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재선될 것을 거의 확신하는 것처럼 여겼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개표 결과 재선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새 당선자의 인수에 필요한 절차를 거부하여 논란이 되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경우 미 육군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그의 불복 태도가 드러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나왔다.
트럼프가 퇴임일까지 집무실을 비우지 않을 경우라는 가정이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일화가 있었다. 대학원 다닐 때 학과에 정년 퇴임을 앞둔 교수님이 있었다. 그가 60이 넘자 사람들은 서서히 그의 정년을 의식하는 말을 꺼냈다. ‘정확히 그가 몇 년도까지 재직하는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박사과정에는 새로 학생을 받을 수 없느니’ ‘학과에 새로운 전공 교수는 언제 오느니’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드디어 몇 년 후 그의 정년 일이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연구실 비울 날이 가까워져 오자 아무도 그의 퇴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사자는 마치 다음 학기에도 여전히 강의할 사람처럼 한결같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그제야 그의 교수실 문패가 없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퇴장을 재촉하지 않은 것은 그간 그의 노고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어떠한 변수도 정년이란 세월이 주는 퇴임 사유를 되돌릴 수 없다는 행정적 준엄함이 주는 상대적 여유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이든 교수님이든 어차피 정해진 날짜에 떠날 것이면 떠날 때까지 소임을 다 하고 또 가능한 떠나는 사람을 그날까지는 최대한 존중하는 쪽으로 일을 진행하면 좋지 않나 싶다.
한쪽 후보가 아무리 선거 결과에 불복한다 해도 어떻게, 무슨 수로, 국민이 뽑은 득표수를 뒤집을 수 있을까? 개표 결과가 이상하면 후보자는 이의를 제기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조사와 재판을 진행해 나가면 될 것이다. 법원과 의회가 판단할 것이고 대통령 취임일까지 이러한 일정이 차질이 없이 진행되지 못할 이유는 아무 곳에도 없지 않은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는 미국 대통령선거 사상 처음으로 7,000만 표를 돌파했으며 최근 80,117,438 (51.1%) 표를 기록하였다. 또한, 트럼프 후보는 73,923,470 (47.2%) 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을 때 보다 더 많은 득표수 및 득표율을 얻고도 재선에 실패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바이든은 물론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수 270명을 확보했고 최종 306:232로 트럼프와의 격차를 보였다.
엄청난 득표를 한 바이든이 승자로서의 여유보다는 도전자로서의 공격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상대방 후보의 승복 전화를 받지 못한 채로 서둘러 ‘분열이 아닌 통합의 미합중국을 바라보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승리 선언 연설문을 발표했다.
단임에 그쳤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나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경우를 돌아보게 된다. 냉전 종식을 이끈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단임으로 끝난 가장 성공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뉴욕 타임스’의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상주의자였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과로로 조깅하다 주저앉을 만큼 힘겨운 재임 기간을 보냈지만, 퇴임 후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함께 숨 쉬며 ‘사랑의 집짓기’ 등의 자원 활동을 하며 현재까지 장수하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고의 자리에 최고의 기회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간절한 정책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유세를 달궜던 빛나는 청사진은 그저 탁상공론이었던 듯 그 빛이 바래기도 한다. 코로나 19에 대한 정책만 해도, 기약할 수 없는 바이러스성 질병을 막기 위해 생업을 위축시켜야 하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은 경제에 민감한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으로서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그간 한국이 트럼프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괄목할 만한 파트너십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현실일 수 있지만, 반면 트럼프가 그간 한국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해온 방위비 분담금의 압력에서 벗어날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한다.
현대의 거대한 다문화 사회 속에서 어떤 지도자라도 자신의 의지를 일정 기간 내에 다 펼쳐내 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신념은 대중에게 차별화된 세상을 체험하게 하며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 설득력을 가질 때 결국 당파를 떠나 국민 속에 변용되어 이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래에 어떤 기회가 부여될지 알 수 없으나, 위대한 미국에 대한 그의 향수는 과반에 가까운 그의 득표율 만큼 국민 속에 자극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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