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세계한인언론인대회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할 때 조이시애틀뉴스의 서울통신원으로 행사 일정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행사장에 조금 늦게 참석했는데 무대 연단에는 이미 오프닝 스피치가 진행되고 있었다. 연사가 무슨 말을 하는 중에, ‘우리 교민들이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주류사회라는 말을 들었다.
식품미생물을 전공한 나는 양조나 술에 대한 용어에 익숙했기 때문에 연사가 말하는 주류사회가 술을 먹는 무슨 커뮤니티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 물론 몇 문장 더 듣고 바로 그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만큼 생소한 용어 조합이었다. 한국말에서는 ‘어떤 사조가 주류(main stream)을 이뤘다’라는 문장은 있지만, 사회를 주류와 주류 아닌 것으로 나눈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 때, 물개박수로 기쁨을 크게 표현한 한국계 캐나다 배우 ‘산드라 오’는 ‘왓챠’(인터넷 영화추천서비스)에서 진행된 ‘기생충’ 통역사였던, 샤론 최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을 했다. ‘봉준호는 자신이 어떤 불리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유롭고 어떤 막이 없었다’.
반면 산드라 오 자신은 인종차별업계에서 세뇌되어 스스로 제한점을 두고 살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한국인은 단일 인종이니까 인종문제로 부딪힐 일은 없지만 다른 대륙으로 가면 동양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입장에 놓여 진다.
봉준호 감독은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에 관련해서 받은 한 여기자의 질문에 본인은 ‘미래에 대한 계급 격차를 불안해하고 있으며 혁명의 시대는 지나가고 혁명은 부서트려야 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뭔지, 혁명을 통해 깨트려야 할 대상을 파악하기 힘들고 복잡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기생충은 그러한 복잡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속임수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냉엄한 현실이며 ‘기생충’을 보고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다’라는 기생충에 대한 해외 영상 관람평도 있었다. 둘 다 현대의 어떤 박탈감은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그 뒤에 뭔가가 있기는 하다는 맥락이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에 한 텔레비전 화면의 시상식 장면이 생각난다. TV를 보면서 박지성이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 선수의 순서가 돌아오자 돌연 카메라가 화면을 이동하여 기둥이 지나갔다.
잠시 후 다시 시상식 장면이 연결되어 나머지 맨유 선수들이 메달을 받는 모습이 이어졌다. 황당하지만 우연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장면은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한 클럽에서 뛰었던 일본 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올려야 하는 경우나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선수의 경우에도 생겨서, 2021년 ‘인종차별이다 VS 아니다’라는 논란의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시상식에서 아프리카계 선수는 기쁨에 차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유난히 생동감 있게 보였다.
얼마 전 한국에서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한 방송인이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아프리카의 장례식 운구 장면을 패러디한 사진에 대해 인종차별적으로 접근하여 논박을 초래한 적 있었다. 그는 ‘얼굴 색칠까지 해야 되나’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자’라는 주장이었다.
흑인이 과거 피해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정을 동시대인으로서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한국 방송에서나 연극 무대 같은 데서 흑인을 표현하려면 검게 칠하고 백인은 하얀 피부에 코를 높였던 분장을 기억한다. 단지 색을 칠했다는 이유로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과 모방을 문화 교류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경직시킨 느낌이 들었다.
박지성 축구 선수의 경우는 돌이켜보면 참 야박했던 기억이 난다. 승리가 중요한 EPL 경기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훈련 겸 팬 서비스 겸 기획된 맨유 아시아 투어 (2009. 7. 18.~2009. 7. 26.)에서 박지성은 시작지 인 말레이시아 경기부터 제외되었다.
한국에서 합류한 박지성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경기에서 한국의 열광적인 관중 앞에 벤치를 지키다가 겨우 후반 29분에야 교체 투입되었다. 이벤트성 경기인데, 아시아 선수가 아시아와 그리고 대한민국의 운동장에서 선발로 뛰는 것이 그렇게 불가한 일이었을까?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아프리카계의 경우와 또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출신들은 역사적으로 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서 서로 접촉하면서 사회 속에 함께 구성원으로서 생활한 역사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흑인은 백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서로 인지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이 쌓였다. 그러나 백인과 황인, 또는 동양인과 흑인은 백인과 흑인의 관계와 또 다른 인종적 견제의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듣는 한국인에 관한 평판은 다른 그들이 알던 곳에 비해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한국 사람은 인정이 있고 한국 치안은 안전하며,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이방인에게 호기심을 보일지언정, 이유 없는 해코지는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첨단 기술이 다수를 위해 실용화되고 많은 정보가 대중에게 공유되는 것에 놀란다.
세계 속의 한국인과 재외 교포가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인의 명성을 쌓아왔듯이, 본토의 한국인이 다문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세계의 관심이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soonyoun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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