 낭만이 흐르는 곳이 아니라, 상인들과 유커들이 한데 뒤법벅되어 돌아가는 장터같다. 종업원은 중국어와 일어를 좔좔 쏟아내며 호객한다.
내가 99년에 중국에 갔을 땐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후 모습 그대로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도시 전체에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15년 남짓만에 환영 받는 글로벌 돈지갑으로 부상했단 말인지. 밤 늦은 시간까지 유커들을 면세점으로 실어 나르기에 바쁜 관광버스들. 유커들은 손에 손에 여러개의 쇼핑백을 들고 희희낙락하며 즐거워한다.
문제는 바가지를 씌운다는 소리가 들려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진정한 관광 국가란 친절하고도 속았다는 입소문이 나지않게 정부차원에서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세계의 명품이란 명품은 다 집결해 놓은 서울 중심가엔 세계 어느나라나 가격차가 없다는 ‘유니크로’매장이 있어 우리도 몇가지 골랐다. 변한 건 젊은 청년들이 전과 달리 크지않은 숄더 백, 혹은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이체롭다. 반가운 것은 상가나 건물앞에 싱싱한 화초가 가즈런히 정리되어 있어 분위기가 한결 싱그럽다. 그러나 아직도 노후된 하수시설에선 악취가 풍겨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는 형편상 멀리 가지 못하고 서울안에서 뱅뱅 돌았다. 박물관을 천천히 돌아본 날도 있었다. 알라딘에서 중고책을 찾고, 교보문고엘 갔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의 <문학과 우리 미래> 강연회’가 있단다.
아, 여행중에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항상 목마르던 유익한 강연회를 놓칠 수가 없어 밤에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민중 보다 ‘반 발’ 앞서가는 자가 작가이다. 또한 문학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것에 기여해야 한다.” 고 열변을 토하는 노작가의 앞날에 오래도록 건강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강의을 들었다.
오기전날 남산 둘레길을 걸었다. 예전에 없던 길을 한참 걷다 돌계단을 힘겹게 올라가 남산 꼭대기에서 속이 다 시원하게 한눈에 서울을 내려다 보았다. 추억 많은 곳에서 예쁜 나팔꽃 씨를 받으며 손 내미는 그이와 같이 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50년 지기는 머다않고 달려와 하루 종일을 같이하며 그간의 지내온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이 모자란다. 피차 묵은지 같은 우정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특별나지 않지만 그렇다. 내가 이민온 후 줄기차게 햇고추가루를 챙겨주는 친구는 옷까지 선물하며 제가 마치 언니인양 한다. 언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부디 건강하게 지내다 즐겁게 또 만나자. 친구야.
박유선
수필가, 월간 <수필 문학> 등단
미주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논픽션부분) 당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 수필집 '길 없는 길 위에서'
<저작권자 ⓒ 조이시애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owered by Newsbuild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