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마을 스타벅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니 차도 건너편에 작은 뾰족집이 서 있고 그 앞면에 빨간색 글씨로 '레이디버그(LadyBug)'라고 쓰인 간판이 붙어 있다. 호주머니에서 소사전을 꺼내 들고 '레이디버그'를 찾았더니 ‛무당벌레’라는 뜻이다.
간판 아래에는 'Bikini Espresso'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레이디버그' 외벽의 진한 색칠 모양처럼 안에서는 붉은 바탕에 둥그런 검은 점무늬가 있는 비키니 옷차림을 한 미녀가 커피를 팔고 있다. 고객들은 차를 타고 왼쪽 창문으로 다가가서 차에 앉아 커피를 주문한다.
나는 어렸을 때 본 무당벌레가 연상되었다. 충청도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어느 여름날 할아버지는 텃밭에서 풀을 뽑으시다가 무당벌레를 보시고, “요놈이 진딧물을 먹어 치우는 익충이다.”라고 하셨다. 동그란 등이 바가지처럼 생겼는데 적색 바탕에 검은색 무늬가 있었다.
하루는 동네 어귀에서 동생하고 무당벌레를 목격했다. 동생은 ‛꼬끼오’ 하고 우는 수탉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가축 기르기를 좋아하였다. 무당벌레가 귀엽다며 막대기를 갖다 대자 위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맨 위에 다다랐을 때 막대기를 꺼꾸로 쥐니까 다시 위로 기어 올라가 환송을 받으며 날아갔다.
어느 가을날 아내와 함께 투퀼라에 있는 사우스센터 몰에 갔다. 아내는 해산물 가게로 가고 나는 몰 안에 있는 킹카운티도서관을 찾았다. '레이디버그'라는 어린이 잡지가 그림과 함께 컴퓨터 화면에 뜬 적이 있어서 어린이 책 코너에 가서 찾았으나 없었다.
한국 서적 책꽃이를 보았더니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라는 책이 있다. 쇼핑몰 한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도서관에서 한글 소설을 만나니 기뻤다. 환갑에 등단했다는 박찬순 님이 지었다. 주인공은 고층 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로프공이다. 도서관 직원에게 회원증을 보여 주고 책을 빌렸다.
저자는 작품에서 “실패하고 실수하는 게 보통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주위에서 묵묵히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고된 삶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요.” 하고 말한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어느 화창한 날 아내하고 페더럴웨이의 한아름 마트 옆에 있는 반스앤드노블 책방이라는 대형 서점을 찾았다. 잡지 코너에 가서 '레이디버그' 잡지를 찾았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원에게 문의하니 매진되었다는 것이다.
귀갓길에 뷰리엔 시청 안에 있는 도서관에 들렀다. 우리 집에서 가깝기에 자주 간다. 어린이 독서실를 찾았더니 '레이디버그'가 비치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이번 4월호에는 가축의 모습을 울음소리와 함께 특집으로 엮었다. 보기를 들면 “Dog(개)는 Woof(컹), Cat(고양이)는 Meow(야옹), Rooster(수탉)는 Cock-a-doodle-doo(꼬끼오)” 하고 운다는 것이다.
나는 시카고에 살고 있는 큰아들에게 '레이디버그'라는 어린이 잡지를 소개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손자에게 '레이디버그'와 무당벌레 동요를 담은 뮤직비디오를 사 주라고 일렀다.
이경구
수필가. 1998년<한국수필>등단
1961년부터 30여년간 미얀마 브라질 일본 미국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 1996년부터 3년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
현재 워싱턴주 뷰리엔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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