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J라는 가까운 친지로부터 카톡이 왔다. J는 어느 기업체에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당했다고 한다. 한참 일할 나이에 퇴직을 하고 보니 자녀들 줄줄이 결혼도 못하고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벌어 논 돈도 없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작년에 장남 결혼식이 있었다. 나도 부조를 보낸 바 있는데 그 결혼식에 전에 같이 회사에 다녔던 친한 친구 동료로부터 분에 넘치는 많은 축의금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 그 동료 친구는 실직되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도와주려는 의도에서 큰 돈을 부조하였지만 받는 J의 입장은 빚진 사림처럼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올 가을에 큰돈을 부조한 친구로부터 아들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고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은 결혼이나 장례 때 내는 부조금은 마치 곗돈 내는 것처럼 받은 액수만큼 부조하는 그런 문화가 있기 때문에 세상없어도 받은 부조금만큼은 빚을 내서라도 꼭 내주려고 작정 했다고 한다.
마침 결혼식 전에 김영란 법이 사행되어 10만원(약100불)이상을 내면 처벌을 받는 다고해서 그 돈을 다 못 내고 10만원만 냈다며 미안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 결혼식이 있은 후 어느 날 등기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얼른 뜯어보니 10만권 자기앞 수표와 친구의 친서가 동봉되었다.
편지에 “어려운 처지에 부조는 왜 했느냐며 자네가 우리 애 결혼식에 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보내는 돈은 애들 학비에 보태 쓰라. 언제 만나 소주나 한잔 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미안해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난 그 소식을 듣고 그런 친구를 둔 그 친지가 부러웠다. 이 각박한 세상에 친구의 사정을 알고 배려해주는 마음씨가 대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지인으로 부터 카톡을 받았다. 그는 오래간 만에 친구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다고 한다. 그는 너무 반가워 점심 값은 자기가 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 전에 안주를 시키고 소주도 몇 잔 하고 식사를 했는데 식대가 모두 5만원 조금 더 나왔다고 한다. 김영란 법 공포 전 같으면 한 사람이 다 낼 터이지만 김영란 법이 생긴 후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한다.
만약 한 사람이 이 식대 5만 여원을 몽땅 낸다면 3만원이 초과되므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대단히 미안 하지만 할 수 없이 ‘각자 부담하기’ 즉 더치 페이(dutch pay)를 했다고 했다. 이 문화는 외국에서 많이 보는 것이다.
이곳 미국도 여럿이 같이 식사하고 난 후에 으래 자기가 먹은 식대는 자기가 낸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식대를 내주지 않는다. 김영란 법 이후로 한국도 더치 페이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거라고 한다.
친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가 먹은 밥값만 내는 것이 인색하기도 하고 이기주의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법이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지금까지 식사를 사주는 훈훈한 정(情)이 없어져 아쉽다고 했다.
한국의 김영란 법이 공포된 지도 석 달이 넘고 있다. 그간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져 매일 그 뉴스에 가려 김영란 법은 쑥 들어갔지만 우리는 새로 공포된 김영란 법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다. 미국에 사는 대한민국 국적자(영주권자.복수 국적자 포함)와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법인에 종사하는 한인 중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경우 모두 김영란 법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김영란 법을 제정한 김영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법관이다. 부산 출신(당 60세)으로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수원지방법원과 서울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등에서 부장판사를 지냈다. 그녀는 만 48세의 젊은 나이로 대법관으로 임명되면서 주목을 받았었다.
김영란 법의 골자는 식사(다과,주류,음료 포함)는 3만원,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은 5만원, 축의금(화환, 조화를 포함한 부의금)은 10만원이 기준이다. 한편, 금품과 향응을 받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부정청탁을 한 사람도 처벌을 받는다. 단 상조회, 동호인회, 동창회, 향우회, 침묵회 등의 회원이 질병이나 재난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을 때 제공하는 금품이나, 교통, 숙박, 음식 등은 이 법에서 제외 된다
이 김영란 법은 한국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부정청탁을 막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가 투명성기구가 발간하는 부정부패지수 통계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168개국 중 37위를 차지했다. 1위가 덴마크, 2위가 핀란드, 8위가 싱가포르, 10위가 영국, 16위가 미국, 일본이 18위, 중국이 83위, 베트남이 112위, 러시아가 121위였다. 그리고 국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34개국 중에서는 한국이 27위 하위권에 들었다.
한국정부 기관 산하 미국지사에 소속된 근로자중 미 시민권자가 아닌 자는 김영란 법의 처벌대상이 된다. 하지만 미국 학교 교사들은 이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시애틀에 파견된 한국 기업의 주재원의 아내가 아들이 다니고 있는 미국 학교 교사에게 200달러 상당의 촌지를 주었더라도 이 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 친구를 한번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식사를 제공하거나, 진심으로 축하하는 뜻에서 성의껏 축의금을 내거나, 신세 진 분에게 선물을 주는 한국 사람의 정(情)이 담긴 문화가 이번 김영란 법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한편 스승의 날 담임교사에게 학생이 꽃을 다라주거나 대학생이 지도 교수이게 캔 커피를 사준 것도 처벌을 받는다는 유권적 해석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부터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수
수필가,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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