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지방에서 올라온 지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서울에는 참 노인들이 길에 많이 다닌다!’라고 한다. 그분이 사는 인구 몇십만의 지방도시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길에 많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한 차림으로 집 근처를 오가시기만 하는 것이 대표적인 모습인가? 싶었다.
하지만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에서 노인들은 여전히 각종 직업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길에도 맵시를 낸 외출복 차림으로 많이 다닌다. 노인을 위한 할인도 많고 지하철은 무료이고 몸만 움직이면 이모저모 쉬고 즐길만한 편리한 시설과 거리가 다양하다.
현재 한국의 노인들은 그들이 젊었을 때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높아진 ‘살기 좋은 세상’에 놓여 있다. 생각지도 못한 복지 사회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이미 익숙해져서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그분은 큰길에 여기저기 어르신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내가 보는 서울의 풍경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거리 외국인의 비율, 그중에서도 아랍계로 보이는 사람들의 비율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영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종교도 모슬렘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시선이나 표정을 보면 그간 익숙해진 다른 동양인이나 서양인들과 많이 다른 것을느낀다.
대표적인 다문화 지역으로 서울에서 멀지 않은 안산시에는 2019년 7월 현재 세계 102개국에서 온 86,697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왕성한 다문화가 20년 후 서울을 어떻게 변모시킬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예상할 수 없지만 말이다.
한국의 노년층이 자신이 어렸을 때 비해 좋아진 생활환경에서 비교적 만족감을 느끼며 노년기를 보내는 데 비해, 젊은이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전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비해 오히려 살기 어려워진 각박한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나는 그들의 어려움을 같은 심정으로 세세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전 세대처럼 전쟁이나, 강점(强占) 같은 국가적 전면전(全面戰) 상황에 묶여있는 것은 아니니까, 시대를 잘 뛰어넘어 미래의 멋진 한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벌써 지난달이 되었는데, 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맏아들 매덕스(한국 애칭: 덕수)가 미국의 대학을 마다하고 2019년 8월 26일 한국의 연세대학교 국제대학부 생명과학공학전공에 입학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졸리는 입학식 전 미리 아들과 한국에 와서 아들이 다닐 대학 캠퍼스와 기숙사를 둘러보고 신촌과 가까운 곳에 개인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놓고 갔다고 한다. 잘 아는 아파트이다. 마침 내가 어렸을 때 놀이터로 놀던 사직공원 건너편 동네이기 때문이다.
졸리가 한국의 전세라는 임대 제도를 알고 굉장히 좋아했을 것 같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매달 월세 없이 보증금이 그대로 보존되는 한국의 독특한 전세제도를 신기해한다. 전세는 큰돈을 맡겨놓고 한쪽은 집에 거주하고 한쪽은 그 돈을 맡아서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측의 신용과 상생을 드러내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과 캄보디아 두 나라 다 가 봤지만, 어디가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캄보디아인이 지금 당장 미국에서 산다면 어느새 미국인처럼 살 것이다. 매덕스 군이 대학생활을 한국에서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외국에서 보기에는 그만큼 한국이 매력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덕수는 K-Pop의 팬이라고 하는데, 노래가 좋다고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대학생활을 하러 왔을까? 그보다는 아마 마음속으로는 한때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현재 경제 규모 세계 11위, 그리고 OECD 회원국, 문화 강대국으로서의 매력 등 그간 성과의 비결을 알아내 자신이 태어난 캄보디아를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지구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나라의 발전에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한국을 택한 요인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한국은 충분히 그것을 보여줄 만큼 철학과 문화와 시설과 환경을 갖췄다. 무엇을 얻어 가느냐는 당사자의 노력과 인내에 달렸지만. 한국이 외국의 원조를 받았던 것은 전쟁의 폐해와 강점에 의한 수탈로 일시적인 시기였을 뿐, 원래 한국은 수천 년 동안 단일에 가까운 민족을 형성하면서 같은 언어와 풍습을 공유하고 대대로 살던 그 땅에서 찬란한 문화를 함께 일구고 키워온 저력의 나라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남의 것을 탐내거나 구걸하지 않으며 노래와 춤을 즐기고 선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한국인의 당연한 자질이며 문화이다. 상대적으로 근대(近代)를 이끈 정복과 탐욕의 역사와 비교해서 한국에는 너무나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외국인은 더 잘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심심하면 영국왕실 소식을 클릭해서 여왕님의 탁월한 처신과 건강에 감탄하면서 궁전과 왕실 가족과 왕관이나 장신구를 구경하며 기분전환도 하고 대리만족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왕실에도 동서끼리 소원하다는 등 왕자님 이야기가 마냥 애잔 하지가 않다.
그래서 유럽의 동화 대신 순수청년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영상을 보면서 그 빈자리를 살금살금 채워 간다. 아직 군대에 가기 전의 BTS 소년들의 절대 감성은 금세기 다시 없는 동화의 나라 이야기처럼 단란하고 안락하다.
추석이 있는 9월 속에서도 여름을 달군 팽팽한 삶의 에너지는 계속된다. 그러다 어느 날 그 힘은 갑자기 그 형태를 바꿔 나의 몸을 떠날지라도, 이 땅에는 평화와 자유와 행복이 계속된다.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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