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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10/15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청소를 학생들이 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초중교 교문이 비공개로 되어 있어 인근 주민이라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지만, 나 학교 다닐 때는 정문을 통해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든 동네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던 기억이다. 그렇다고 남의 학교에 할 일도 없이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고, 가끔 가족들이 자녀들에게 뭔가 전해주러 학교 교실까지 얼굴을 드러내고 그런 것 같다.


여하간 이렇게 그 시절 배경을 떠올려 본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 고등학교 이학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학기가 다 끝나 대청소를 했다. 각자 수업하는 교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활동실도 한 학급에 하나씩 배정을 받아 일부 학생은 그곳을 청소해야 했다.


나와 급우 몇 명은 학교 상담실 청소를 했다. 청소를 마쳤는데 아직 난로에 조개탄이 타고 있어서 교실이 아늑했다. 상담실에는 그때 한복을 입고 다니던 몸이 아주 마른 할머니 도덕 선생님이 교실 한쪽에 앉아 계셨다. 우리는 난롯가에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 선생님은 우리가 앉아서 이야기하는데도 상관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계셨다.


우리는 ‘저 선생님만 없으면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별거별거 재밌는 이야기를 할텐데,’ 저기 조용히 앉아 있는 선생님 때문에 숨죽여 이야기를 나눠야 했으니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거리가 삼 미터는 되니까 말소리의 내용이 잘 들리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저 선생님 제발 좀 갔으면. ‘하고 복화술 하듯 틈틈이 속닥속닥했다.


겨울방학이 돼서 한가하고, 난롯가에 따뜻한 온기는 우리들을 한동안 그곳에 머물게 했다. 한 두세 시간은 지난 것 같다. 이윽고 선생님이 하실 일을 다하셨는지, 일어나서 우리 쪽으로 오셔서 사탕 한 주먹을 주시며 말했다. ‘너희들이 소곤소곤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참 듣기 좋구나!’


대화 중 수시로 ‘저 선생님 좀 빨리 나가면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 할텐데 할텐데 할텐데!’ 했던 우리들은 선생님의 순수한 말씀에 너무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면서 진정 죄송해했다.


요즘 내가 그 선생님 나이에 가까워지니, 어린 친구를 대하는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공휴일에 잠시 PC방에 가서 컴퓨터를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동네 비교적 큰 PC방에 갔다. 한국의 PC방이란 곳이 하여간, 찜질방 못지않게 재밌고 신기한 공간이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PC방에 가보면 늘 남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학생 나이 층이 많겠지만 간간이 연장자들이 어딘가 있는 곳이 PC방이다. 비용을 지불하고 입구 가까운 컴퓨터에 앉으려 둘러보니 밖에서 보기 힘든 십 대 초반의 초등학생들이 앉아 있는 줄이 있었다. 아주 똘망하고 귀엽게 생긴, 지구에서 가장 예쁜 남자애들이 헤드폰을 끼고 내 옆에 두 명씩 앉아 있었다.


나의 일을 하면서 옆의 모니터를 보니 생전 못 본 화면의 게임 같은데, 이것저것 물어보다가는 애들이 화를 낼 것 같아 그냥 살짝 보기만 했다. 그래도 게임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뭐라고 대답은 했다.


양옆에 예쁜 초등학생들이 자기네 언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나 재밌는지, 또 어른과 자라지 않았으면 배우지 못했을 성숙한 수준의 말투를 써서 놀랍기도 했다. 그들 특유의 영어 감탄사와 어른스러운 표현과 심지어 PC방에서 쓰는 강한 말을 쓰는데도 나는 반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귀엽기만 한지 고운 말이 아닌데 화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좋다고 거기서 계속 애들 사이에 있다가는 나 예전 상담실에 있던 도덕 선생님에게 그랬듯이, 속으로 ‘빨리 나갔으면,’ 애들이 막 그럴 것 같아서, 원래 할것만 하고 종료하고 일어섰다. 바로 뒷줄에는 이십 대 형아들이 조용히 PC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른으로서 어린 사람들의 말과 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설레는 일이다. 그런데 반대로 어린 사람들은 어른의 말과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나온 길이지만 애써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고 내려보는 경관은 아름답기만 하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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