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화문에 자주 간다. 걸어서 가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기도 하고 지하철로 땅 밑을 지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광화문에 커피점이 많다고 하고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많은 집회가 이곳 광장에서 열렸다.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은 역시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가 될 것이다. 많은 인원이 모였다 흩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쳐진 천막들은 커다란 정치적 변혁을 몰고 오는 데까지 이어졌으며 결국 일정한 성취를 이뤄냈다.
이제는 그간 누적된 난제들이 그 전면을 드러낼 것으로, 새 술을 새 부대에 부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일이 그렇게 깔끔하게 끝나지가 않았다.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혁명을 이뤘는데도 천막은 일부가 계속 남아 있는가 했더니 2019년 4월 광장 한쪽에 상설 목조 추모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광화문 네거리를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좌우 양편으로 시가전을 준비하는 듯한 긴박감이 느껴진다. 오른쪽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건너편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듯하더니, 이내 눈덩이를 굴리듯, 덩이를 굴려 어느새 길을 건너 천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천막은 6월 2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와대 방문을 앞두고 자진 철거하기도 하고 이후 다시 천막을 다시 치거나 하면서 부침을 겪는다.
오늘은 7월 19일 오후, 35℃ 무더운 날씨에 광화문 앞으로 시위대가 행진한다. 버스 차창 밖으로 시위자들이 마늘 수매에 대한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역시(市) 생산자 협회에서 올라온 것이다. 안전요원들이 도로의 흐름이 막히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오늘 7월 25일 광화문광장에서 ‘폭염수당 100원과 작업 중지권에 대한 배달노동자들에 안전을 위한 기자회견’ 기사를 본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 배달 문화가 좋다 신기하다 하는데, 과도한 배달은 문화라기보다 생존경쟁의 애가 타는 느낌으로 늘 마음이 쓰인다.
예전 중앙청 건물이 있던 시기, 광화문 주변은 얼음장같이 차갑고, 공기는 마치 음압이 걸린 듯 창백했었다. 1995년 건물이 철거되고,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을 거치며 어느 시기 돌아보니, 광장은 바람에 빛이 뿌려지는 가파른 길을 내고 있었다.
광장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된다. 격문을 써서 붙여 놓거나 스크린을 띄우고 노래를 하거나 천막을 치거나 하더라도 모든 것은 수위를 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시위 후 자신이 배출한 쓰레기나 사용된 비품은 스스로 정리하고 한 곳에 모아서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이 정착된듯 하다.
인근 경복궁 주변을 지나면서 한복 입은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관광을 하는 젊은 가족에게 ‘어디서 왔냐?’ 고 물어보면 의외로 ‘홍콩’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그들도 이 근처를 지나가면서 한국의 시위 형태를 배워갔을지도 모르겠다.
시위는 민주시민의 권리이지만, 실제 국민이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법 조항에 의해서가 아니라 도전과 경험을 통해서 축적되는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은 대중 집회의 매혹적인 선례가 되었다. 그때 국민이 분노 때문이 아니라, 환희 때문에도 뛰쳐나와 광장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집회가 진압이 아니라, 보호의 영역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시 정부의 장외집회에 대한 전향적 시각이 시민의식을 고취하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 인해서 1919년 3월 1일에 항거로 태극기를 흔들었던 국민이, 1945년 8월 15일 기쁨으로 만세를 외쳤으며, 그 마음이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투영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군중이 모이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을 때 그 시위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던가 돌이켜 보면, 대중은 분노를 보이더라도 한계를 인정하고 자정의 지혜를 발휘해 왔다.
광장의 의제는 광장에서 시위를 통해 그들의 주장이 확산될 수도 있지만, 의제에 따라 반대로 고립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광장의 의제는 아래로부터 모여 위로 올라간다. 광장은 각축의 장소가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하늘에 보여주는 기원의 장소이다.
한국 사람들은 지능도 높고 인정도 많고 재능도 많은데, 유일하게 ‘평화적 정권교체에 취약하다’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제헌 헌법을 고치고 임기를 연장해왔던 독재자들 때문에 한국의 정치적 발전은 더디었지만, 이내 국민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평화적 정권교체의 모습을 그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 부분에 있어 순조롭지 못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인들은 왜 정권교체에 실패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국인의 성품 가운데 어떤 자리에 앉았을 때, 그 자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으려 하는 혹은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외 체류 중 외국인에게서 들은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1994년 인도에 있었을 때이다. 동료 자원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이 주로 영국인이 많았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이미 투숙해 있는 20대 초 영국인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 친구는 한국인과 직접 이야기해본 적이 내가 처음이라고 하면서 자기가 만났던 한국인 이야기를 했다.
이탈리아 어디로 관광을 갔는데, 너무 더웠다고 한다. 관광 일행은 공동샤워실에 도달했다. 일행 모두 샤워가 너무 급했다. 그런데 자기 앞에 한국 여인 몇 명이 샤워하러 들어가서 안 나왔다. 너무 힘들게 기다리다 지쳤는데 나중에 나온 한국 여자들이 보니까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왔다. 그녀들은 예뻤지만 자기는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뒷사람을 생각해서 간단히 더위만 식힐 수는 없었던가? 라는 요지였다. 왠지 풍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하다못해 대중교통 버스에 빈자리에 앉더라도 내가 앉게 된 좌석은 단지 선착순이라는 혜택이었을 뿐, 내 개인의 자리도 아니지만, 앉는 순간 서 있는 사람의 고충을 아예 더는 존재하지 않는 듯 권리를 누리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저 선착이었다는 이유밖에 없다면, 교대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단 앉으면 나도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주말 태극기 집회가 진행되는 버스노선 정류장에서 승차한, 시위 참가자로 보이는 60대 후반의 여성들과 버스 안에서 잠깐 대화를 했다. 그분들은 총선에 관심을 표했고, 애국심을 표현했다. 나도 자유와 물질과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가 말했다.
한국인이 문화강국으로 도약하는 빛나는 성취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있다. 그렇게 정의감과 인정과 재능이 있는 한국인이 왜 1950년 6∙25와 1980년 5∙18을 막지 못했느냐 하는 점이다. 같은 땅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인데, 양차 대전이 끝난 20세기의 30년에, 천추 유한(千秋遺恨)의 살상이 발생했다.
광장의 시위가 평화적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만 한편, 그래도 과열되지 않을까, 충돌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어떤 갈등이 어떤 비극으로 연결되지 않기 위하여, 한쪽의 한이 남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아니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한국 사람들은 기질도 능력도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기회의 균등과 원활한 교체가 필요하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곧 없어질 줄 알았던 이 말은 참 오래 살아남는다. 한류 해외 팬들이 이 말에 공감하여, 'double standard(이중 잣대)' 라는 번듯한 번역 대신, 'For me it is a romance, for you it is an affair'라고 직역해서 쓴다고 한다. 자기 입장에서는 절절하지만, 한발만 물러서 보면 뻔한 잘못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경우 쓰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의제만 중요한가?’
광장이 정직한 민심에 실질적인 해소의 통로가 될 길은 없을까? 광장이 위에서 아래가 아닌, 정치적 목적이 아닌,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목적이 아닌, 민간주도의 의제들이 순서를 지키고, 교체로 사용될 때 분(憤)은 길을 찾고 삭여질 수 있을지.
기쁨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국민이라면, 분노 또한 국민의 힘으로 이겨내며, 광장을 통해서 대중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상대방의 의제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광장이 구현된다면.
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고려대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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