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곡이 탄생한 강릉 오죽헌(烏竹軒) 바로 앞에 오죽한옥마을이 있다. 한옥마을은 서울에도 있고 전주에도 있지만, 이곳은 일반인이 객실을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2016년 개장된, 전통의 멋과 현대의 시설이 조화를 이룬 신도시 같은 한옥마을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면서 정치가인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과거 시험에 9번 장원 급제한 수재로 어렸을 때부터 신동이었다고 한다. 율곡의 초상은 현재 오천 원권에 있고, 오만 원권의 신사임당과 모자 사이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필자는 요즈음 그의 일생에서 몇 가지 일화를 접하고 감동하고 있다.
율곡(栗谷)이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났다. 상심한 율곡은 파주의 어머니 묘소 옆에 묘막(墓幕)을 짓고 3년간 시묘(侍墓)살이를 하였다. 그리고 금강산에 가서 1년간 승려 생활을 한 후 환속하여 다시 유교로 돌아왔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동길 교수 (1928~2022)가 2016년경 80대 후반의 나이로 TV 토크쇼에 나와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 이렇게 노인이 되어서도 돌아가신 자애로운 어머니 품이 많이 그립다, 그것이 인간이다!’ 예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전 경기를 뛴 한 축구선수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 이상 뛰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어떤 아빠가 겨우 간단한 단어를 하는 아기를 어르면서,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는 영상을 보았다. 아기는 아빠가 아무리 ‘아빠!’라고 답하게 유도 심문을 해도 계속 ‘엄마!’라고만 답했다. 결국 아빠는 멀쑥해져 질문을 포기하고 만다.
아빠를 마주 보면서도 답은 ‘엄마’라고만 하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보면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 몸에서 아가의 몸이 하나하나 만들어져 세상에 사람이 되어 나왔는데, 어찌 세포 하나 공여한 아빠를 더 좋아하길 바랄까? 바랄 것을 바라야지!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 따르면 율곡은 ‘소가 지은 곡식을 먹고, 게다가 그 고기까지 먹을 수 있겠는가 (식기속 우식기육 가호, 食其粟 又食其肉 可乎)’ 라고 하면서 평생 소고기 한 점 먹지 않았다고 한다. 16세기이면 요즈음과 생태관이 많이 차이가 나던 시절일 텐데, 그 시대에도 소를 생각하고 그 고기를 멀리한 율곡의 마음 씀에 면면히 그의 진심이 전해지는 듯하다.
율곡이 어머니 신사임당의 손을 잡고 걸었을 것 같은 그 길을 지난다. 오죽한옥마을의 어느 한 집에 머문다. 달빛이 비추고 밤공기를 마시면, 인생은 시묘살이처럼 절박하고 진지해져 창조적 삶에 대한 영감이 넘쳐날 것 같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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