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이민(EB-5) 비자 프로그램의 자격요건이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중국인 투자자들의 자본도피를 위한 통로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7일 미국 의회에서 EB-5 비자를 취득하기 위한 최소 투자금액을 현행 50만달러에서 135만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부유한 중국인 투자자들이 서둘러 비자 취득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EB-5 비자 관련 사무를 처리하는 중국의 에이전시 캔리치의 주디 가오 미국프로그램 책임자는 “일부 고객들은 의회가 연장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이상 프로그램이 만료되는 내달 28일 전까지 그들의 신청서가 제출되도록 재촉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우리는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B-5 프로그램은 1990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미국 내 빈곤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당초 도입됐으나,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와 중국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혜택을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치적 반발에 부딪혀왔다. 홍콩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콜리어는 “EB-5는 시스템을 교묘히 이용하려는 미국인과 중국인들이 자본 도피를 위해 악용해 온 핵심 프로그램”이라고 지적했다.
EB-5 비자 프로그램은 그동안 자본 통제를 피하고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려는 중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및 외화보유고를 안정시키기 위해 해외 송금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인 투자자들은 연간 EB-5 비자 취득자 가운데 무려 8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회계연도(2015년 10월~2016년 9월) 기준 중국인 투자자들의 투자액은 약 38억 달러(약 4조 2000억 원)에 달했다. 현재 중국에는 이민 관련 사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등록된 900여 곳의 업체들이 있으며, 대부분은 EB-5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인은 1인당 환전 한도가 연간 5만 달러(약 5000만 원)로 제한돼있다. 이는 EB-5 프로그램 자격 요건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일부 에이전트들은 아직 역외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이른바 ‘스머핑(smurfing)’으로 불리는 자금세탁 방식을 권하기도 한다고 통신은 전했다.
상하이의 한 부동산 중개인은 “현재 가장 큰 장애물은 어떻게 50만 달러를 빼낼 것이냐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고객에게 중국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도록 미국에서 서너 개의 계좌를 개설하거나 친구 서넛의 계좌를 이용하는 등 자금을 분산시켜 송금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신에 따르면 EB-5 프로그램를 통한 투자액은 뉴욕을 비롯해 마이애미·캘리포니아 주 등의 부동산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있다. EB-5를 이용한 과거 프로젝트들에는 뉴욕의 허드슨 야즈·샌프란시스코의 헌터스포인트 쉽야드·뉴저지의 트럼프 타워 등이 포함됐다.
중국 상하이에 거주하던 케빈 타이는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의 호텔과 관련한 EB-5 프로젝트에 투자해 이달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그는 2013년 말 가족과 함께 비자를 신청했다. 당시에도 연간 5만 달러 이상의 해외 송금이 금지돼있었으므로 타이는 홍콩의 항생은행에서 상하이에 있는 본가를 담보로 50만 달러를 대출받아 자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통신은 이러한 방식도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개인 외환거래 신고관리 절차를 변경하는 등 관련 규제를 강화하며 불법적으로 해외에 자금을 보낼 수 있는 경로들을 차단해왔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규제 강화와 함께 위안화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자본 유출액이 급감하긴 했지만, 자금을 해외로 보내려는 ‘억눌린 압박’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로젠 컨설팅그룹과 아시아소사이어티에 따르면, EB-5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중국인 투자자들로부터 140억 달러(약 15조 6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 내 최소 2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기사=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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