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자신만의 힐링 드라이브 코스가 있듯이, 나에게 작은 치유의 비밀장소가 있다. 이미 말함으로써 이제 비밀이 되지 않겠지만, 그곳은 시장통 못지않게 붐비는, 그렇기에 익명이 될 수 있는 나의 거주지로부터 별로 멀지 않은 흔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서 보게 되는 타로점 보는 곳이다.
‘어느 한심한 사람이 쓸데없이 그런 것을 볼까?’라고 생각할 만큼 뜬금없는 타로점에 대해 내가 재미를 붙이게 된 것은, 한 십 년 전 우연히 정기 건강검진 때 몸에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검사 요구를 받았을 무렵이었다. 신체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과잉진료가 되지 않으려고 경계하면서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객관적인 자료를 모으던 때였다.
홍대 앞을 지나다 타로점 간판 안쪽을 보니 한 50대 여자가 혼자 앉아 있는데 국화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작은 공간에서 뭔가 이야기를 속삭이는 데에는 같은 연배의 동성처럼 즉시 편해지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타로 여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가 급 친근해졌다.
그녀는 나의 타로를 해석하면서 내가 먼저 말하지도 않은 나의 건강에 대해 몇 가지 지적을 해 줬다. 그것이 그 당시 혼자 속을 끓이던 건강검진에 대한 고민과 일치되는 것이었고 그녀가 제시한 해결책도 일반적이고 건전한 내용이어서 나는 마치 간단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온 것처럼 감명을 받았다.
그 이후 나는 가끔 약속이 어긋나서 귀가할 때나, 혹은 누군가 내 문제를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싶을 때, 타로점 부스 라인을 쏘아보다가, 50~70대 여성이 보는 타로점의 의자가 비어 있으면 용기를 내서 타로 여인을 마주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분들이 사람을 대하는데 원만하고 남을 살필 줄 알며, 몇 가지 좋은 말을 해줄 수 있는 소양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상담을 즐기거나 진지한 대화가 가능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번은 코로나 정국에 마스크를 쓰고 타로점 집에 들어갔다. 그 집은 다른 타로 집보다 데코레이션이 새것으로 되어있었고 상담석도 2개로 구분이 되어 있어 안쪽으로 할아버지가 앉아 있을 때도 있고 바깥쪽으로는 60대 여성 타로사가 앉아있었다.
윗좌석은 비어있었고, 여성 타로사만 있기에 들어갔다. 타로점을 보는데, 그 여인은 내가 만났던 이전분들과 달리 매우 무성의하게 느껴졌다. 돈만 먼저 받으려는 것 같아 ‘오늘 좀 잘 못 들어왔구나’ ‘그냥 적선한 셈 치고 빨리 나가야겠다.’ 생각했다.
더구나 잔소리가 많았다.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한다.’ ‘코로 코로나가 들어가고 입으로 코로나가 나오니 마스크는 완전히 써야 한다.’ 알아서 하고 있건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해서 위험하니 방문 기록을 꼭 써야 한다.’ 등등…
그녀가 물었다. ‘주제를 정하고 그것만 어떻게 될지 물어보세요!’ 나는 대답했다. ‘글을 쓰는 데 힘은 드는데 너무 반응이 없어서 앞으로 계속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사이에 20대 남자가 타로점을 보겠다고 그 작은 전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녀는 그에게 기다리라고 해놓고 내 타로점에 찰기 없는 목소리를 이어갔다.
몇 가지 말을 더한 것 같은데 이미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나는 뒤에 사람도 기다리겠다,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녀가 돈은 거저 받지 않는다는 듯, 용케도 듣기 좋은 말 한마디를 해줬다. ‘그냥 계속하세요. 반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그 와중에 반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는 구체적인 말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기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신과 치료를 계속했던 어떤 아이돌스타는 그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한 후, 정신과 의사로부터 내 탓이라는 말을 듣고 힐링보다 상심을 했을 것이라는 걱정들을 했다.
누구도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로 많은 말들이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 타로점을 보면서 나는 그녀와의 만남이 편한 편은 아니었지만, 한가지 말이 결국 나의 기분을 완전 위로해 주었다.
수수하고 겸손한 타로점 여사님. 그녀가 어떤 경력으로 먼지 날리는 길가의 작은 살롱에 앉아 상대를 위한 좋은 말 한마디를 찾아내는지는 모르지만, 그날 그녀의 말은 타로점 부스의 낮은 문턱처럼 서로를 가볍게 했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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